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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 ㅣ 킬러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누군가 나를 공포로 얼어붙게 만든 건 참 오랜만이야, 하고 벌에게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긴장하게 만드는 건 너와 내 아내뿐이야, 하고. 코드네임 ‘풍뎅이’. 미야케라는 본명보다 풍뎅이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 남자는 킬러다. ‘그쪽 업계’에서 모두가 다 알아주는 이 킬러는 수십 년간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고, 조만간 은퇴를 할 생각이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킬러 풍뎅이가 사실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상대는 아내였다고 하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우리 업계에서 풍뎅이라고 하면 다들 한 수 더 쳐 주지. 그런데 이런 공처가인줄 알면 몹시 실망하는 녀석들도 있겠는걸. 밖에서는 잔혹한 킬러지만, 집 안에서는 아내의 눈치를 보고 사는 이 남자. 날이 가면 갈수록 자신의 신변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것 같아 풍뎅이는 업계에서 은퇴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그 결심만 장장 스무 해도 더 넘게 해 오고 있는 현실. 풍뎅이는 자신에게 일거리, 그러니까 ‘수술’ 날짜를 잡아주는 의사에게 말한다. 그만 두겠다고. 진정한 자유를 위해,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결심을 입 밖으로 낸 결과, 풍뎅이는 8층짜리 사무용 건물 옥상에서 추락, 사망했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한 건. 어머니거든요. 어둠의 업계에서는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킬러였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했던 이 남자.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그는 집 밖에서는 킬러로서, 집 안에서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 매 순간 노력했다. 비록 그의 노력이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았어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어도. 모든 선택에는 가족들이 우선이었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코드네임 풍뎅이, 미야케.
당신 아버님은 제 은인이었습니다. 저와 제 아들의.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잔혹한 킬러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제 목숨 바쳤다는 게 상당히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 아니, 그렇다. 무슨 이유가 어찌됐든 생명은 존엄하니까. 하지만 풍뎅이 그 자신도 ‘한 번 죽는 정도로는 다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저지른 자신의 잘못과 과오를 알고 있었다면? 자신의 죽음마저 나름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까지 깨달을 정도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가족 뿐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킬러와 킬러의 가족마저도 생각해 죽음을 자처했다면? 그럼 과연 나는, 우리는, 이 킬러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까?
그 어디에서도 만나보지 못했던 인간적인 모습을 소유한 킬러 풍뎅이. <악스>를 읽으면서 여태까지 킬러를 대하며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비록 그가 킬러로 살아가게 된 과정과 더 빨리 털어내지 못한 그 나약함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만, 킬러 중에서도 괜찮은 킬러라는 생각, 어쩌면 정말 좋은 사람이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한 직업에 종사하지 않았더라면, ‘그쪽 업계’에 몸담고 있지 않았더라면, 풍뎅이의, 아니 미야케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악스>와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