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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걷는 산행
정바름 지음 / 시시울 / 2022년 5월
평점 :
진달래 숲길을 걸으며 / 정바름
4월의 숲은 고즈넉했습니다. 햇살이 적당히 따스하고 바람도 잔잔히 일렁였습니다. 능선길을 따라 만발한 진달래꽃은 이제 떠나야 할 때를 아는지 조금씩 빛깔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묵묵히 산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근처 사찰에서 타종한 범종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고라니가 풀쩍 뛰어올라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그러자 절집의 개들이 덩달아 짖어댔습니다. 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열댓 번의 종소리가 모두 사그라질 때까지 조용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잠자던 미물들이 깨어났을까요? 지구를 힘차게 밀고 가는 개미의 행렬이 보였습니다. 우주를 돌리고 있는 날벌레들의 힘찬 날갯짓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이들은 이 산과 지구와 우주를 부지런히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오르는 길 내내 진달래꽃이 만발했습니다. 이젠 자기의 역할이 다한 것이라 느꼈는지 하나둘 시들어 가고 그 빈 자리를 푸른 잎새들이 하나 둘 채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력이 다한 어느 꽃잎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얼마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아주 어릴 적에,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동네 가까운 뒷산에 진달래꽃을 따러 갔었습니다. 그때는 참꽃이라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한아름 따온 꽃잎을 작은 항아리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것이 술이었는지 발효액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나중에 빛깔이 참 고운 그 꽃물을 마셨는데, 그 맛과 향은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동안 맛난 음식을 대접해 드린 일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육식을 하지 못하는 분이셨습니다. 비린내를 조금만 맡아도 구역질을 하는 특이한 식성이셨기에 그 흔한 고기 한 번 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그것이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기력이 다해 온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봉양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죄송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던 날 저는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이제 살아서는 다시 집에 돌아오실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요양원에 지내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 거짓말처럼 스르르 이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진달래꽃이 다 질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회한과 연민이 뒤섞여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멀찍이 앞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여러 번 훔쳤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곧 어머니의 기일이 다가옵니다. 어머니……
*출처 : 『마음으로 걷는 산행』(시시울,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