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닮고 싶은 창의융합 인재 4
김진욱 지음, 임대환 그림, 손영운 기획,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감수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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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마음에 백성을 품고 살았던 임금 - 닮고 싶은 창의융합 인재 세종대왕

 

 

우리나라 위인중에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세종대왕을 이야기하게 된다.

우리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글 창제로 유치원때부터 아이들은 세종대왕을 만난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한글로만 이야기 하기에는 세종대왕의 업적은 너무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종대왕은 한글이라는 표현보다

세종대왕은 애민사상이라는 말로 더 표현하고 싶어진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애민(愛民)'이라는 말을 꼭 되새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세종대왕을 한글을 창제한 분으로만 아는게 아닐까...

그 누군가가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세종대왕의 일생을 알고 나면 창의융합인재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 왕위에 오른 세종

- 왕권 안정과 국토 확장

 - 실용적 학문을 장려함

-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


왕이라면 내가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닌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생각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세종대왕이 존경받는 이유는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몸소 실천 했다는데 있다.

 

 

 

 

 

 

세종대왕하면 학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좋아하여 아픈 날에도 꼭 책을 읽고 잠들었고,

춥거나 더운 날에도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왕으로서 제대로 정치를 하려면 지적인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나라의 왕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앞세워 신하들을 굴복시키지 않았고,

심지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신하들도 포용하여 함께 일을 해 나갔다.


무엇보다 사람을 중히 여긴 세종대왕.


'내가 행한 모든 업적들은 아끼고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 시작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과학이 천대받은 시기인 1400년대였지만

세종대왕 시대에는 과학이 많은 발전을 하였다.

과학에 재능이 있는 자들은 등용하고

혼천의, 자격루, 측우기 등을 만들었다.


세종대왕 시대에는 조선사에 유례없는 과학적 르네상스를 맞이 하였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한글이라는 공식이 처럼 떠오르는 글자 창제

당시에는 중국을 받들던 유학자들의 반대가 무척 많았지만,

백성들을 위해 널리 쓰일 글자를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였다.

세계에서 과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문자라는 평가를 받는 우리글 한글이다.


 

 

 

세종대왕의 업적등을 일반적으로 나열하기 보다

그에 따른 일화를 들려 주면서 그 의미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세종은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당시 세종은 젊었고 왕으로서 명분이 약했기에 잘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세종은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는지

세종의 집권 초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희와의 일화를 보면 세종의 바른 인성과 남다른 포용력을 느낄 수 있다.

 당시 황희는

멀쩡히 살아 있는 왕세자를 페위시키고 새로운 왕세자를 세우는 것은

국본을 너무 쉽게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세종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했었다.

황희가 계속 반대하자 태종은 크게 화를 내고 관직을 빼앗아 교하로 유배를 보냈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후 세종을 황희를 궁으로 불렀다.

그렇게 반대했던 세종이 왕위에 올라 궁으로 부르니 황희는 벌을 내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종은 황희의 유배를 풀어주고, 복직하라는 명을 내렸다.


세종은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오로지 황희가 좋은 인재라는 사실에

주목해 옆에 두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 후 황의는 18년간이나 세종 옆에서 국정을 돕고 죽는 날까지 충엇을 바쳤다

지금도 깨끗한 관리의 상징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세종의 시대는 토론의 시대였다.'


왕의 한마디면 무엇이든 되는 시대라고 생각되는데

세종은 신하들과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과 소통의 달인이였다.


" 저 사람, 참 심보가 고약해!" 라는 말에서

고약하다라는 말의 유래는 세종과 수령육기제 정책으로 격한 토론을 벌인

고약해라는 이름의 신하 때문에 나왔다고 한다.




학문이 워낙 뛰어난 세종대왕이여서 무에 대한 부분이 약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데,

4군을 설치하여 국경을 압록강까지 넓히고

여진을 정벌하고, 6진을 설치하여 국경을 두만강까지 넓혀

국토 확장하였다.


무인 세종대왕에게 묻다라는 밀착 인터뷰를 통해 세종대왕의 무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세종대왕께선 무예 실력이 별로라고 하던데요?"

" 무예를 익히지 않은 것은 아니었어요. 단지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던 것뿐이죠."


그리고 무기의 중요성을 알아 '대신기전' 같은 강력한 신무기를 만들었다.

바로 세계 최초의 로켓 병기이다.



신기전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세종의 비밀 병기였다.

세종이 4군 6진을 설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기전이라는 화약 무기가 있었다.


신기전은 화약을 이용해 불화살을 쏘는 로켓무이기이다.



세종대왕하면 함께 생각나는 인물이 장영실이 아닌가 싶다.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노비였던 장영실이

꿈을 펼치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세종대왕 인재를 알아보는 해안덕분이였다.



닮고 싶은 창의융합 인재 세종대왕에서은

세종대왕의 일생에 대해서 여러가지 일화들을 들을 수 있어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또한 밀착인터뷰, 다양한 사진자료등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닮고 싶은 창의융합 인재 세종대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을 좀 더 자세히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서 어떤 마음가짐과 일들을 해야하는지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게 해 준다.


늘 마음에 백성을 품고 살았던 임금

이 시대에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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