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 사회 - 냉소주의는 어떻게 우리 사회를 망가뜨렸나
김민하 지음 / 현암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책은 과거의 현상을 바탕으로 현재 사회를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최소 한 세대의 기준이 되는 30년부터 세기를 넘어서는 소위 ‘고전’의 가치는 그렇게 전해진다. ‘아직도 할 말이 있다’는 것. 2016년에 쓰여진 이 책은 6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에도 그 효력을 갖는다. 우리는 왜 그렇게 자격을 요구하는가? 우리는 왜 그렇게 누군가를 맹신하는가? 우리 사회에는 왜 그렇게 냉소적이고 물질적인가?
저자는 말한다. ‘자격’과 ‘맹신’과 ‘냉소’와 ‘물질적’임은 우리에게서 다르지 않다고. 능력주의와 소비주의로 일컬을 수 있는 우리의 심리는 ‘속임수’에 민감하다. 속지 않기 위해 새로운 누군가에게 기존의 자격을 요구하고, 자격을 갖춘 기존의 누군가를 맹신한다. 그동안 너무나 속아왔으므로 매사에 냉소적이게 되고 결국 의사판단은 ‘재구매 의사 있음/없음’으로만 나뉜다. 그리고 그 모든 기준은 우리 안의 열등감으로 인해 시작된다.
한국인으로 살다보면 느껴지는 많은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학창시절 나대지 않기 위해 궁금한 것이 있어도 참아왔고, 군복무시절 결국엔 우리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선사항을 쓰지 않아왔다. 그저 먼저 태어나서 먼저 진학했다는 이유로 선후배로 위계가 나뉘었고, 그런 위계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평판이, 인사고가가 혹은 그저 미움받지 않기 위해 남들의 시선에 우리를 맞춰왔고 튀는 누군가를 미워했다. 획일화된 과정과 기준에 따라 성장했으니 ‘다름’을 포용하기보다는 이상하다고 느끼는게 당연했다. 우리는 ‘정상’의 범주에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었으니까.
아마 어떤 세대는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산업화를 위해 모두가 규격화돼야 했고,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 소수자의 명분은 때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들었어야 했을거다. 실제로 한 소설에 그렇게 쓰이지 않았던가? 학생 운동은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이후엔 대의를 잃고 자질구레한 일들에 몰두하고있다고. 정상은 이미 달성됐을까? 더이상의 발전은 개인들의 소원성취일 뿐일까? 하지만 그런 식의 생각 전에, 민주화가 완성됐다면, 우리의 ‘정상성’을 깨부숴야하는거 아닐까? 나는 공언한다. 우리의 민주화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에 과정으로서의 세 가지 화해를 얘기한다. 우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가게하는 열등감과의 화해다. 서로를 짓밟고 올라가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 할 연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곤 냉소주의 극복을 위해 냉소를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한다. 냉소의 근거가 타당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애당초 냉소는 갖가지의 서사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냉소가 틀렸다는 반박보다는 ‘진정한 무엇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의 기본인 당위와 명분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우리는 소비주의를 넘어서야한다. 소비자로서의 지각을 넘어 노동자로서의 각성이 필요하다. 파편화된 공동체를 재조직하고 그로써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사회를 재조직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이 나온지 6년이 지났음에도 냉소는 해결되지 못하고 우리 사회를 더욱 갈라놓았다. 여전히 각자 열등감을 바탕으로 냉소적으로 표출하고 소비주의적으로 판단한다. 서술된 양극화되는 우리의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상대 세력 지도자의 의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으로 점철된다. 현실 정치는 실제로 현실의 어떤 문제를 고칠 것인지를 논하는 것보다는 상대를 반대하기 위한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된다. 민주주의는 주권자들의 총의를 모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논의의 장을 여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반대’를 통해 ‘우리 편’을 조직하는 효과적 방식을 찾는 도구로 전락한다. 이것이 온갖 정치적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앞의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유다. - P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유책이 없을 때는 최악 사탤 봄으로써 희망 뒤에 매달렸던 슬픔들이 끝나는 법. 지나가고 끝나버린 불행한 일 슬퍼함은 더욱 많은 불행들을 불러오는 길이 되고, 운명 여신 앗아갈 때 지킬 수가 없는 것은 그 손해를 참으면서 그 여신을 조롱하며, 도둑맞고 웃는다면 도둑놈이 손해 보고 쓸데없이 한탄하면 자신에게 손해라오. - P49

천성요? 그까짓 거! 우리가 이런저런 인간이 되는 건 다 우리한테 달렸어요. 우리 몸은 정원이고 우리 의지는 정원사와 같은 거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쐐기풀을 심거나 상추씨를 뿌리거나, 히솝풀은 꽂아놓고 사향초는 뽑아버리며, 한 가지 약초로 정원을 채우거나 여러 가지를 마구 심어놓거나, 또는 태만을 부려서 불모로 만들거나 부지런히 비료를 주거나 간에 글쎄, 그렇게 할 힘과 바로잡을 권한은 우리의 의지에 있다 이겁니다. - P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다고 스미스가 자신의 주장을 모두 이런 보이지 않는 유령에게 맡긴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적 조화를 이끌어내는 진정한 지위자, 즉 자유시장을 상징한다. 20세기에 그 누구보다 자유시장 질서를 옹호했던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는, 만일 시장 제도가 자연스럽게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칭송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시장 경쟁은 한 이기적인 인간이 아침에 일어나 창밖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원료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생산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이웃이 원하는 만큼 생산하고, 자신이 꿈꾸는 가격이 아니라 이웃잉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가격에 판매한다. 즉, 자유시장에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사회 전체가 번성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 P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부론》은 철학, 정치학, 상업business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안내자는 날카로운 분석력과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누구보다 낙관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스미스 자신이다. 때는 바야흐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스미스는 농민, 수사, 상인, 화주 등을 사회적 대변동을 일으키고 이끌어갈 주체로 호명한다. 더구나 스미스는 경제 정책은 특정 정파나 계급에 대한 편견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그를 특정 계급의 시녀니 위선자니 하며 비난할 수 없다. 비록 그가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을 역사적 필연으로 간주했지만, 사회가 그들의 농간에 순진하게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준엄하게 경고했다. 여하튼 1776년에 출간된 《국부론》은 경제학자들에게는 하나의 독립선언문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 P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