가을이네 장 담그기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6
이규희 글, 신민재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엌 뒷문을 열고 나가면 장독대가 있다. 굵은 자갈돌로 네모지게 테를 두루고 그 안에 잔돌을 깐 다음 크고 작은 항아리들을 올려 놓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깨진 사금파리들이 있어서 장독대에서 자란 괭이밥이나 풀로 소꿉놀이를 하게 된다. 채송화가 앞쪽으로, 옆쪽으로 풍성하니 자라는 모습도 보기 좋다. 숨바꼭질 하다가 술래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쯤은 꼭 숨게 되는 곳이 제일 큰 항아리 뒤쪽이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흙에다 끄적거리며 술래가 오나 빼꼼히 얼굴 내밀어 보기도 하고…. 그러다 뚜껑 열린 항아리 속에 물이 있고, 메주 몇 개도 있었던 기억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도 가을이네처럼 장 담그는 일이 큰 일로 치러졌을까? 그 때도 엄마와 할머니만의 일이었고 지금도 엄마의 일이 되어버렸다. 다만 고추장처럼 사람 힘이 많이 드는 일은 동네 어른 몇몇이 모여 한다. 항아리를 살피고 냄새를 없애고, 콩을 삶아 메주를 빗고 관리하고 장을 담그고 뜨기까지 책을 읽다 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어른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이드신 여자분들의 일이 되어버렸는지 죄송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힘이 필요한 일마다 한 몫, 거뜬히 해내는 가을이네 아빠가 눈길을 끈다. 콩을 베어 말리면서 도리깨질을 하고, 가마솥에 삶고 있는 콩을 푹푹 저어주고, 처마 끝에 메주 매달고, 항아리 실금 안 갔나 볏집불에 엎어서 확인하고, 걸러낸 메주를 함지박에 넣고 치대는 일도 빨간 고무장갑 끼고 열심히 한다. 시골로 이사 와서 일년동안 그을려서 까맣게 탔을 얼굴이 힘 쓸 때마다 빨개지는 모습은 듬직하기만 하다. 여기저기 빨간 색으로 강조한 그림들이 그래서 더 익살스럽고 정겨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처음에는 ‘정월 말날’이 1월의 마지막 날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읽다보니 아니네! 날짜마다 열 두띠 동물이 있는데 그 중에서 말인 것이다. 큰아이도 
 “아! 할머니네 달력도 그런 건데.”
한다. 그러고 보니 외할머니도, 할머니도 농협에서 나눠 준 숫자 큰 달력이 걸려 있다. 거기에 날짜마다 띠 동물이 그려 있고 사금, 조리라고 했던가, 바닷물에 대한 말들도 써 있다. 예쁘지 않아도 해마다 그런 달력을 걸어 둔 이유가 다 있구나-.

  

  책 뒷편에 실린 ‘가을이 할머니가 들려주는 장 이야기’에서도 콩을 그대로 먹는 것보다 더 지혜롭게 먹는 방법을 설명한 부분이 돋보였다. 고추장과 청국장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된다. 이렇게 ‘우리것’을 다룬 책들을 보면 옛 추억이 생각나고 할머니가 생각난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우리는 마당으로 달려 나가 빨래를 걷는데 할머니는 장독대로 간다. 가을이네 할머니처럼 장 담근 항아리를 햇살 좋을 때 열어 놓아서 그러셨나 보다. 그릇 하나, 숟가락 하나 들고 나가면서 고추장 어디 있는지, 된장 어디 있는지 여쭤 보면 앉아서도 
  “제일 앞에서 두 번째, 제일 외약(왼쪽)에서 네 번째”
척척 말씀하시던 할머니! 고추장 뜰 때는 조심조심 한쪽에서 뜨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는데….문득 소중한 추억과 기억이 많음에 감사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