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자 막시무스의 사랑에 대한 400가지 교훈 KIATS 기독교 영성 선집 21
고백자 막시무스 지음, 김진우 옮김, 김재현 감수 / KIATS(키아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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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자 막시무스라는 이름, 고백자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400가지 교훈이라는 말은 이 책이 어떤 책인지 흥미를 가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책을 받은지는 꽤 지났지만 느낀 바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 책은 400가지의 교훈을 마치 잠언집처럼 제시하듯이 쭈욱 늘어놓습니다. 처음 읽는 사람들은 어려운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는 용어들도 존재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해설서와 연구가 나타나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잠언집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잠언집을 읽다보면 우리는 하나님, 이웃, 사랑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제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막시무스는 지속적으로 이 세 단어를 엮어서 잠언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을 본받아 구제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육신에 필요한 것을 공급할 때, 악한 사람과 덕스러운 사람, 공평한 사람과 불공평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실한 의도 때문에 나쁜 사람보다는 덕스러운 사람을 더 좋아하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구제합니다.' (14쪽)』
-> 막시무스는 구제를 먼저 하나님을 본받아 행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육신에 필요한 것을 공급할 때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구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형제 사랑은 재물을 나누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바울이 이야기했던 게 생각납니다. 손대접하기 위해 힘쓰라는 그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아 행한다라는 것을 어떤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짚어볼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인지를 보시기 위해 우리의 동기를 살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기를 얻기 위해 선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시선을 항상 그분께 고정하고 그분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행위에 따르는 모든 수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급을 잃게 될 것입니다.' (96-97쪽)』
-> 선의의 행동을 누구나 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의도와 목적이라고 막시무스는 이야기합니다. 저도 이에 또한 공감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지향점으로 가지느냐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수도 있고, 우상을 섬길 수도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스미스라는 문화적 예전을 이야기한 신학자는 우리의 삶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우리의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 가운데 무언가를 예배하며 살아간다고 그는 이를 표현했습니다. 이 주장에 비추어 생각해볼 때 우리가 교회에서 모이는 것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우리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어떠하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궁극적 관심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던 틸리히의 말을 다시금 곱씹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어떤 말처럼 하나님을 알고 세상을 잃었다면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만 알았다면 의미가 없다는 말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본성적으로 선하시며 (마태복음 19:17 참조),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만이 그 뜻과 목적이 선합니다. 악한 자들을 본성적으로 선하신 분과 연합시킴을 통해 그들 역시 선하게 되는 것이 그런 사람의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들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축복합니다. 또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참고, 비방을 받으면서도 권면하며 (고린도전서 4:12-13 참조), 죽임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 사람이 사랑의 목적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145쪽)』
-> 이 말을 보면서 많은 성인들이 생각납니다. 십자군 전쟁의 광기 가운데서 사랑으로 술탄을 설득하려 했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십자군 정신이 아닌 십자가 정신으로 이슬람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전도하려다가 죽음을 맞이한 레이먼드 룰, 최근에 부흥의 물결이 찾아온 애즈베리 대학교 출신이자 마하트마 간디의 친구로써 아둘람 공동체를 이루고 평생을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던 스탠리 존스 선교사, 그리고 나환자들을 목숨다해 사랑하며 두 아들을 죽인 공산청년을 양자 삼은 손양원 목사... 그들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라는 것이 어떠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는 그들의 삶의 열매가 그들의 삶을 말하고 있기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의 목적으로 행한다면 사람들이 알겠지만, 사랑의 목적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그 사랑보다 우리의 탐욕을 볼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주춧돌을 지은 사람과 같다라는 산상수훈의 말은 그런 의미와 같이 엮어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것과, 사랑을 위해 산다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님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막시무스는 자신의 고백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신학적 신념을 고백한 막시무스의 혀는 내어 잘라 내어졌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다는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는 그의 오른팔 역시 잘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막시무스는 기독교 세계에서 고백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그의 신학적 주장은 680년에 열린 제6차 에큐메니칼 회의에서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오늘날 기독교의 보편적인 신조와 고백이 형성되는 과정에 전개된 치열한 논쟁과 투쟁이 막시무스 같은 수 많은 죽음을 만들어냈고, 시대의 영웅과 성인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154쪽)
-> 이 말을 한 사람의 최후에 대해서 에필로그에서 접했을 때는 사실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격동 가운데서 막시무스는 자신의 삶을 고집했고 그 삶을 죽음으로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그 고백자라는 말은 죽었으나 믿음으로써 말한다는 히브리서의 구절을 생각하게 합니다. 요한복음의 밀알에 대해서도 생각이 납니다.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낳는다는 말처럼, 막시무스의 죽음은 영웅과 성인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는 말과 연결지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 '나는 신이다'라는 넷플릭스 다큐의 개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단과 사이비에 대해, 또 종교의 민낯에 대해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더불어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의 결말 가운데 기독교적 의미를 해석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종교의 의미가 무엇인가, 또 우리가 믿는 신앙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제고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영성 고전을 짚어보고 읽어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신앙의 제고를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국 그 행함으로, 열매로 판단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과 그리스도를 닮은 삶은 결국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우리에게 말하는듯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믿는 바와 고백하는 바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비춰질 것입니다. 영생을 누리며 산다는 말도 그렇게 해석되고 이해될 것입니다.
그 고전 영성의 '지혜'를 우리가 마음에 담으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 광기의 시대와 폭력의 시대 가운데 지혜는 행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칭찬을 받으리라는 그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곱씹어보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책을 제공해주신 키아츠 출판사에 감사드리며, 마지막 에필로그에 나오는 한 구절로 서평을 마칩니다.
『우리의 사랑이 우리 자신을 떠나 하나님과 이웃을 향할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 특히 이웃과 타인에 대한 사랑은 동등하게 사랑할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과 정욕을 극복하고 덕을 쌓는 실천을 통해 이룰 수 있다. 바로 그럴 때,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 인간의 본성과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궁극적인 영원한 존재(eternal-being)가 될 수 있다. 159쪽 』

‘하나님을 본받아 구제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육신에 필요한 것을 공급할 때, 악한 사람과 덕스러운 사람, 공평한 사람과 불공평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실한 의도 때문에 나쁜 사람보다는 덕스러운 사람을 더 좋아하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구제합니다.‘ - P14

여러 번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인지를 보시기 위해 우리의 동기를 살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기를 얻기 위해 선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시선을 항상 그분께 고정하고 그분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행위에 따르는 모든 수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급을 잃게 될 것입니다.‘ - P96

하나님만이 본성적으로 선하시며 (마태복음 19:17 참조),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만이 그 뜻과 목적이 선합니다. 악한 자들을 본성적으로 선하신 분과 연합시킴을 통해 그들 역시 선하게 되는 것이 그런 사람의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들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축복합니다. 또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참고, 비방을 받으면서도 권면하며 (고린도전서 4:12-13 참조), 죽임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 사람이 사랑의 목적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 P145

막시무스는 자신의 고백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신학적 신념을 고백한 막시무스의 혀는 내어 잘라 내어졌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다는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는 그의 오른팔 역시 잘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막시무스는 기독교 세계에서 고백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그의 신학적 주장은 680년에 열린 제6차 에큐메니칼 회의에서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오늘날 기독교의 보편적인 신조와 고백이 형성되는 과정에 전개된 치열한 논쟁과 투쟁이 막시무스 같은 수 많은 죽음을 만들어냈고, 시대의 영웅과 성인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 P154

우리의 사랑이 우리 자신을 떠나 하나님과 이웃을 향할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 특히 이웃과 타인에 대한 사랑은 동등하게 사랑할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과 정욕을 극복하고 덕을 쌓는 실천을 통해 이룰 수 있다. 바로 그럴 때,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 인간의 본성과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궁극적인 영원한 존재(eternal-being)가 될 수 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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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열망 KIATS 기독교 영성 선집 20
필립 야콥 슈페너 지음, 김진우 옮김, 김재현 감수 / KIATS(키아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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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냉소와 실망과 아픔을 씻으시고 새롭게 고치실 성령님의 은혜와 부흥의 역사를 소망합니다. 많이 해졌지만 고치고 싸매는 주님의 손길과 그 주님의 손길로 꿋꿋이 교회를 세워가는 목회자들을 기억합니다. 각자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성도들을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저의 냉소적인 마음에 경건한 열망을 떠올리게 해준 출판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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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열망 KIATS 기독교 영성 선집 20
필립 야콥 슈페너 지음, 김진우 옮김, 김재현 감수 / KIATS(키아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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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교회사 수업을 들을 때 경건주의에 대해서 들으면서 경건주의의 아버지인 슈페너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경건한 열망이라는 책을 쓰며 당시 교회 문제에 대한 서신을 적었다고 한 그 원문이 궁금해서 몇번씩 읽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키아츠에서 이 책의 번역서를 낸다고 들어서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해당 책은 1675년 9월 8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경건주의자인 필립 야곱 슈페너가 당시 교회 상황에 대해서 총 3부로 구성한 서신입니다. 1부는 교회가 처한 상황, 2부는 교회가 더 나은 교회로 회복될 가능성, 3부는 슈페너 나름의 교회 개혁을 위한 제언들입니다. 이 서신의 내용 중에 몇 가지 내용을 나누며 우리 시대를 향한 경건한 열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열매들을 우리의 인내로 배양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은 주님 자신이 놀라운 분이신 것처럼 놀라운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그분의 일은 드러나지 않게 이뤄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그분의 일은 더 확실하게 이뤄질 것입니다.』
(인사말과 글을 쓰게 된 상황, 19쪽 中)
-> 이 서신의 저자인 슈페너는 부흥이나 열망이라는 것이 단기간에 거두어질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시작합니다. 그분의 일은 드러나지 않게 이뤄지지만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서 우리는 항구적 열망을 품으라는 의미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나는 씨를 뿌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거두게 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는 말씀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열망과 그 열망을 결실하기 위한 기다림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우리는 공공연한 추문에 휘말린 사람들이 도처에서 발견될 뿐 아니라 참된 기독교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목회자들을 찾기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참된 기독교란 명백히 드러난 악을 피하고 외면적으로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 제1부, 교회가 처한 상황, 31쪽 中』
-> 슈페너의 서신을 보면서 우리는 과거의 교회 타락상과 지금의 교회 타락상이 연결되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참된 기독교와는 달리 악을 권하고 부도덕적인 삶을 사는 목회자들이 넘쳐나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그래도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말은 우리로 하여금 작게나마 위로를 가지게 하는듯 합니다. 우리가 유일한 세대가 아니었다라는 말이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과 사랑에 근거하여 이렇게 목적에 어긋나는 일을 보고 한탄하며 사람들을 감화시켜, 그 목적에 진심 어린 관심을 갖게 하기를 갈망합니다. 내가 위험한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사람들이 치유되기를 원하는 사랑 때문입니다.
- 제1부, 교회가 처한 상황, 77쪽 中』
-> 슈페너의 마음에는 갈망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되기를. 그래서 한탄하지만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치유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마음을 보며 나는 진정한 치유를 바란다라는 찬양이 생각납니다. 비판에 익숙한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냉소로서 지금을 대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의 밝게 빛나는 영광스러운 미덕을 보여주는 탁월한 예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깊은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는 구주에 대한 신앙고백이 위태로울 때, 두려움 없이 끔찍한 순교를 향해 돌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강렬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형제'와 '자매'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를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서로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었던 그들의 사랑은 얼마나 열렬한 사랑이었습니까!
- 제2부 교회가 더 나은 상태로 회복할 가능성, 94-95쪽 中』
-> 슈페너는 역사 가운데 강렬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의 말은 마치 부흥사의 전언처럼 다가옵니다. 우리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또 믿는 사람들이 사회를 선도하던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과거의 교회사의 사실들은 오늘날 우리의 냉소적인 마음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고 그 사실이 지금도 이뤄지기를 기대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감동과 열렬한 사랑에 대한 소망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에스겔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회복을 약속하시지만 그 회복을 받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이렇게 되기를 구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자신이 소유한 기도와 감사와 선행과 헌금 등을 바칠 뿐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가족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계하고, 권면하고, 회심시키고, 교화하고,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가능한 한 그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질 의무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우선적으로 지적해 준다면, 그들은 자신을 더 잘 돌보고 자신과 이웃들의 덕을 세우는 데 전념할 것입니다.
- 제3부, 교회의 개혁을 위한 제안들, 111쪽 中』
-> 슈페너는 3부에서 본질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적용들을 제시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제시한 것 가운데 몇 가지는 이미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개혁을 향해 실천하고 살아가고 있던 것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모든 그리스도인이 덕을 세우도록 해야한다는 슈페너의 말은 과거 종교개혁의 모토인 Ad Fontes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는지, 교회를 이렇게 이해하고 바라보고 있는지, 우리는 우리를 누구라고 정의하는지 되짚어보게 하는 말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 신학의 과도한 교리화에 진저리 나는 종교전쟁의 무기력 가운데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때론 교회와 성도들이 타락하고 나태해질 수 있지만, 여전한 생명을 담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늘 개혁될 수 있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었던 것이다. 160-161쪽』
-> 최근 애즈베리 대학교의 부흥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령께서 행하실 일들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과 냉소적인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하심과 살아계심이 어떠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부흥운동을 연구한 배덕만 교수는 우리가 저 장소를 신성시하지는 말되 저 부흥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열매로 맺어질지 바라보고 기대하자고 제안합니다.
더불어 최근에 Zior Park의 Christian이라는 노래는 서로를 정죄하고 헐뜯는 가운데서 우리는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는 메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여전히 그런 열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교회를 향한 비판일지라도 그 또한 관심이 있기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희망이 있는지, 여전히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 여전히 온 세계를 통치하시고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고 회복하실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있는지 우리가 짚어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냉소와 실망과 아픔을 씻으시고 새롭게 고치실 성령님의 은혜와 부흥의 역사를 소망합니다. 많이 해졌지만 고치고 싸매는 주님의 손길과 그 주님의 손길로 꿋꿋이 교회를 세워가는 목회자들을 기억합니다. 각자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성도들을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저의 냉소적인 마음에 경건한 열망을 떠올리게 해준 출판사에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도 '경건한 열망'을 품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며 에필로그 한 자락을 인용함으로 글을 마칩니다.
『교회는 언제나 시간의 흐름을 따라 타락하고 세속화되는 과정을 거쳐 왔다. 그런 와중에 한 세대의 개혁의 열망이 그 세대를 넘어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슈페너는 영원한 생명을 지닌 하나님의 교회를 개혁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소망을 신자들이 잃지 않기를 권면하고 있다. 난파선 같은 한국교회를 떠나는 대신, 한국판 '콜레지아 피에타티스'들이 모여 희망을 논해야 할 것이다. 163-164쪽』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열매들을 우리의 인내로 배양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은 주님 자신이 놀라운 분이신 것처럼 놀라운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그분의 일은 드러나지 않게 이뤄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그분의 일은 더 확실하게 이뤄질 것입니다.』 - P19

우리는 공공연한 추문에 휘말린 사람들이 도처에서 발견될 뿐 아니라 참된 기독교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목회자들을 찾기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참된 기독교란 명백히 드러난 악을 피하고 외면적으로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 P31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과 사랑에 근거하여 이렇게 목적에 어긋나는 일을 보고 한탄하며 사람들을 감화시켜, 그 목적에 진심 어린 관심을 갖게 하기를 갈망합니다. 내가 위험한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사람들이 치유되기를 원하는 사랑 때문입니다. - P77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의 밝게 빛나는 영광스러운 미덕을 보여주는 탁월한 예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깊은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는 구주에 대한 신앙고백이 위태로울 때, 두려움 없이 끔찍한 순교를 향해 돌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강렬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형제‘와 ‘자매‘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를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서로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었던 그들의 사랑은 얼마나 열렬한 사랑이었습니까! - P94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자신이 소유한 기도와 감사와 선행과 헌금 등을 바칠 뿐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가족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계하고, 권면하고, 회심시키고, 교화하고,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가능한 한 그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질 의무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우선적으로 지적해 준다면, 그들은 자신을 더 잘 돌보고 자신과 이웃들의 덕을 세우는 데 전념할 것입니다. - P111

기독교 신학의 과도한 교리화에 진저리 나는 종교전쟁의 무기력 가운데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때론 교회와 성도들이 타락하고 나태해질 수 있지만, 여전한 생명을 담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늘 개혁될 수 있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었던 것이다. - P160

교회는 언제나 시간의 흐름을 따라 타락하고 세속화되는 과정을 거쳐 왔다. 그런 와중에 한 세대의 개혁의 열망이 그 세대를 넘어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슈페너는 영원한 생명을 지닌 하나님의 교회를 개혁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소망을 신자들이 잃지 않기를 권면하고 있다. 난파선 같은 한국교회를 떠나는 대신, 한국판 ‘콜레지아 피에타티스‘들이 모여 희망을 논해야 할 것이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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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판사의 하나님 나라와 공동선 - 공적 광장에 선 기독교인의 소명
천종호 지음 / 두란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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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평소에도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기 전부터 천종호 판사님의 행보를 눈여겨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예수 이야기를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판사님이 하나님 나라와 공동선에 대해서 풀어나가는 부분이 궁금하기도 했고, 또 하나님 나라와 공동선이 요새 특히 관심주제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하나의 지침을 제공해주지 않을까란 생각과 함께 판사님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와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고 싶어서 이 책이 읽고 싶었습니다.


2. 기억에 남는 한 문장


선이란 인간 존재의 본연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했으므로,

결국 선을 이룬다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구속의 성취 및 인격과 성품의 완성을 이루게 하는 것이 된다.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속의 성취 및 탁월한 인격과

성품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100-101쪽


3. 책을 통해 깨달은 내용

개인적으로 선악과 명령을 새롭게 해석하는 창세기의 해석을 아퀴나스와 칼뱅과 어거스틴을 가져와서 설명하는 부분은 판사님의 필력과 공부력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소년법정에서 보여준 모습들에 대한 실천의 모습이 이론의 모습과 통합을 이루었던 것이 눈여겨 보였습니다. 이렇게까지 평신도이면서도 성경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 있어서 통합적인 분을 볼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도전받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가장 큰 것은 성품-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구원이 성화와 연결되고 성품과 성화와도 연결된다고 연관짓는 부분에서 이렇게 설명할 수 있구나라는 부분에서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에 있어서도 천국과 하나님 나라를 다르게 보아야할 부분들이 있다라는 것도, 공동선에 대한 통찰 그리고 그로 끌어내는 전도의 의미 또한 삶과 연구에서 버금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라는 것이 세상의 기준과 흐려져 있는 상황에 이런 책을 만나니 참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삶과 신앙과 연구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라는 개념이 흐려져있고, 어떻게 신앙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사회에서 살아가야할지에 대해서 이 책은 이전의 이론과 판사님의 식견을 녹여내어 새로운 통찰들을 제시하며 도전해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닮아가야한다는 것과 더불어 다른 이들도 그렇게 이르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 교회가 무엇에 힘써야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신앙생활과 교회활동과 모든 것은 예수 닮은 사람들을 길러냄으로 인해서 당신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예수 닮은 제자들을 길러냄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판사님이 이야기하신 지상명령의 의미이자 우리의 사명임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단순히 사람을 많이 데려오기보다 사람을 성숙하게 길러낼 때,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갈 때 주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서도 이루어지는 것들을 우리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 공동선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관심 있는 기독교인

  • 개혁주의적 세계관 형성에 관심 있는 기독교인

  • 천종호 판사님의 행보가 어떤 이론에서 오는지 궁금한 사람

  •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살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

  • 공의와 정의에 관심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추천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구원과 성화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고 성품과 선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대해봅니다. 정의와 사랑을 위해, 선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짐으로 당신의 나라와 의를 이루고 소망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쳐봅니다.


선이란 인간 존재의 본연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했으므로,

결국 선을 이룬다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구속의 성취 및 인격과 성품의 완성을 이루게 하는 것이 된다.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속의 성취 및 탁월한 인격과 성품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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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는 여덟 가지 복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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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4 김남준, 생명의 말씀사,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을 읽고
: 소유가 아닌 존재로서 복을 누리고 나누는 삶을 산다는 것
새해를 맞아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건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또 이제 교회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눕니다.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우리는 이런 말을 주변 사람들과 많이 나누지만 정작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그저 장수하고 자손이 잘되고 사업이 번창하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오늘날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사는 복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을 오늘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복으로 사는, 복 있는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이에 대해서 김남준 목사는 해당 서적에서 노련하면서도 깊게 팔복을 하나하나 다룹니다. 복있는 사람은 소유가 아닌 존재에 있으며, 사람됨에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팔복이 그리스도인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침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됨에 모본을 예수 그리스도로 선언합니다. 참된 행복은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임을 힘주어 선언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
애통하는 자는 자신의 죄악과 세상으로 인해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자는 바른 것을 말하면서도 온화한 마음을 가진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그 나라의 실현을 기다리는 사람,
긍휼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
마음이 청결한 자와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이 성품들을 엮어서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재 발견해냅니다.
오늘날은 예수 믿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 닮은 사람은 찾기가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예수 닮은 사람, 예수를 닮아가려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하나님 나라는 이 땅 가운데서 확장되고 교회는 그분의 일을 감당해나가는 기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교회가 교회 답지 못하고 예수님을 보여주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가 팔복의 선언을 다시 주목하면서 소유의 복이 아닌 성품의 복으로서 내가 살아가고, 또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재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는데 이 책이 도움을 주기를 바라며 책의 한 구절과 떠오른 찬양으로 글을 마칩니다.
"온유한 자는 이런 방식으로 땅을 유업으로 받습니다.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들은 지상의 땅을 갖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땅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 것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들이 행복하게 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진 것을 버리고, 목숨까지 바치길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00쪽"

온유한 자는 이런 방식으로 땅을 유업으로 받습니다.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들은 지상의 땅을 갖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땅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 것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들이 행복하게 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진 것을 버리고, 목숨까지 바치길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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