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평점 :

내 탐정이 벨기에인이면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보통 작품을 쓸 때 선역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자신의 국적에 맞추는 경우가 많다. 애국심과 친밀함 등의 이유에서겠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탐정'은 벨기에인으로 영국인인 애거서 입장에서 외국인이다. 이미 영국에는 '셜록 홈즈'가 존재한다. 그와 경쟁할 엄두는 나지 않았는데 다른 탐정들은 딱히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러다 벨기에 난민이 생각난 것이다. 왜 안 될까? 당시 벨기에 국가는 존재감이 약해서일까 신기하게 영국 독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라이벌 관계도 아니고 국가의 존재감이 없어 그 국가를 받아들이는 데에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 등의 이유로 주인공이 외국인이든 뭐든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당신은 마치 의학 사전처럼 말하는군요!
제 1,2차 세계대전시 약제사로 일하고 간호사 경력도 있는 애거서 크리스티는 독약 등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 그 덕분에 그녀의 작품에서는 독약과 관련된 정보의 밀도도 높다. 마치 의학 사전처럼 말이다. 이러한 지식들은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나 <벙어리 목격자>, <죽음과의 약속>, <카리브해의 비밀> 등의 다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양 제약학의 역사도 함께 말이다. 내가 그녀의 모든 작품을 읽어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단편, 중편 작품들에서 얼마나 많은 약학 지식이 나왔는가는 잘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호기심이 생기며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약뿐 아니라 이 전장에서 소개한 '저택'에 관해서도 말이다.
비싼 사립학교 교육을 받았어요. 그래서 라틴어를 들어도 잘 몰라요.
앞뒤가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놀리는 대사가 맞다. 상류층 인물들은 사립학교를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의 작품에서 사립학교가 자주 등장하는 것에 비해 좋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명문 사립 학교 출신의 범죄자를 그리기도 한다. 왜 그럴까? 애거서의 오빠는 사립학교를 다녔는데 그 오빠가 사치를 일삼고 부덕했다고 한다. 또한 형제자매에 비해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이 학교생활에 대한 경험을 박탈당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잘 몰랐을 이야기들. 그냥 단순히 '범인 찾기'로 그녀의 추리 작품들을 읽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설혜심 역사가가 쓴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를 통해 그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왜 이런 특징이 있는 것인지, 작품들이 쓰인 시대는 어땠는지 알게 되었고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는 반면, 읽었던 작품들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어봐야겠구나 - 이 책에서 소개된 키워드를 생각하며 다시 제대로 봐야겠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는 데에는 스토리뿐 아니라 그 책이 쓰인 시대와 작가의 배경, 가치관 등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여행지에 갈 때 그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이 큰 차이가 있듯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 꼭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리딩투데이 서평단으로 도서만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