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날로그인 - 온전한 나를 만나는 자유
서지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가끔 지금의 편리함에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삶이 이렇게까지 편리해져야 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그래, 청소기가 바닥청소를 해 주니 좋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집은 개털 때문에 전기청소기 대신 빗자루와 청소용부직포로 청소를 한다.) 세탁기 덕분에 무겁고 힘든 빨래를 안해도 되니 좋기도 하다. 저녁 식사 준비는 전기밥솥이 밥을 책임져주는 덕분에 반찬 준비를 할 수 있으니 고맙기도 하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로 일상의 편리함이 가져다 준 혜택을 내가 직접 받고 있으니 불만을 토로해서는 안되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을 전기와 기계의 힘으로 해결을 하다보니 어느 날 문득 인간이 존재를 해야되는 이유가 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편리함에 경제적인 이유가 더해져 패스트푸드점은 주문을 받는 직원을 없애고 키오스크를 설치했으며, 마트를 비롯한 많은 상점은 셀프계산대가 점점 더 늘어났고, 은행업무도 모바일의 비중을 늘리면서 창구를 없애고 자동화기기만 설치된 곳이 늘어났다. 내가 필요해서 방문하는 곳이지만, 사람보다는 기계를 더 많이 대면하고 온다. 어느 날은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외출을 끝내고 올 때도 있다. 이렇게 사람이 필요한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인데, 왜 떨어지는 출산율을 걱정해야되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들이 커서 취직할 자리가 있긴 한 걸까? 이렇게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기계들로 채워지는 세상에 사람이란 존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과거를 추억하며 사는 존재들이라고 한다. 그 시절이 어렵고 힘들고 무서운 기억으로 가득 차 있어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기라고 해도, 시대의 변화에 감회가 새로워짐을 느끼는 순간 자연히 그것과 이어진 과거기억으로 회귀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한다. 지금의 내가 알아듣지도, 따라가지도 못하는 아이돌의 노래를 듣다가 90년대의 노래를 들으며 다시 흥겨워지는 것도 그런 맥락이겠지.
작가와 나의 삶이 비슷할 순 있어도 다른 부분이 더 많기에 그 이야기에 완벽한 공감대를 이룰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여 줄 수는 있다. 우린 같은 시대를 살아왔으니까.
나는 내 손으로 직접 뭔가를 해내는 일들을 좋아한다. 타고난 능력이 없어서 오로지 노력으로만 이뤄내야 했지만, 내 손으로 내게 필요한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좋았다. 곁에서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청승이라고 했다. 그냥 인터넷으로 마트에서 얼마 주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것을 굳이 그 노력에 정성을 다해 만드는 내가 신기해 보였나보다. 다 괜찮았지만, 가장 큰 상처를 받는 말은 "쓸데없이"란 단서를 붙이는 말들이었다. 그것이 괜한 시간, 노력, 정성의 낭비라는 듯, 그럴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는 게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듯한 빈정거림. 그들의 눈에는 그저 돈주고 사면 더 번듯할 것에 그만큼의 퀄리티도 되지 않는 것을 만드는 모습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그건 특별한 노동이다. 손노동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 안에 담겨진 나의 노력과 시간과 정성이 그 물건을 사용하는 동안 계속 이어지고 더 애틋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느낌이 연속된 물리량으로 나타낼 수 없는 수치이긴 해도 , 그걸 이해하는 순간 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아날로그에 공감하고 애착을 가지는지도 이해를 할거라며 나를 다독인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여전히 이북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고, 편리한 전기밥솥의 밥보다 가끔 지어먹는 냄비밥이 더 좋다. 무리해가며 구입한 고가의 재봉틀로 드륵거리는 것보다 굳이 쭈그린 자세로 앉아서 하는 손바느질과 손뜨개를 더 좋아하며, 반듯한 글씨로 타이핑 된 것보다 연필로 직접 쓰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연필이 아니면 아날로그가 아니라며 볼펜은 끼워주지도 않는 이 고집은 또 뭔지) 남들이 평가하는 가치가 싸다고 해서, 내게도 싸구려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정성담긴 수고로움이 값으로 평가되어서도 안된다는 생각. 그냥 그게 나다운 것이고, 그게 내 삶이라며 말이다. (그렇다고 저 재봉틀을 안 쓰는 건 아니니 낭비라고 말하진 말아주길....)
출판사에서 책만 받아 읽고 쓰는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