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럭저럭 살고 싶지 않다면 당신이 옳은 겁니다
캐서린 모건 셰플러 지음, 박선령 옮김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평점 :
세상 살면서 듣기 싫은 말에는 참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 책에 한하여 이야기하자면 "드럽게 까다롭다."라는 말이다.
하.... "드럽게 까다롭다"라니.... 아니 상대방은 도대체 얼마나 허술한 사람이길래 이정도를 가지고 그냥 "까다롭다"도 아니고 "드럽게 까다롭다"라고 하는 걸까?
청소년기부터 20대 때까지. 나는 저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사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늘 "왜?"라는 질문을 해야했다. 나에게 당연한 것들이 상대방에겐 까칠하고 까다롭고 예민하고 융통성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당시의 내 눈에는 오히려 그들이 이상한거였다. 자신들의 잘못과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를 탓하는거라 여겼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단계에서 끝을 내야하는) 협업을 해야되는 모든 것이 부담스러웠고, 저절로 혼자서도 뭐든 다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혼밥, 혼영등 혼자하는 것들에 익숙한 사람말이다.
그랬던 내 성격이 바뀌었다.
"살아봐야 얼마나 산다고. 세상 사는게 뭐 그리 대수라고."라며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나의 성향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남들 앞에선 그럭저럭 묻어가는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한동안은 편했다. 굳이 내 성향을 드러내어 싫은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고, 나의 기준을 낮췄더니 스스로를 압박해 온 무게감에서도 탈출한 느낌이었고, 그 까다로움을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서 게을러진거라는 결론에까지 이를렀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편하지 않다. 쉰다고 쉬어도 쉰거 같지 않다. 몸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눈에 보이게 쌓이고, 생각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일처리 속도는 불안감이 되었고 불면증이 되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뻔뻔한 척을 하고 있으나 머리속은 늘 복잡하고 마음은 늘 불안하다.
결국, 그 불편하고 치렁거리는 완벽주의를 되찾아오기로 결정했다. 책 제목처럼 나는 그럭저럭 살고 싶지 않고, 내가 추구하던 완벽주의는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섬세했을 뿐이라는 방패가 되어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근데, 책에서 찾은 나는 예전과 다른 모습을 한 완벽주의자였다.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나올거란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리고, 과거도 현재도 각각 단 하나의 성향만을 향하는. 결국 본질까지는 내팽개치지 못한 어설픈 결심이 나를 혼란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장점을 부각시키는 것보다 단점을 가리고 숨기기에 급급했고, 실패한 모습에 위로를 보내기보다 나를 벌하기에 바빴던 과거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완벽주의에 대한 집착을 버리든 버리지 못했든 상관없이 내 성향을 부정하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음을, 지금 나의 모든 불안과 불면의 밤은 여기서 기인하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책을 읽을 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과거의 내가 그리고 현재의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옳은지 옳지 못한지 가늠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의 나태함과 모든 불안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삶을 산다. 요즘같은 시대엔 어떻게 살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도 그냥 내가 가진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살기로 했다. 비록 속도는 느려졌어도 과거보단 덜 까다로운 모습이 되었어도, 이것이 현생을 잘 살았다는 상이 아니고, 잘못 살았다는 벌도 아닌 그냥 나의 모습이니까. 다만 그럭저럭 되는대로 살고 싶지만은 않은 내 욕심을 담은 채로 편히 살고 싶을 뿐이니까.
출판사에서 책만 받아 읽고 쓰는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