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엌 - 노년의 아버지 홀로서기 투쟁기
사하시 게이죠 지음, 엄은옥 옮김 / 지향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그늘을 주고, 일용할 과일을 맺으며 땔감으로 분해 종래엔 지친 엉덩이를 비빌 그루터기를 제공하는 ‘나무’의 이미지로 아버지를 떠올린다. 한없는 희생, 내리사랑의 표상, 아버지(물론 어머니도). 반면 과거를 살아온 그의 고지식함에 방문을 부서져라 닫고는 했다. 아버지야 말로 우리시대 애증, 그 자체이다.

천하장사 강호동의 체구를 왜소하게 만드는 최홍만의 큰 손이 연예인의 머리를 쥐고 ‘서울구경’을 시켜준다. 어릴 적, 아버지는 최홍만과 같다. 그의 팔뚝에 매달려 빙글빙글 바라본 세상풍경은 놀이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키를 따라잡으며 그 때의 환희는 퇴색되어간다. 그는 내 분노와 방황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이유 없는 반항의 화풀이 상대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가족을 등진다. 나를 중심으로 하는 테두리를 그리려고 애쓰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들 그렇듯 한순간 아버지는 노인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 여전히 측은함과 갑갑증은 동시다발적으로 찾아온다. 그와의 관계는 늘 어색한 악수를 반복한다. 그가 늙는 것이 한없이 가슴 아프지만 그의 고집이 어서 빨리 늙어버리기를 바란다. 언제 그를 사춘기 시절의 가출처럼 떠날지 모른다. 이미 그를 외면하는데 이골이 나있으니까.

<아버지의 부엌>(지향. 2007)은 봉양의 도덕적 기준에 대해 왈가왈부를 늘어놓지 않는다. 자식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다. 누군가 이 사정이라는 것에 돌을 던질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자립만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등을 돌리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는 이 가족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평생을 아버지의 그늘이 되어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의 거취는 참으로 막막하다. 아내 없이는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할 길이 요원한 그가 살림을 꾸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구색 좋은 효심으로 그들 돌보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자식들 자신 역시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 가정을 꾸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 가정은 아버지의 자리 없이 세워졌으니까 말이다. 아버지는 부엌에 설 자리를 찾아야만 한다.

작가는 그 아버지의 독신인 셋째 딸이다. 그녀는 홀로서기에 나선 아버지의 지독한 교관을 자처한다. 대부분 무섭게 때로는 격려하며 어머니의 빈자리를 아버지 자신이 채우게 한다. 그 와중의 교관으로서의 그녀는 아버지를 아이취급하기도 한다. 어쩌면 자립을 위한 교육을 받는 아버지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과연 노인의 혜안은 어디로 간 것인가? 지혜로운 성찰자로 사회의 우두머리, 혹은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노인의 자리는 어디로 간 것인가? 노년의 나이를 극복한 ‘록키’의 승리를 예상했던 글은 어느새 ‘노인문제’라는 사회적 문제로 번져간다.

우리는 진시황의 헛된 망상, 불로장생을 꿈을 꾸고 있었다. 늙지 않는 영원한 젊음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수명의 한계와 노인의 시기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이 사회의 노인문제를 보면 그 판단이 영원히 유보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만은 영원한 젊음의 생기를 누리기를 바라는 어처구니 없는 망상에 사로잡힌 진시황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부엌에 선 아버지의 모습은 그를 노인으로 바라보는 딸의 시선에 갇혀있다. 가족의 정만으로 한없이 애틋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적당한 거리를 둔 타인으로서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효를 기반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다. 부모의 조건 없는 희생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심만이 모든 것을 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라는 수동적인 망상이 지금의 노인문제의 주범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홀로서기에 대한 성공여부는 쉽게 판단될 문제가 아니다. 글의 말미에 아버지의 말처럼 책의 화자인 딸이 아버지의 일기와 주변의 증언으로 바라본 것 이상의 구군분투가 아버지의 부엌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외로움과 육체적 한계에 맞선 아버지의 홀로서기, 그것은 결코 경험하지 않고서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이 책 <아버지의 부엌>은 자식의 눈에서 시작된 일방통행에 불과한 것일까? 잘라 말해서 그렇지 않다. 자식에게 기대 외로움을 떨쳐버리고 싶지만 동시에 자유롭게 자립하고 싶은 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지 않은가.

지금의 현실에서 노인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하철과 버스에 노약자석을 마련하고 자리를 양보하는 것만으로 이 사회가 노인을 생각한다고 할 수 없다. 때문에 아버지는 부엌에 선다. 늦었다는 후회를 가슴에 새기고도 부엌에 설 수 밖에 없다. 비록 영원히 미숙한 주부로 남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아버지를 대하는데 미숙한 우리도 그의 부엌에 동참하자. 아니, 최소한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익숙지 않다는 것,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미숙하다는 것은 인정하자.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절치부심의 각오로 부엌에 선 아버지처럼 그 부엌에 같이 서자. 헛된 망상에 빠진 진시황이 나라를 망친 것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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