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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0시의 몸값
교바시 시오리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3년 3월
평점 :
독특한 소재로 한 신박한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 나도 펀딩을 해본 적이 있는데 펀딩을 악용해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거구나, 작가는 어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 여기서 크라우드 펀딩이란, 색다르고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음에도 자본이 없어 실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아이디어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에게 투자 받는 방식이다. 나도 기다리던 성우의 음반이 있을 때, 추억을 회상해 줄 완구가 있을 때 누군가의 반가운 펀딩 소식을 접하고 이용하곤 했다. 그런데... 일본 대국민 펀딩을 통해 인질의 안전 여부가 결정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친구의 남자친구에게 이용당해 자신이 보이스피싱의 전달책이 된 것 같다고 변호사 '고야나기 다이키'에게 의뢰를 해온 대학생 혼조 나코. 그녀에게 사연을 듣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그녀는 사라지고 만다. 그러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10억엔을 24시간 안에 모금하지 않으면 안전 보장을 해줄 수 없다는 협박문이 도착한다. 그리고 그 조건이 좀 이상하다. 범인이 그냥 돈만 목적이라면 목표 금액만 달성하라고 하면 될 텐데 1이니 상한액까지 만들어 버린다. 그럼 돈 많은 소수의 사람이 모금을 할 수도 없는 구조. 100만엔 최대 50건, 50만엔 최대 100건, 1만 엔 최대 1만 건, 5천 엔은 상한 없음. 단 신청은 1인당 2건으로 제한을 해버린다. 그야말로 다수에게 돈을 받아야만 한다. 그것도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내에서. 잘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모금을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꽤 놀랍게도 높은 금액부터 펀딩 금액은 하나둘 모인다.
그런데.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펀딩을 받으려면 이게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업체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 전대미문의 대국민 펀딩 사건을 담당하게 된 사이버앤드인피니티 회사는 긴급대책회의를 연다. 협조할 것이냐, 아닐 것이냐. 협조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세세하게 대책을 세우고 이것저것 따져가며 결정을 한다. 기업이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협조 여부를 정할 때까지 과연 선의만 있을 것인지 양쪽의 입장을 모두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만약 내가 이 기업에 속했다면 단순한 선의로 결정을 했을까.
금액을 모으는 건 모으는 거고, 경찰은 당연히 범인을 찾는 데에 몰두를 해야 하는데 혼조 나코를 실종 전 마지막으로 본 고야나기 다이키에게 무언가 아는 게 없냐, 어떤 상담을 했던 것이냐, 수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캐묻지만 이 와중에도 변호사는 의뢰인과 '비밀 유지 의무'가 있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이것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의뢰인과의 일은 비밀로 하는 걸까? 정말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어도 주지 않는 게 맞는 건가, 그게 변호사의 윤리인가.. 참 어렵고 갈등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굳이 가짜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 요즘엔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섬네일로 유입하게 만드는 게 참 많아 문제가 많다. 근데 다른 사람을 해할 수도 있는 가짜 뉴스를 정말 왜 굳이 만들어 퍼뜨리는 것일까. 실종되었고 협박문이 날아왔다 그 정도가 사실인 것인데 혼조 나코에 대한 루머가 생성되면서 그래도 사람 목숨 구한다며 펀딩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선택을 되돌리려고 한다. 이때를 노려 광고비라도 벌어보겠다는 것인지, 의도가 너무 나쁘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실종사건의 범인보다 이유가 더 궁금하게 만들다니, 교바시 시오리 작가의 '요즘 세상'을 반영한 듯한 펀딩 소재 소설은 정말로 색달랐다. 하루 만에 다 읽었는데 그야말로 숨 가쁜 미스터리 맞다.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여러 곳에서 터지는 갈등, 생각해 보게 만드는 주제를 담고 있는 정말 신박한 일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