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역사 :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다
나이절 워버턴 지음, 정미화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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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그토록 지혜로운 인물이 된 이유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항상 자신의 생각을 반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삶이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때에만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단언했다. 대표적인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가치를 두고 있었던 대상은 그 무엇도 아닌 ‘질문’과 ‘생각’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그는 질문하기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의 질문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질문을 붙잡고 고심하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이해한 것의 한계를 보여주고 삶의 기반으로 삼은 전제들에 의문을 제기하기를 좋아했다. 소크라테스에게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 깨닫는 것으로 끝나는 대화가 성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의 모든 대화들은 성공적이었다. 수많은 철학자가 그의 뒤를 이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을 추구하라는 결론을 얻기까지 질문을 고심하고 또 고심했던 아리스토텔레스. 확신하지 마라. 그러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최선의 선택은 ‘열린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 피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며 나쁜 논리에 근거한다고 주장한, 행복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는 에피쿠로스. 우리의 생각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말로 잘 알려진 에픽테토스. 도덕적 해악은 우리가 선택한 결과라고 말한 아우구스티누스와 행복은 세계의 상태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한 보에티우스.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순간 의심 행위는 당신이 생각하는 존재로서 실존한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자신만의 회의 방법인 ‘데카르트적 회의 방법’을 만든 철학자 데카르트. 우리에게는 생명, 자유, 행복, 재산에 대한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고 말한 로크.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어떨까? 나 자신을 위해 특별한 경우를 만들지 말자며 도덕적 의무에 대해 이야기한 칸트.

행복한 돼지보다 슬픈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로 유명한, 모든 성인은 그 과정에서 다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자 밀. 개인이 선택을 하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키르케고르와 우리의 행동 대부분은 숨겨진 소망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한 프로이트. 인간이기 때문에 책임의 무게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고 말한 사르스트와 무의미한 노고에도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말한 카뮈,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비트겐슈타인. 모든 사람은 신앙의 자유, 투표할 자유, 표현의 자유처럼 결코 박탈당해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자유의 원리’에 대해 이야기한 롤스와 동물들도 고통을 겪을 수 있고, 그들의 고통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한 피터 싱어까지.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총 52명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다양한 사상들을 만나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답답함을 느꼈다. 이건 기분 좋은 답답함이었다. 나로서는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도무지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문제들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자신만의 믿음을 가진 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다양한 사상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생각이 옳다, 그르다 단정 짓기보다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조금 더 넓은 마음과 생각으로 <철학의 역사>를 접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정말 진심으로 삶의 문제들에 대해 고뇌했다는 것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참 신기하게도 <철학의 역사>를 읽기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이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철학이라는 학문과 철학자들에게 존경심을 느끼고 있던 찰나에 <철학의 역사>를 만나 더 많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세계를 접할 수 있었던 이 기막힌 타이밍에 감사함을 느낀다. 소크라테스에게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 깨닫는 것으로 끝나는 대화가 성공이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책을 통해서이긴 했지만 아주 성공적인 대화를 나눴다. 여러모로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 깨닫는 순간이 읽는 내내 찾아왔기 때문이다. 철학과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아우른 책 <철학의 역사>를 읽어보길 권한다. 스스로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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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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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찾는 데 몰두하기보다는 선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시작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집중하는 ‘진정한 나 찾기’, ‘자아발견’과도 같은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선하고 도덕적인,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것에 집중하라는 말은 놀라움을 넘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물론 좋은 사람이 되는 동시에 진정한 자기 자신도 찾을 수 있다면 굉장히 근사하겠지요. 그러나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자기계발의 개념에서 눈을 들어 진정으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목적이 되는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10인의 철학자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선은 일반적인 효용성의 관점에서는 쓸모없는 것으로 구성되며, 또한 역설적이게도 쓸모없기 때문에 쓸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얘기한다. 모든 가격을 뛰어넘어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존엄성을 가진다. ‘존엄성’은 사고 팔 수 없는 것이라고, 중요한 가치와 행동에 가격을 매기는 순간, 존엄성은 사라져 버린다고 말하는 칸트. 약속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설령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일에는 존엄한 면이 있습니다. 책임감과 죄책감을 통해 사람에게 ‘주체가 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약속에 집중한 철학자 니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때 비로소 우리 자신과 관계하는 법을 배웁니다. 우리의 자아 성장과 발달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온전한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이야기한 키르케고르. 우리가 진실과 신뢰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오직 그것이 그 자체로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진실성에 집중한 아렌트. 사랑은 자기를 잊는 것, 그럼으로써 다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내주는 일입니다. 타인과의 관계가 밑바탕이 되는 ‘사랑’이기에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머독. 용서가 광기인 이유는 어떠한 계산이나 합리성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데리다. 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희생될 수 없는 우리 삶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하는 카뮈와 죽음은 다른 관점들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적인 토대라고 하며 유한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이야기한 몽테뉴. 


저자는 사회가 철저히 배제시키려 하는 ‘쓸모없음’과 ‘쓸데없음’에 집중했다. 목적과 수단, 이익에 100% 입각해 생각하고 움직이는 도구적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보았을 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쓸모없고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일에 시간을 쓴다는 것은 낭비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이 필요한 순간>의 저자는 10인의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쓸모없는 것이란 우리가 다른 것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들이지요.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던 이유,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진짜 알맹이를 찾으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존엄한 행동들을 배제하고, ‘쓸모 있는’ 일들에 집중하면서 철저히 ‘쓸모없는’ 것들은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겐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에도 목적이 있고, 의미가 있다. 그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찾으며 삶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쾌락을 좇으며 살아갈 것인지는 개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만약 전자를 선택했다면, 당신에겐 지금 그 무엇보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철학이 필요한 순간, 그 순간이 찾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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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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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할망정, 느릿느릿 갈망정, 그냥 늘어져 있어서는 안 되는구나. 뭔가를 끈질기게 하며 게을러야지, 무기력하게 게으른 건 안 되는구나, 죽기 전에 한번 꽃펴 보려면. ‘지적인 예술가’, 이것이 바로 <광대하고 게으르게>의 저자인 문소영에 대해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예술이 일상이고 글 쓰기가 직업인 여자”답게 그의 글에선 지적인 미가 뚝뚝 흐르다 못해 넘쳐 흘렀고, 난 그게 좋았다. 이따금 전시회에 방문하면서 개인적인 관심을 갖게 된 예술가들과 일상에서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것도, 예술적인 감각과 버무려 사회의 냉소적인 면까지 모두 아우르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완벽할” 수 있는 작가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게으르게”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그는 인간적이기까지 했다. 하여튼, 작가 문소영은 무척 멋졌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나는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크고 작은 선택들이 쌓여 내 인생을 이루게 되는 것도, 이 선택을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선택을 더 두렵게 만든다. 끝없는 악순환의 반복 결과는, 결국 체념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감정들을 고백하면 어리석은 짓이라고, 왜 받아들이지 못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작가는 선택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은 당연하다고 나를 감싸줬다. 어떤 길을 택하든 가지 않은 길은 단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름답다. 내가 밟지 않은 낙엽이 소복이 쌓인 채 저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름답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숙명적인 동경과 아쉬움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라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느꼈다. 이런 마인드로 살고 싶다는 것을.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나를 판단한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 역시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인식’하면서 살아간다고 느낀다. 타인의 이야기에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처음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감정은 참 오묘했다. 내가 그렇게 줏대 없는 사람이었나 싶어서 속상하기도 했다. 세상이 말하는 판단 그리고 가치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결심은 말 그대로 ‘결심’에서 끝나곤 했는데, 이러한 순간마다 필요한 것은 <광대하고 게으르게>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했던 스티븐 잡스의 명언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세요. 여러분의 시간은 유한하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허비하지 마세요. 


어떤 한 인간에 대해서, 어떤 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우리는 순간적으로 얼마나 주관과 편견이 많이 섞인 의견을 갖는 것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는 것이 진실인가? ‘지적인 예술가’ 문소영의 글을 통해 ‘예술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생각보다 살 만한 곳이었다. 물론 불편하고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100점 만점의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작가와 같이 왜곡되지 않은 현실을, 그 민낯을 함께 바라보고 유쾌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살만 한 곳’이라고 느낀 거라고 생각한다. 원샷원킬,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작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우는 나에게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가에게만큼은 예외다. 작가 문소영처럼, 나도 한 번 “광대하고 게으르게”, 때론 불편하게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그가 <광대하고 게으르게>에서 시범 삼아 보여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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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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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 밥 먹여 주는 거 아니지. 그런데 그때는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 ‘먹고 사는 문제의 고단함’. 내가 최근에 들어서면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생각이자 고민이다. 2010년대 한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엮었다는, 막막한 현실을 이야기한 책인 만큼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과 내 이야기이자, 우리 세대의 이야기, <산 자들>을 장강명 작가는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이 이야기는 ‘자르기’, ‘싸우기’, 그리고 ‘버티기’를 하는 자들의 이야기, ‘산 자’들의 이야기다. 


“이게 처음부터 다 계획이 돼 있던 거니?” 여자아이는 걸음을 멈췄다. 말문이 막힌 듯했다. 이젠 알바생 하나 자르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알바생 자르기>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여자아이를 아니꼽게 보는 과장 은영의 시선에 맞추어 썼다. 사실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힘들다. 각자만의 사정이 있고, 그 뒷배경은 정확히 서술돼 잇지 않아서 지레짐작만 할 뿐. 그렇기 때문에 이름보단 ‘여자아이’로 더 많이 서술된 혜미와 은영에게 안타가움을 느꼈다. 꼭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야만 했던 걸까. 진심을 나누면서 오해하지 않는 쪽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무의미하고 수치스러워. 삶의 의미를 박탈하고, 자존감을 깎고, 사회에서 격리하는 벌이야. 대기발령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회사로 들어가 무시를 받느니, 본사에 남아 얼굴 붉히는 쪽을 택했다. 해서 선택한 것은 버티기, 즉 <대기발령>이었다. 버티기만 하면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모욕적인 대우를 받게 되자 주인공 연아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자기가 돈이 있다고 남의 존엄을 무시하면 안 되지. 그게 갑질이잖아. 그렇다면 또 다른 ‘갑질’의 형태로 여겨지는 대기발령. 이건 과연 옳은 것일까? 


해고는 살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죽은 자’들이었고, 해고자 명단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산 자’가 되었다. 노조 갈등과 파업을 다룬 <공장 밖에서>는 각자의 사정과 고민으로 시작된 노조와 파업을 다룬 이야기다. 서로 억울하고 원망스런 상황에서 타협은 곧 배신이었고, 배신은 끝을 의미했다. 대화로도 풀어갈 수 없을 만큼 오해가 켜켜이 쌓이고 쌓여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골이 깊어지게 되는 아슬아슬한 순간,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는 ‘산 자’와 ‘죽은 자’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던 <공장 밖에서>. 


땅과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 땅 위에 있는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을 권리가 있다. 그 집을 갖지 못한 채, 거기서 살기만 하는 사람들은 아무 권리도 없다. <사람 사는 집>은 재개발 과정에서 ‘법이 그렇기 때문에’란 이유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해 투쟁하는 선녀의 이야기다. 그들이 용역들에게 맞선 최후의 수단이 자신들의 목숨뿐이었다는 사실은 그 지역에 새로 들어설 아파트들의 억소리 나는 분양가들과 대조되며 씁쓸함을 안겼다. 지금 주변에 있는 이 건물들의 이면에는 억지로 떠나야만 했던, 떠밀려 가야만 했던 원주민들의 아픔이 새겨져 있겠지. 


제가 놓친 게 뭡니까? 애초에 뭔가 괜찮은 걸 노려볼 기회가 저한테 있기나 했습니까? 첫 시작은 취업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 어디에선가는 의미 있는 존재라는 걸 스스로에게 입증하기 위해 시작한 대외활동이었다. 남들은 스펙쌓기 아니냐, 취업용 아니냐 하지만 <대외활동>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대외활동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신’이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그려낼 수 있었던 길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컵에 물은 반밖에 없었습니다. 그 반 컵의 물을 마시느냐, 아니면 그마저도 마시지 못하느냐였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음악을 공기처럼, 심지어 어떤 때는 공해처럼 받아들입니다. 음악은 이제 침묵보다도 더 값싼 것이 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이 배고픈 이유가 <음악의 가격>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을까. 음악노동자연대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의 가격>은 값이 싸다고 여겨지는 음악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시대의 흐름과 엇나가며 허탈감을 느끼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대세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좋은 음악은 알려지게 되어 있다는 것.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행정실장과 학생 교감은 날지 않는 새들 같았다. 마지막으로 날아 본 게 언제인지도 모를 비둘기들이었다. 그밖에도 프렌차이즈 빵집과 개인 빵집, 총 세 개의 빵집이 경쟁하는 이야기를 담은 <현수동 빵집 삼국지>, 서로 밟아야지만 가질 수 있는 빛나는 자리,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잔인한 현실을 그린 <카메라 테스트>.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친절함인지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모두, 친절하다>와 급식비리와 학교비리를 다룬, 날지 않는 새들과 옳음을 택하지 않은 어른들을 비교한 <새들은 나는 게 재밌을까>까지. 총 열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연작소설 <산 자들>. 


작가는 결과가 아닌 원인에 집중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었고, 그런 행동을 취하게 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보니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가 어려워졌다.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언론이 집중하고 바라보는 대로 접근하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산 자들>의 이야기는 불편하기도 했다. 나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그래서 ‘공감’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노력할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공감 없는 이해난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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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 고흐의 불꽃같은 열망과 고독한 내면의 기록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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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 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듬어감에 따라 그리고 덧없이 지나가는 최초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있어서 고흐는 독보적이고 인상적인 화가였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나 알아볼 수 있는, 자신만의 확실한 색을 가지고 있는 화가, 고흐. 생전에 단 한 점의 유화만 팔았다는 이야기, 동생인 테오가 그를 지지했고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한 전시에서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화가이기 전에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고, 사람을 사랑했고, 자신감 충만했던 인간 고흐의 삶에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내 목표를 이루는 건 지독하게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내 눈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까. 고흐의 그림은 환영받지 못했다. 그는 불우했고, 가난했으며,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고흐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림을 생각할 때 그의 열정은 활활 타올랐고, 심장은 뜨겁게 들끓곤 했다. 그림을 끈질기게도 사랑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고흐는 자신감과 열정이 가득한 자신을 표현했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고흐의 진심이 가득 담긴 그림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그림은 결코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통해 만난 인간 반 고흐는 그 누구보다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던 고흐. 힘들면 힘들다고, 싫으면 싫다고 멈추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고흐의 모습과 그의 편지들을 읽으며 용기를 얻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우리의 작품은 남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 테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 이 부분을 읽을 때에는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용기를 내어 도전하는 것보다는 더 안전한 길을 택하고자 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잠깐 쉬어가는 거라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 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그림을 그린 고흐처럼, 오늘의 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부터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한다. 고흐가 말했듯,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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