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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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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믿는 편이다. 백이면 백 모든 이의 본연은 악하다 하고 확답 내릴 생각은 없으니 성악설을 완전히 지지한다고 하지는 않겠다. 어쨌거나 나는 선은 학습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악설은 인간은 날때 악하게 자라 학습과 교육을 통해 선을 배운다고 주장하는 윤리사상이다. 그렇다면 학습과 교육이 무용지물이 되는 극한 상황에서는 타고난 악과 교육으로 다져진 선 중 무엇이 우세할까?


 마트에서 초콜릿을 훔친다던가 다른 친구들을 괴롭힌다던가 하는 못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 종종 있다. 그렇다고 그들 중 성인이 되어서도 도벽증을 앓거나 친구를 못살게 구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 어린 아이들은 왜 못된 짓을 하는 것을 그만두게 된 것일까? 아마 자라면서 얻은 공감능력과 경험, 그리고 일정 나이가 되면 그들 앞에 주어지는 사회적 규제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에 사회는 안정되고 유지된다. 눈 먼 자들을 가둔 수용소에서는 사회를 안정시켜주는 법과 제도가 없다. 수용소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정부는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게다가 느닷없이 눈이 멀고 격리되면서 인격이 무시되고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들로서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마치 극한 상황에서의 순리처럼 더러워지고 솔직해지며 이기심을 가감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태초의 인류가 연상된다. 그들은 각종 기술이 발달된 현대사회의 인류에서 막 사유재산이 생겨난 신석기 시대의 인류와, 부족이 형성되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뉘게 된 청동기 시대의 인류로 순식간에 전락한다. 눈 먼 깡패들은 재산을 소유한 지배층이, 나머지 사람들은 피지배층이 됐다. 법으로 잘 다져진 질서정연한 사회에서 탈피되어 형성된 그들만의 작은 사회는 추악했다. 그것이 지배층이 됐건 피지배층이 됐건 간에 말이다. 성욕을 채우기 위해 여자들을 보내라는 지배층 무리나,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여자들을 보내는 피지배층 무리나 그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졸렬하기는 매한가지다. 모두가 제 안위만을 중시하는 눈 먼 자들의 수용소에서 몇 소수는 인간의 인품을 져버리지 않았다. 대표적으로는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안과의사의 아내가 있다. 그녀는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단 한 사람이며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인물이다. 모두가 눈이 먼 극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으므로 그 특권을 악용할 만도 하지만 그녀는 다행히도 짐승이 되기보다는 인간으로 남기를 선택했다.

 

그녀는 종종 자신이 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듯한 말을 했다. 이를테면 나도 눈이 멀었지. 당신들의 먼 눈이 내 눈도 멀게 한 거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나도 더 잘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하는 대목들이 그렇다. 그녀의 그러한 말들은 보다라는 동사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또한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돈에 눈이 먼’, ‘환한 빛에 눈이 멀어버린따위의 부사구와 눈이 가려진 성상이 나로 하여금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의 핵심 소재와도 같은 실명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나는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아마 인간의 이성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신이 이성을 상실한 인간에게 내리는 가혹한 형벌과도 같은 실명은 극적인 전개와 대조되듯이 어느 순간, 평화롭게 끝을 냈다.

이 백색 실명의 원인과 의사의 아내만이 실명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 다시 시력이 회복 된 이유 등 무엇 하나도 설명되지 않은 채 소설은 끝났지만 궁금증은 남지 않는다. 그런 단순한 이야기 전개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눈 먼 자들의 도시'에는 다른 책들과는 다른 특징적인 요소가 있다. 큰따옴표와 느낌표. 그리고 물음표가 없으며 인물간의 대화 사이에 줄 간격을 나누는 최소한의 친절함도 없다. 결정적으로는,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 엑스트라 격인 눈 먼 작가의 이름도 부러 언급해 놓고는 알려주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이 역시 작가가 의도한 장치같기도 하다. 하기야, 모두가 눈이 먼 사회에서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어둠 속에서 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의사의 아내와 기타 인물들은 어둠 속의 선을 대변한다. 

 학습과 교육이 무용지물이 되는 극한 상황에서는 타고난 악과 교육으로 다져진 선 중 무엇이 우세할까? 끔찍한 재앙 속 펄쳐지는 무한 이기주의에 맞설 희망에 불씨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나는 선의 우승은 아닐지언정 악의 패라고 본다. 신석기와 청동기의 인류는 절대 현대 인류를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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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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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새치기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는 가슴 한 구석이 콕콕 찔렸다. 돌이켜보니 나도 새치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때는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첫날이었다. 다 같이 에버랜드에 들렸는데, 나는 집에 여유 좀 있는 친구와 같이 대기시간이 아주 긴 기구를 타기로 했었다. 덥고 지치는 데다가 길고 긴 줄을 보며 한숨부터 내쉬던 바로 그때였다. 그 친구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에서도 나오는 놀이공원 직원의 호객행위였다. '2만원짜리 sd카드를 사면 기구에 바로 오를 수 있는 패스권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친구덕에 놀이기구로 향하는 계단에 오를 수 있었다. 패스권을 산 이들에게만 제공되는 텅텅 빈 계단을 말이다. 인파로 가득 채워진 계단의 옆을 편안히 오를 때의 그 오묘한 기분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쟤들은 뭔데 저기로 가지?'하던 눈초리 역시 잊을 수 없다. 사실 그렇게 단번에 계단을 올라와서 기구에 탑승하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는 그 묘한 기분을, 찝찝함을, 죄책감을 무어라 정의 내릴 지 몰라 답답하기도 했는데 그 답답함이 지금에서야 풀린 것 같다. 그것은 새치기였다.


 이 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처음으로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기본적으로 거래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성, 사람, 자유 등이 그러하다. 이런 기본적인 것들 말고도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시장화되어 거래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전담 의사 제도라던지, 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라던지 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시장화의 범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빈부격차가 아닌 빈과 부 사이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모두에게 공평했던 것들에 액수가 매겨지면서 더는 공평하지 못한 것이 되고 또 그것이 일상까지 파고들면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벌금이 요금화 된다는 부분은 특히 인상 깊었다. 내 경험에 빗대어봐도 딱 들어맞았다. 



가치가 금전을 결정하지 않고 금전이 가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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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아들, 조선시대 왕위 계승사 -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
한명기.신병주.강문식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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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자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럿 왕과 아들이 조선시대가 아닌 요즘날에 나고 자랐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책에 실릴만한 규모의 갈등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크고 작은 어떠한 유형의 갈등이야 겪었을지언정 죽이고, 또 죽고야 마는 비극은 결코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20세기 끝자락 어느 산부인과에서가 아닌 조선시대 왕실, 그것도 왕세자의 몸으로 태어났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부녀관계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현시대에 태어났기에 우리 아버지는 남들 눈치 없이 나를 양껏 사랑해 주실 수 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감정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어떻게 아비가 아들을 죽이지? 하는 반감이 안타까움으로, 왕세자로 태어나서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의무를 내팽개쳐버릴까? 하는 의아함이 작은 공감으로, 꽉막혀서는 고집이세고 잔인하다!는 경악이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일수도 있겠다는 조금의 이해심으로... 평탄치 못한 삶의 운명을 업고 태어난 그들에게서 공감과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나름의 생각 정리를 해보았다. 시대와 지위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구나 싶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왕과 왕세자라는 지위도, 그에 따른 갈등의 결말도 조선시대라는 시대가 부여한 것이다. 그 영향이 제일 크게 미쳤던 인물은 소현세자가 아닐까 싶다. 무능력한 나라를 등에 업고 청에 볼모로 잡혀가 9년을 살았다. 그곳에 살면서 청나라 인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청과 조선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며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국제적인 식견을 갖추었다. 공녀로 잡혀간 여인들을 고향에 돌려보내는 둥 그는 왕세자로서의, 나아가 왕으로서의 자질과 소양도 뛰어났다. 삼전도의 굴욕만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 인조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했고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 생각했다. 개혁적인 아들과 폐쇄적인 아버지의 충돌의 결과는 아들의 죽음이었다. 명목상 죽음의 원인은 말라리아였지만 소현세자의 죽음을 다루는 모든 인터넷 글, 책, 영상 자료 등 어디에서나 '독살설'을 빼놓지 않는다. 아버지인 인조가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나 역시 조심스럽게 수긍한다. 소현세자가 죽고 난 후 인조의 행적 때문이다. 소현세자의 아들, 즉 세손이 아닌 동생 봉림대군(효종)을 다음 왕위에 앉히고, 관련 의원들을 처벌하지 않았으며 되려 세자빈 강씨를 죽이고 세손들을 유배보냈다. 수상쩍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믿기지가 않았다. 볼모가 된 상황에도 나라와 백성을 살피고 또 살핀, 장차 세종과 맞먹을 성군이 됐을 인물의 끝이 의문 투성이 죽음이라니. 또 그의 가족마저 비참한 결과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니. 개인적으로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의 세드엔딩보다 슬프다고 생각한다. 깊은 아쉬움도 남는다. 그가 왕이 됐더라면 아마 우리나라 역사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하고 모두들 생각한다. 또, 흔히들 상상하지 않는가? 인물의 시대를 다르게 설정하는 것을 말이다. 예를 들어, 스티븐 잡스가 중세시대 인물이라면? 아이폰의 탄생은 꿈조차 꿀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세종대왕이 21세기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아직도 불편한 한자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조금 다르다. 그가 20세기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어쩌면 훌륭한 외교관이 됐을 수도, 정치인이 됐을 수도 있겠다. 어찌됐건 총명해서 맞는 죽음만은 피할 것이다.


 이런저런 가정을 하고 투덜거려 봤자 별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이 일이 역사로 남겨졌다는 것은 어찌됐거나 지난 과거라는 뜻이고 이미 1629년에 죽은 소현세자를 되살려 놓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다만 지금이라도 각자가 뜻을 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에, 또 그 시대에 내가 살고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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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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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으로 하여금 5.5미터의 청새치를 잡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생각했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우선, 노인은 나이가 들어 젊은 어부들보다 직업적 능력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그도 젊었을 적에는 건장한 흑인과 겨루어 이겼을만큼 강인하였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에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난 84일간은 빈손으로 돌아오는 부진한 성과를 보였다. 나는 이러한 점을 보며 노인의 미끼에 걸려든 청새치는 어쩌면 그의 자존심과도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커다란 청새치를 낚아 올렸을 때의 성취감과 동시에 열리는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이 그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허망하게도 항구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청새치는 뼈만 남게 되었다. 상어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필사적으로 청새치를 지켜내려던 노인의 모습이 마치 영상을 본 것처럼 눈 앞에 생생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앞서 나는 청새치를 노인의 자존심에 비유하였다. 그렇다고 뼈만 남은 청새치에도 비유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결실은 오랜 사투 끝에 청새치를 낚아 올린 것에서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인과 바다는 평소 지루하다고 악명 높은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페이지를 처음 피게 되었을 때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왔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지루함은 커녕 작은 설렘을 가지고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점점 헤밍웨이의 문체에 푹 빠져들었다. 그가 표현한 노인과 바다는 내 머릿속에서 한 폭의 유화가 되어 떠올랐다.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거센 이야기임에도 헤밍웨이의 보드라운 문체는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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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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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7년 3월 처음 출간되어 약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꾸준히 기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좋은 반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약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기아 문제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에 수록된 서문만 보아도 그러함을 알 수 있다.
2016년판 서문의 서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여전히, 그래서 더 고약하게도 기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부가 넘쳐나는 이 지구상에서 해마다 수백만 명이 기아로 대량학살을 당하는 현실은 분명 우리 시대가 낳은 수치스러운 스캔들이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힘 없이 팔다리를 떨며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어린아이들, 영양 결핍이 만들어낸 희생자들이 점점 더 넓은지역에서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암담한 현실이다.

어릴적부터 매년 티비에서 하는 기아 살리기 후원 방송을 보며 의아함을 가졌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개인뿐만 아니라 여러 단체가 이렇게 많이 후원을 하는데 대체 왜 기아 문제는 끝이 나지 않는 걸까. 기아는, 가난은, 도태는 고질병과도 같다.

나는 그 해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편견을 사진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듯 개인의 게으름 때문이 아닌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였다.
구조적인 문제가 낳는 기아로는 대표적으로 전쟁이 있다. 아프리카의 내전은 끝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내전을 막기 위해 1990년대 쿠웨이트에서처럼 다국적 군대의 개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강대국에게 있어 쿠웨이트와 석유는 중요하지만, 아프리카의 내전은 별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 이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자연재해, 정치부패, 시장가격 조작, 심지어는 기아를 무기 삼아 일부러 식량을 조절하거나 끊는 끔찍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해서 단번에 뽑아내는 것은 당연 불가능하다.

기아는 이미 세계 인구의 1/7씩이나 차지하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각국 각지에서 보내오는 기부금, 구호물품으로는 기아의 끝을 내기가 어렵다.

게다가 단순 식량 문제도 아니어서 그 복잡한 사회구조를 뿌리 뽑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다.

그렇다면 과연 가난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가난의 근절을 나도 간절히 바라지만 근본적인 해결법은 여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우석훈이 이 책에 대해 평가한 '지글러가 어린이 무덤에 바치는 참회록'이라는 문장에 가슴으로 동조할 수 있는,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를 줄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또 그 사람들이 이루어낼 기적을 말이다.

'그들은 모든 꽃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말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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