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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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섬, 난지도.  시골에서 자란 나도 서울에 '쓰레기 섬'이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텔레비전 보도 자료나 간간히 화면을 통해서 쓰레기를 쏟아내는 트럭과 , 그 속에서 물건을 고르던 사람들을 본 기억이 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고, 어떤 일을 했으며, 왜 그 곳을 떠났게 되었는지, 난지도의 생성과 소멸을 이 책을 통해 어림잡게 되었다. 이 책을 계기로 비로소 난지도의 역사를  알게 된 셈이다.

蘭草와芝草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 蘭芝島, '쓰레기로 더럽혀진 어지러운 땅'이라는 뜻으로 짐작했던 난지도가 이렇게 예쁜 한자 이름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꽃섬'은 어떤가,  철따라 온갖 꽃이 피어 예전에는 꽃섬이라 불리었다니! 겸재 정선의 [금성평사]는 1740년경의 난지도 일대를 그린 그림이다. 그 그림 속의 300여 년 전 모습은 낯선 풍경이었다. 세계문화유산 '華城'의 성곽을 걸을 때 '이성을 쌓을 당시에 주변은 어떤 모습이었까?' 궁금해지곤 한다. 100년 후, 200년 후, 누군가는 하늘공원의 옛날 모습을 읽으며 눈을 반짝이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두 가상의 세계가 등장하는 옛날이야기. 산처럼 높이 쌓여가는 쓰레기더미를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던 난지도의 모습은 불과 20~30년 전에 실제로 존재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엣날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은 그 모습이 사라져 사람들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되었으며, 또다른 세계, 땜통과 딱부리와 빼빼엄마가 파란불을 따라가서 본 세계, 쓰레기가 쌓이기 전의 평화롭던 마을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어린시절 여름, 마당에 멍석 깔고 누워 별을 헤고 있노라면 저 앞, 벼가 자라고 있는 들판에는 파란 불들이 너울너울 춤추고 다녔다. 밤에 공동묘지는 파란불 천지라는 말도 들었고,  쫓아가 보면 그 판불들이 부지깽이나 몽당 빗자루들로 변한다는 말도 들었다.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사람의 '인' 성분이 파란불을 만든다고 했다. 문명이 발전하고 사람들은 한 물건을 인이 박힐 만큼 사용하지 않게 되고,  쉽게 사고 쉽게 버리고 쓰레기가 늘어나고 당연히 파란불은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인이 박힐 만큼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이라면 한 사람의 혼과 맞닿아 있을 테고 그런 물건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정신이 사라져 간다는 뜻일 것이다. 너울너울 춤추던 도깨비불이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의 넋이 그만큼 사라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물의 '원형'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것은 그리움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원형의 모습들은 오히려 낯설었고, 지금도 그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것들, 높은 산이나 바다에 흐르는 도도한 기운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행기 활주로처럼 펼쳐진, 저쪽 끝이 보이지 않는 방조제에 서서 바다를 막아 만든 거대한 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원형인 바다가 보인다. 그 바다의 끝 쪽 변두리에는 가물거리는 내 유년의 기억 한토막이 있다.  사막의 모래 결처럼 고운 자그마한 모래밭엔 해당화가 한두 그루 피어있고, '이름이 뭐였더라?', 짭조름하고 달짝지근한 풀뿌리를 뽑아 고운  모래 툭툭 털어내고 아작아작 씹어 먹고 있는 꼬마가 있다. 근처, 민물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엔 사람들이  '짱아'를 잡고 있다. 대나무 손잡이가 달린 곱게 촘촘히 성긴 파란 그물 아래쪽 끝에는 자전거 체인처럼 생긴 쇳덩이가 매달려 있다. 꼬마는 짱아를  담을 노란 양은 주전자를 들고 따라다닌다. 불과 40년도 안된 이 유년의 기억, 내가 기억하는 '원형의 모습'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이 책은 난지도가 쓰레기섬이었을 당시 그 곳에 살던 사람들에 대한 삶의 기록이며, 꽃섬이 높은 산의 형태인 '하늘공원'으로 탄생한 배경이 되는 글이기도 하다. 100년 후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고, 그 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울창한 숲을 이룬 하늘공원의 땅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애초에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약'을 개발하여 그 땅을 되살릴 방도를 찾아낸 것은 정말 다행이다.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가 줄 수 없는 '원초적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산과 바다를 찾는 것이리라! 쓰레기와 원초적 에너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만큼 실천에 옮기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 짱아 : 치어(실뱀장어)의 충청도 사투리

201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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