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 추하다 당신의 친구
사와무라 이치 지음, 오민혜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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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예쁜 아이들이 추해지는 저주에 걸려 자살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정말 정체모를 주술인 것이 맞을까? 어려서부터 많이 듣던 학교 괴담이 있다. 전교 1등을 시기한 친구라던가, 인기가 많은 친구를 질투한 친구라던가. 이 책 역시도 그런 괴담 중에 하나인 것일까? 나도 처음엔 흔해빠진 괴담이야기일 줄 알았다. 이렇게 스산한 느낌이 들 줄은 몰랐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아이는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걸까? 조금 추하다고 해서 무시해도 되는 걸까?

담임인 고타니 마이카도 예외는 없다. 이건 같은 반 여학생들끼리만 통하는 못된 주술이 아닐 수 있다. 이 책은 주술을 거는 범인의 시점과 전지적작가시점이 번갈아 나온다. 그래서 추리소설처럼 이 아이는 도대체 누구이길래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고 저주하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범인은 사실 이런 저주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이카의 생각처럼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됐다.

 

죽음에 관한 소문이 퍼질 때마다 학생들의 반응은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가 아니라 정말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람들은 고통을 싫어하면서도 은연중에 남의 고통을 즐기고 궁금해하는 성향이 있을 수 있다. 못생겨져서 충격에 죽었다면, 얼마나 못생겨졌길래 죽은 것인지, 다음은 누가 그렇게 못생겨질지 보고싶다는 것이다. 희생자를 추리하면서 다음 희생자를 기대하고 죽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말과 행동들을 계속하고 있다. 낮은 자존감과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얼굴이 아름다운 아이들이 저주를 받아 죽게 된 것이라면 본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나 타인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던 아이들은 다음 희생자가 누구일지 기대하고 즐긴다기보다 겁에 질려 숨어 다니게 될 테니까 말이다. 자신의 얼굴을 좋아하지 않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 즐기고 있을 것이다. 아름다워서 편하게 살았었지? 근데 어쩌나~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왜 자신의 얼굴에 만족하지 않고 자존감이 낮아졌을까. 천박하기 그지없게 자기들끼리 외모 등급을 나누어 차별하는, 이러한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

 

이런 감상평이 있었다.

많은 감상평 중에 가장 공감이 되고 나의 생각과 같은 느낀 점이었다.

이 이야기처럼 정말

자신의 얼굴이 하루아침에 저주로 인해 추악해지고

그로 인해 연달아 죽게 되고

이런 판타지스러운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마냥 이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이 이야기가 얘기하는 '외모지상주의'라는 가치관 때문인 것 같다.

단순한 호러 소설이 아니라 생각이 많이 드는,

반전까지 겸비한 일본 호러 소설 <아름답다 추하다 당신의 친구>였다.


※ 리딩투데이 서평단으로 도서만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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