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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있던 자리 - 중세 유럽의 역사에서 발견한 지속 가능한 삶의 아이디어
아네테 케넬 지음, 홍미경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2년 12월
평점 :
우스갯소리지만, 조선시대에도 보장되던 육아휴직인데 지금은 눈치를 봐야하고 복직 후 회사의 처분을 기다려야 된다는 얘기가 있다. 과거에도 보장되던 민생문제가 현시대에 와서는 법으로 보장되어있어도 유명무실에 가까운 제도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10년 전만 해도 낯설게 느껴졌던 공유문화는 이제 일상이 되었고, 한창 유행하던 미니멀라이프는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것에서 몇 년 사이 소유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 리폼문화가 언제부터 시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환경에 대한 갖가지 문제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재사용과 새활용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미니멀라이프의 최대의 적은 "아깝다"라는 생각이라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그 "아깝다."라는 생각이 단어 뜻에 더 충실하게 해석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과거엔 모든 것이 부족한 시대였다.
책 속 내용엔 -이건 정말 놀라운 것이었지만 - 예전엔 섬유로 종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낡은 옷조차도 귀한 자원이었다는 얘기가 등장한다. 지금 제3세계에 쌓이고 있는 의류폐기물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충격에 가깝다.
그러고보니 사극이나 외국의 시대극을 보면서도 깨진 그릇을 버리는 건 봤어도 다른 걸 버리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쓰레기는 정말 쓸모가 없어진 것에 한해서만 해당되는 단어이니 과거엔 쓰레기라는 말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고장나면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수리를 하고, 찢어지거나 뜯어지면 꿰메는 것이 일상이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쓰레기라는 건 다 먹고 나서 떨어진 과자부스러기, 연필을 깎고난 뒤의 나무부스러기 같은 어디에도 다시 쓸 수 없는 것이어야만 그 이름을 부여받았다.
교과서에서 봤던 면죄부(=면벌부)는 밑도 끝도 없이 교회의 부패로 등장했지만, 시작은 수도원의 재건을 위한 기부의 한 방법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기부로 죄의 일부를 사면받는다는 발상이 웃기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쁜 일과 좋은 일을 상쇄시키기엔 이만큼 적합한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다 싶다.
현시대의 일상으로 여겨지는 공유경제, 기부, 미니멀리즘이 중세시대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은 새롭게 느껴졌다. 리사이클링은 시대극에서도 흔히 보이는 모습이라 알고 있었고, 소액대출은 빈곤퇴치를 위한 사회복지제도 중 하나로 배운 기억이 있는데, 나머지는 좀 의외였다. (당시에 그 제도들이 시작될 때는 분명 좋은 의미로 시작을 했겠지만, 기부는 결국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배웠다.) 이 제도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현시대에는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몇 세기를 단절되었다가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등장한 이 제도들이 현시대에 와서 편리함과 더불어 경제적 이익에 앞장서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단점은 사회문제를 만들고 있다.
당장 공유문화는 비대면과 결합되면서 미성년자들에게까지 범죄도구로 전락하는 일이 속속 일어나고 있으며, 공동으로 사용하는 캠핑장의 개수대와 샤워실의 물낭비는 당연한 권리가 되고, 분실과 파손과 오염에는 책임을지지 않으려한다. 일정한 비용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공공기물을 내것마냥 함부로 다루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안다. (정말 짜증난다.)
어제 본 뉴스에선 역대급실적을 낸 은행의 성과급파티에 비판적인 내용이 흘러나왔다. 코로나로 전국민을 넘어선 전세계가 고통을 받는 이 시국에 국민의 고통을 자신들의 이익에 이용한 것과 다름없다는 내용.
결국 부익부빈익빈의 격차만 더 커지고, 중산층이 사라지는, 출산율이 바닥을 치고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복지비용의 충당을 걱정하면서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이 설자리를 줄어들게 하고 있다. 사람들이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이유가 모두 "허영에 물든 낭만"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청소기를 두고도 굳이 빗자루와 손걸레로 청소를 하고, 편리한 전기밥솥을 두고 가마솥이나 냄비에 밥을 할 때, 굳이 이 불편하고 귀찮음을 감수하는 이유가 기계에게 뺏긴 내 자리를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인 나처럼 말이다.
출판사에서 책만 받아 읽고 쓰는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