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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무대 디자이너로서 성공한 한 여자를 우연한 기회에 인터뷰하게 되자,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녀에게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를 강제적으로 범해 보상 심리를 누리려 하는 한 남자. 이미 결혼을 하고 아내를 두었지만 일터 근처 옥상 위 여자에게 눈짓을 하고, 거절당하자 분노와 히스테리를 넘은 태도까지 보이는 또 다른 남자.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야 남편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불안해하는 한 여자. 남편에게 내연녀가 있다는 사실에 거짓말로 자신도 만나는 남자가 있다고 말한 다음 방황하다 끝내 죽음을 선택하게 된 또 다른 여자까지. 이 모든 사람들은 도리스 레싱의 단편선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옥상 위의 여자>, <한 남자와 두 여자>, <19호실로 가다>에 등장한 사람들이다. 성적으로 문란하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지고, 윤리적으로 타락한. 동시에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나는 이 작품을 생각하면, 이것을 쓰던 1960년대가 생각난다. 그 시대가 성적인 관습의 코미디 같은 시기였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규칙도, 도덕적인 관념도, 그 무엇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던 그 당시를 비꼬아 쓴 도리스 레싱의 단편선 모음집 <19호실로 가다>. 상당히 충격적이고, 이해할 수 없고, 때론 잔인하다고 여겨지는 도리스 레싱의 단편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그의 단편집에 열광했던 이유는, 나(저자 본인)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당시) 많은 여성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장소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고, 그러한 결정을 내리고, 그 뜻에 따라 행동하는 도리스 레싱 단편집 속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면서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시대가 그러했듯 등장인물들은 문란한 삶을 살았는데 또 동시에 그런 선택과 삶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람들.
<19호실로 가다>를 다 읽고 난 직후에는 ‘자발적인 고독’이라든지 ‘고독의 충만’이라는 단어가 왜 사용됐을까 하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거듭 생각을 하고 또 고뇌를 하는 끝에, 명쾌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만약 문란한 삶을 지속하면서도 불안해하던 그들이 자발적인 고독의 시간을 갖고 홀로 고독이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면 틀림없이 도덕적인 사고를 회복할 수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자발적인 고독, 고독의 충만. 때론 가만히 앉아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만이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