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 경제
이순환 지음 / 북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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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소개

 우리의 삶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환상과 괴리, 그 위험성에 대한 모든 이야기.


Review

 우리는 은연중에 큰 부, 권력, 힘을 가진 이에게 부려지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적정한 선 내에서 돈을 벌 수 있다면, 지위를 얻을 수 있다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나의 시간과 체력을 타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행하는 것에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동시에 먼 훗날, 자기 자신도 다른 이를 착취하며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는, 이른바 [유한계급]이 되길 꿈꾼다.


 그리고 이 책 [착취 경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약한 자가 더 약한 자를 착취하는 것이 굳어지고, 정점에 이른 자본주의 사회에게 당당히 '잘못되었다'라고 소리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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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에 묶여 인신을 구속하던 노예 시대의 물리적 폭력은 다행히 법률로 막고 있지만, 자본을 이용하여 타인의 생산 수단을 제한하거나 자기 의사나 행동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행위는 정당하게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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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우리의 삶에서 '착취'가 일어나는 [모든] 부분들을 하나하나 잡아내어 지적한다. 은행, 증권, 보험, 각종 플랫폼, 종교, 사교육 등 '자본주의'의 원리에 따르는 이상 우리가 이용하고, 몸담는 모든 것들이 착취의 현주소다.


 물론 저자도 이러한 착취의 시스템은 인류가 발생하고 모여서 살게 된 이후부터 생겨난 것으로 우리의 잘못이 아니지만 인류가 진정으로 '행복'하길 바란다면, '자유'롭게 살길 원한다면 모두 뿌리 뽑아 고쳐져야 할 것들이라 이야기한다.


 또한 그의 '자본주의'의 착취적 구조가 사라져야만 하는 이유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착취-불평등-혁명의 역사 때문이라 말한다. 그리고, 과거와 달라진 부분은 급격한 기술의 발전으로 더는 누군가가 책임을 진 뒤 새롭게 구조가 개편되는 '혁명'이,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보고 공멸해 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이제는 착취와 불평등이 극에 달해 생기는 폭발이, 전례 없이 커질 수 있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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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 노동자, 세입자, 소작농, 하도급 업자, 플랫폼 사업자, 자영업자 등 시스템의 하부에 놓인 사람들의 삶은 과거 농노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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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시야 외에도 개인적인 시각에서 상당히 도움이 되는 책이다.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들을 조목조목 짚어준다는 건, 독자가 제 삶을 착취하는 것들을 인지하고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이야기니까.


 이미 전 세계 시스템의 기반이 되어버린 착취 베이스의 자본주의가 개선되는 데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긴 시간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것들을, 책을 통해 하나둘 떨쳐내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도 착취 없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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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소한 일상 -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시공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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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소개

 인간 '다자이 오사무'를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그의 짧고 일상적인 산문들을 모아놓은 책.


 Review

 다자이 오사무 작가가 여러 곳에 투고한 짧은 산문들을 모아놓은 산문집이다. 여러 신문사에 투고된 글들이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일상적인, 요즘으로 치면 SNS에 올리는 글과 같은 느낌을 주는 글들은 '인간 실격'이라는 유명한 책 덕분에 쌓인 작가의 이미지 외에 인간 다자이 오사무란 어떤 사람이었나.


 부잣집에서 태어나 막내로 그 어떤 제약도 없이 장롭게 살아왔지만, 덕분에 세상 물정을 모르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아이로 자란 다자이 오사무. 더 자라 생활력도 없고, 염세적이며 냉소적인 삶에 의욕이 없어 '생활의 공포'에 시달려 하직하는 날만을 어릴 때 부터 기다려 온 그.


 연인도 있었고, 글쓰기의 재능으로 계속 먹고 살며 유명한 작가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음에도 마치 뭍에 아가미가 달린 채 태어나버린 물고기처럼 극심한 고통을 느꼈던 '다자이 오사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산문집 '나의 소소한 일상'에 손이 가게 만들었고, 이 책은 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도 더 많은 궁금증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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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를 추구하다가 질식하기보다는, 나는 탁해도 크고 싶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지기 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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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 보면 개인적으로도 공감이 가는 면모가 많았다. 나태에 찌들어 있으며 그걸 자각하고 있는 부분이나, 나태한 자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만을 하는 부분이나, 그러면서도 야망은 속에서 들끓고 있는 남자. 책을 읽고 나니 그에게 묻고 싶어졌다. 도대체 무엇이 당신의 야망을 꺾고, 자살로 내몰았는지. 혹은, 당신의 야망과 열정, 글에 대한 재능은 진작 마음을 먹은 자살을 하기 전 잠깐 즐기는 심심풀이에 불과했던건지.


 다자이 오사무는 참 알수록 묘한 인물이다. 저 자신도 인정할 정도로 나태해 빠진 인간이지만, 그런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글들을 써낼 수 있었을까. 자신의 결함들을 속속들이 알고, 그토록 부끄러워 한 사람이 어떻게 그걸 '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고, 동시에 그런 수치심을 팔아 돈을 벌며 사후에도 이름을 알릴 수 있었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과연 나는, 나의 치부를 책으로 내기는 커녕 글로 그처럼 쓸 수나 있을까. 내가 아는 '부끄럼'과, 다자이 오사무의 '부끄럼'은 과연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 실격'이 위스키라면 [나의 소소한 일상]은 그걸 아주 옅게 희석시킨 칵테일 같은 책이라 훨씬 편하게 읽기도 좋다.

'인간 실격'을 직접 읽어볼 정도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나의 소소한 일상]도 반드시 읽어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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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세계를 다시 그리는 대륙
강행구 지음 / 북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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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소개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변화한 '아프리카'의 현실과,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그들의 삶의 태도와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


 Review

 아프리카에서 외교관 일을 하며 겪은 여러 고난과 행복을 담아낸 에세이 [아프리카에서 희망을 찾다]를 쓴 강행구 작가의 차기작, [아프리카, 세계를 다시 그리는 대륙]은 이전 작품보다 더욱 넓은 시각과 객관적으로 '아프리카'라는 곳의 현재를 선명히 그려낸다.


 간혹 접하게 되는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들로는 '혹독한 자연환경', '혼란스러운 정치 구조로 인한 유혈 사태', '경제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가난한 나라'라는 인식이 크지만, 도서 [아프리카, 세계를 다시 그리는 대륙]은 이러한 이야기는 과거의 아프리카에 불과하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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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기준 아프리카 인구는 약 14억 2천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2050년에는 25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그중 60% 이상이 25세 이하의 청년층일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인구 구조는 아프리카를 풍부한 노동력과 역동적인 소비 시장을 갖춘 대륙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미 중산층 인구는 3억 명을 넘어서며 자동차, 스마트폰, 금융 서비스, 가전제품 등 다양한 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아프리카는 이제 '지원의 대상'이 아닌 '소비의 주체'로 전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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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간 아프리카와 영사 업무를 비롯한 외교 업무를 이어온 강행구 작가의 경험을 정제하여 그려낸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한국전쟁 이후 역동적인 성장이 시작되던 대한민국이 겹쳐 보인다. 기반 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만큼 외국의 기술을 흡수하며 도약적 성장을 이뤄내고, 그 넓은 대륙에 존재하는 막대한 노동력과 자원들은 겉으론 척박해 보이는 땅이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으론, 이런 경제적인 요소만 눈여겨 볼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라는 대륙 속에 녹아들어 있는 문화와 철학의 가치도 돋보인다. 공동체를 중요시하며 일상과 개개인의 감정까지 다 같이 짊어질 것으로 여기는 아프리카는 발전 수준과 가혹한 환경, 과거 유럽의 노예무역과 식민지로 아픈 역사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행복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행복'의 중요한 열쇠가 '소득'이 아니라 '교류'이자, '타인'이며 계속해서 낮아지는 행복에도 계속 '소득'만을 맹목적인 해답으로 쫓는 한국인들에게 '진정 그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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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춤은 삶의 언어이자 감정의 표현이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이는 아프리카 사회가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표현하고, 함께 공감하며 치유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감정은 숨겨야 할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나누는 삶의 일부인 것이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개인'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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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서, 좋은 것을 먹는 삶이 행복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한 돈을 벌기 위해선 투자되어야 하는 것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많으며 그럼에도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졸라맨 허리띠를 조금만 느슨하게 풀고, 경제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삶 속에 그들처럼 자신 주변의 공동체를, 곁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만 더 보듬어보면 어떨까. 혹시 모르는가. 먼 미래에 쟁취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행복이, 이미 자신의 곁에 머무르고 있었을지.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대한 풍부한 정보뿐 아니라, 당장 내가 살아가며 보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내 식견이, 내 생각이 얼마나 꽉 틀어막혀 있었고 스스로가 알지 못했던 선택지가 얼마나 많았는지 인문학적 시야도 확 트이게 해준, 마치 한여름의 꽉 막힌 공기를 환기해 주는 상쾌한 바람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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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는 병원에서 시작된다 - 초보 의사가 전하는 고군분투 인턴 생활의 생생한 기록!
김민규 지음 / 설렘(SEOLREM)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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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소개

 일을 넘어 따뜻한 치유를 하길 원하는 병아리 의사, 인턴의 고군분투 기록


 Review

 우리나라에서 의사에 대한 인식은 정말 좋다. 오죽하면 최근 초등학생 대상의 '의대 준비반'이란 것까지 있다고 SNS에서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니까.

 분명 의사는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 지위도 무척이나 높은 편이다. 지인으로라도 아는 의사 한 명 있으면 괜히 어깨가 솟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의사라고 한들 어떻게 일이 쉽기만 할까. 그 모든 게 의사에 대한 '희망편'의 이야기였다면 이 이야기는 조금 더 '절망편'에 가깝고 현실적인, 번듯한 의사가 되기 위한 병아리 의사, '인턴' 의사의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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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들을 지웠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주어진 지금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도 되지 않을 땐 차선을 생각하면 된다. 절대 실패나 포기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내가 여러분께 이야기해 줄 것이 있어서 이 밤에 긴급히 호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 손에 누군가는 운명을 달리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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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모두 어떤 일이건 '처음'이 있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미숙하고, 미숙함에서 배워나가며 점차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그 '처음'인 일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면 어떨까? 만일 실수로 사람을 살리지 못했을 때, 골든 타임을 놓쳐 살릴 수 있던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 '처음 하는 일은 누구나 미숙한 법이죠. 그럴 수 있죠. 괜찮아요.' 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아니, 목숨이 아니라 단지 수술 중 실수를 해서 다시 해야 하는 경우만 되더라도 엄청난 난리가 벌어질 것이다. 바로 이게, '의사'가 되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불합리한 부담감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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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은 명함 크기의 반 정도 되는 흰 스티커에 쓰여 있다. 간호사 선생님이 그 스티커를 내게 붙여주며 할 일을 전달해 준다.

"선생님, 3구역 ABGA요! 급해요!"

"선생님 4구역 L-tube irrigation 있어요! 급해요!"

이렇게 모두 급한 검사라고 하면서 스티커를 붙이고는 바쁘게 사라진다. 전부 급하다고 할 때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응급실에는 보통 80명 정도의 환자가 머물러 있다. 여기에서 생기는 모든 인턴의 일은 인턴 2명에게 맡겨진다. 한 사람당 40명의 환자를 맡고 있다 보니 벅찰 수밖에 없다.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끊임없이 일을 하며 팔에 붙여진 스티커를 떼어내도 그 숫자가 줄지 않고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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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 [나의 하루는 병원에서 시작된다]에는 이런 모순과 그런 모순을 마주하고도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자 악착같이 버티는 인턴 의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응급실이라는 전쟁터를 제 발로 선택하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느 인턴 의사의 모습은 흔히 보이는 병원들 안에서 '의사'로써 일하는 분들을 다시 보게끔 만든다.


 한편, 진심으로 사람을 위한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기에 담긴 고민도 에세이 속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긴급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을 유지해야 하는 의사이지만, 과연 완벽하게 이성만으로 움직이는 의사가, 사람들의 목숨을 가능성과 돈으로 철저하게 분석해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의사가 과연 정말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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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흔히들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정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상황에 나는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의사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눈물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돌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이 단지 일이 되어버린 사람은 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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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고귀한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생과 사의 경계에서, 어찌 보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지만 그 일이 생사를 구분 짓는 사신과도 같은 일이란 부분에서 이처럼 환자들에게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그의 마음은 너무나 아름답고, 동시에 언제 꺾일지 몰라 불안한 한 떨기의 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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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알베르 카뮈 전집 개정판 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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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소개

 어느 말 많은 변호사의 입을 빌려 카뮈의 인간의 모순과 이중성에 대해 즐겁게 수다를 떨 수 있는 고전 문학


 Review

[페스트]. [이방인]을 쓴 카뮈의 여러 책들 중 어렵다고 소문난 [전락]이지만, 책을 읽기 전과 읽는 동안, 그 사실을 몰랐던 나로써는 '이게 그정돈가?'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따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나서 '남들은 어렵다던데 나는 읽을만 했다'며 으스대기 좋은 책인 것이다.

 물론, 이는 책을 읽는 내가 받아들이는 감상만으로 즐길 경우의 이야기고 여러 평론가, 전문가, 문학계의 분석을 이해하려면 이 역시 어려울 필요가 있다...만. 그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마음에 들면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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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감, 나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데서 오는 기쁨은 인간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전진하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반대로 이러한 것을 빼앗아버린다면 인간은 침이나 질질 흘리는 개나 다름없이 되고 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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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변호사와 이야기를 하며 전개된다. 술을 물처럼 마신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말이 많은 이 사람. 하지만 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에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안목이 심겨져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 범죄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로 자신의 일에 아주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는 자신의 자부심이 단순히 '정의'로운 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자비를, 적선을 베푸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뭇 '사람'이란 누군가에게 섬김을 받거나 타인을 지배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며, 이는 공기로 숨을 쉬듯 당연한 것이라 읊는다. 이 대목에서, 책을 읽는 나는 현대의 수많은 노동자들을 이끄는(지배) 사업가, 사람들의 관심(섬김)을 받는 인플루언서와 정치인 등이 자연스레 연상되며, 이 변호사가 지배받고 타인을 섬기는 이들은 노예이지만 노예라 불리지 않는 사람들이라 칭하는 모습에 뇌리에 전류가 흐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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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이란 건, 가급적 미소 지으면서 해주는 복종이란 건 그러므로 불가피한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걸 노골적으로 인정해서는 안 되죠. 하는 수 없이 노예를 부릴 수밖에 없는 사람의 경우라면 노예를 자유인이라고 지칭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우선은 원칙상 그러는 편이 좋고 그 다음은 노예가 절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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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말이 아주 많은 변호사는 이런 안목을 통해 엿볼 수 있듯 '인간'에 대한 아주 깊은 이해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그가 지치지 않고 떠벌거리는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세상의 이면을 비추고 있으며, 그의 모든 것을 까발리는 안목은 자부심이 충만하고, 줄곧 삶이 행복하다 느끼던 그 자신조차 분쇄하여 파헤친다.


 모든 현대인이 심판하는 자이며, 심판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과 그들의 위선, 죄의식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은 읽는 이의 속을 뻥 뚫어줄 뿐 아니라 당장 사회의 가장 큰, 핵심 문제점들을 자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듯한 기분마저 드는 이 변호사이자, 자칭 재판관이며 참회자인 그의 이야기는 인간의 이중성과 모순에 대해, 이기성과 부조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즐거운 대화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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