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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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시집

이 시집이 내 손에 닿은 건 순전히 많이 들어본 시인 이름 때문이다. 내용은 잘 기억 안 나지만, 김훈 작가가 책에서 언급한 것도 보았고, 여러 글에서 사람들이 그의 시를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있었고, 빛나는 꿈의 계절 4월에 시를 한 수 읽어보자 했을 때, 이 시인이 떠올랐다. 기형도의 시가 그렇게 아프다는 걸 전혀 몰랐던 거다. 어쩌면 찬란한 봄에 읽어야 나을지도 모른다. 한 겨울엔 시리고 아파서 못 읽을 것 같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 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P95)"

1960년생. 일제강점기를 산 것도 아니고, 6.25를 겪은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사회의 중추 역할을, 고만고만한 해에 난 사람들이 하고 있지 않은가!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그도 분명 알았을 텐데, 스물아홉 아까운 생을 그렇게 마감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렇게 밖에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한 고통,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그것이 힘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분간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고통은 그래도 견딜 만 했을 것이다. 거기엔 사랑이 있기에.  그런데, 먼지 만 한 희망마저 놓아버린 그 지점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어 미안하다. 아니, 온전히 알려고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p.134)

미끈하고 먹음직스런 왜무를 깨끗이 씻어, 열무 삼십 단 만 한 무게를 이고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던 내 학창시절과 만난다.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엄마는, 삼백 원에 열개 하는 한 귀퉁이 벌레 먹은 사과를 꺼내며 읍내 사람들이, 깨끗이 씻어 가지고 가는 엄마 무를 찾아 금새 팔린다며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무게에 눌려 불덩이처럼 뜨거웠을 아픈 엄마 머리를, 그 때는 까맣게 몰랐다. 가슴이 벌렁거리는 두려움을, 삶의 무게를, 시대의 아픔을, 혼자 삭이며 가정을 온기로, 웃음으로 채워준 엄마, 고맙습니다! 

그의 가장 좋은 선배였던 김훈은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156)” 라고 했지만, 나는 그가 스칸디나비아 작은 구석에서라도 다시 태어나 살고 있기를 바란다. 의.식.주 그리고 자유, 기본 생존이 갖춰진 곳에서 훨훨 노래하며 살고 있기를 바란다. 철없이 한세상 살다가도 누가 뭐라지 않으리라. 그리고 아직도 아깝다. 희망을 노래할 수 없다면, 희망을 지껄이기라도 할 수는 없었는지.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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