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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걷는 산행
정바름 지음 / 시시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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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先山)을 오르며 / 정바름




저 산이 아버지 같은 이유를 알겠네

육탈한 아버지의 뼈가 산을 떠받치고

세상의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지

아버지는 저 품으로

헝클어진 뿌리를 보듬어 나무를 세워주고

다람쥐 같은 자식 몇을 키웠네

나무도 다람쥐도 사람도

모두 다 그 품에서 자랐으므로

나이를 먹을수록 산은 얼마나 그리운가

언젠가 저 넉넉한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음은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만만찮은 이 세상 살아낸 뒤엔

발길에 채이는 뼈다귀처럼

함부로 구르지 않았으면 좋겠네

내 뼈다귀도 저 산에 묻혀

산을 떠받치고 하늘을 떠받치고

사람 사는 세상을 떠받치면 좋겠네


*출처 : 『마음으로 걷는 산행』(시시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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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걷는 산행
정바름 지음 / 시시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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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신 하나님 / 정바름




몇 푼 위로도 되지 못하는

만원짜리 몇 장 슬그머니

병든 어머니 손에 쥐어드린다


평생을 쏟아붓고도

가난한 자식 보기 안 됐는지

한사코 손을 내젓는 어머니


나는 이제 늙었으니

네 식구나 돌보거라


부끄런 손 접고

눈물 삼키며 돌아서는데

어머니 가슴에 설핏

하늘이 안겨져 있다


평생을 헤매도 찾지 못했던

하느님

거기 앉아 계셨다


*출처 :『마음으로 걷는 산행』(시시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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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걷는 산행
정바름 지음 / 시시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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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숲길을 걸으며 / 정바름

 

 

4월의 숲은 고즈넉했습니다. 햇살이 적당히 따스하고 바람도 잔잔히 일렁였습니다. 능선길을 따라 만발한 진달래꽃은 이제 떠나야 할 때를 아는지 조금씩 빛깔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묵묵히 산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근처 사찰에서 타종한 범종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고라니가 풀쩍 뛰어올라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그러자 절집의 개들이 덩달아 짖어댔습니다. 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열댓 번의 종소리가 모두 사그라질 때까지 조용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잠자던 미물들이 깨어났을까요? 지구를 힘차게 밀고 가는 개미의 행렬이 보였습니다. 우주를 돌리고 있는 날벌레들의 힘찬 날갯짓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이들은 이 산과 지구와 우주를 부지런히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오르는 길 내내 진달래꽃이 만발했습니다. 이젠 자기의 역할이 다한 것이라 느꼈는지 하나둘 시들어 가고 그 빈 자리를 푸른 잎새들이 하나 둘 채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력이 다한 어느 꽃잎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얼마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아주 어릴 적에,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동네 가까운 뒷산에 진달래꽃을 따러 갔었습니다. 그때는 참꽃이라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한아름 따온 꽃잎을 작은 항아리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것이 술이었는지 발효액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나중에 빛깔이 참 고운 그 꽃물을 마셨는데, 그 맛과 향은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동안 맛난 음식을 대접해 드린 일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육식을 하지 못하는 분이셨습니다. 비린내를 조금만 맡아도 구역질을 하는 특이한 식성이셨기에 그 흔한 고기 한 번 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그것이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기력이 다해 온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봉양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죄송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던 날 저는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이제 살아서는 다시 집에 돌아오실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요양원에 지내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 거짓말처럼 스르르 이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진달래꽃이 다 질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회한과 연민이 뒤섞여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멀찍이 앞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여러 번 훔쳤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곧 어머니의 기일이 다가옵니다. 어머니……

 

*출처 : 마음으로 걷는 산행(시시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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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걷는 산행
정바름 지음 / 시시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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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펴도 좋다.
잔잔하고, 뭉클하고, 유유(幽幽)하다.
먼지가 폴폴 나고 마음이 푸석해질 때,
『마음으로 걷는 산행』(시시울, 2022)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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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의 피 신생시선 48
김희정 지음 / 신생(전망)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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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시집을 읽다.
왜 이렇게 슬플까. 면면이.
시는 시인이 써야 한다는 생각, 다시하게 된다.
김희정 시인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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