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 -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 수상 작품집
성백광 외 지음, 김우현 그림, 나태주 해설 / 문학세계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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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적 읽었던 동시들은 이쁘고 아기자기 해서 좋았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만 해도 명사들의 시가 뭔가 삶의 심오한 의미가 담긴 느낌이라 좋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 [꽃]

이 싯구만 해도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운 말인지 느껴지니 말이다.

다만.... 내 눈엔 그저 그리움을 담은 것 뿐인 시이고, 그저 사랑스러워 보이는 시인데 그것이 왜 독립에 대한 열망을 노래한 거라고 강요하는지를 모를 문학수업 때문에 조금 거리감이 생겼을 뿐이었다.

당시의 문학은 그런거라고 차치하고서라도 성인이 되어 시를 외면하게 된 이유는 딱 하나.

내가 알고 있는 시의 개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고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시(詩)라고 함은, "생각을 간결한 언어로 표현한 글"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쏟아져 나온 시집들은 요란한 미사여구에 휘둘려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게, 단순히 멋져보이는 말로 독자를 홀리고자하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져서였다. -물론 내가 표지 그림이나 제목에 휘둘려 그런 시집만 골라 봤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뀔 동안 읽지도 않던 내가 이 책을 보게 된 건 출판사 서평에 쓰여진 몇 몇 개의 짧은 시 때문이었다. 간결해도 너무나 간결한 두 세줄의 형식, 강렬해도 너무나 강렬한 내용. 수 십년의 세월을 오롯이 서너 줄에 담아버린 어르신들의 명쾌한 표현들 때문이었다.

굳이 예를 들자면,

기억력이 형편없는 사람에게 "너 치매냐?"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말이 치매환자의 가족이 되고서야 그 표현이 그렇게 함부로 해선 안되는 말이란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지금의 나이에는 함부로 입에 담으면 안되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스미는 나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어렵게 입모양을 보고 읽은 '중,꺽,마"를 두고 쉬운 일편단심을 두고 그런 말을 쓴다고 화(?)를 내시는 어르신의 마지막 "써글" 한마디에서, 와서 좋았지만 가면 더 좋은 손자들에서 벌써부터 느껴지는 동질감에 피식 웃고, 이 병 저병 모두 퇴행성이라 약이 없다는데 마음 아픈 것조차 퇴행성이라 약이 없을거란 말에서 괜히 슬프고, 그나이가 되어서 보니 "이 당 저 당 다 있어도 경로당이 최고"라고, 잘 놀고 잘 베푸러 좋던 친구도 "이젠 살아있어주는 사람이 최고"가 되는 황혼의 나이가 되었어도 마음만은 여전히 나이를 먹지 않은 어르신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짧은 글 긴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누군가는 분명 이게 무슨 시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그런 시다. 쓸데없는 미사여구 다 버리고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담아 표현한 이 짧은 글들이 내게는 시다. 그래서 이렇게 짧은 글 안에서 인생을 살며 겪어온 많은 일들에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제 나도 점점 그런 나이에 접어들고 가고 있음을 무뎌지는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마음과 정신만큼은 같이 늙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

사람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키오스크에서의 주문 방법이 어려워도, 스마트폰으로 카톡 보내는 방법이 어려워도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 계속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한다. 어려운 수학.물리 공식을 몰라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는 아는 것이 바로 늙은이가 아닌 진정한 어른이 될 자격을 갖는 것이다.

알게 될 거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일상의 사소함이 삶의 철학이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말이다.


출판사에서 책만 받아 읽고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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