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권력, 사회 - 인터넷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박승일 지음 / 사월의책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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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진 선생님을 믿고 구매했는데. 왜 추천하셨을까? 기존 논의들의 요약으로 읽으면 도움이 되겠으나, 새로운 사유는 눈에 띄지 않고, 자본주의에 극복에 대한 고민은 반쪽짜리도 안되는 그저그런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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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민주적인가 - 현대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비판적 고찰, 폴리테이아 총서 2
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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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이 다가왔다. 한데 왜 우리는 매번 선거를 치르고 민의가 반영된 선택된 후보를 선출한다면서도, 그 후보가 선택된 후에는 항상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일까? 또 선거가 치러진 후 몇 년간 잊고 있다가 투표할 때만 자신을 주권자로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혹시 우리가 민주주의의 꽃이라 믿고 있는 선거라는 제도는 절차의 공정하게 진행되기만 한다면 도달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있다는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베일은 아닐까?

 요컨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고정화를 저지하기 위해 채택한 시스템의 핵심은 선거가 아니라 제비뽑기(추첨)이었다. 제비뽑기는 권력이 집중되는 장소에 우연성을 도입하는 것이며, 우연성을 도입함으로써 고정화를 막는 것이다. … 만약 무기명 투표에 의한 보통선거, 즉 의회제 민주주의가 부르주아 독재의 형식이라고 한다면, 추첨제야말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그의 책 [트랜스크리틱]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또한 지젝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고진의 이 주장을 옹호하며, 추첨이야 말로 민주주의라고 갈파한다. 이들의 주장이 낯설게 느껴지는가? 그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두 급진적인 철학자들의 기행일 뿐이라고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읽어 보시길 권한다. 마넹은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거쳐 17~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혁명과 독립전쟁을 거친 미국의 건국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추첨제와 선거제가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상세하게 검토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추첨제가 완벽하게 정치적 주제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러한 마넹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여러 낯선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추첨제=민주주의, 선거제=귀족주의라는 주장을 접하게 될 때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주장이 15세기 이전까지 정치학의 일반적 공리였다는 점이며,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몽테스키외나 루소 역시 이러한 견해를 잘 알고 옹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선거제는 투표자와 대표자의 간극을 극복할 수 없으며, 탁월한 자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항상 자연귀족제로 향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당대의 엘리트들은 추점을 배제하고 선거를 선호하는 것이 질서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미국건국과정에서의 논의들을 통해 선거가 세습 귀족과는 다른 형태로 특권층의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상세히 입증하고 있다.  

마넹이 아테네와 중세도시국가들이 추첨제를 자기검열과 심사라는 두 가지 상이한 방법으로 어떻게 보완하고자 했는지를 설명하며, 아테네 시민들이 전문가에 의한 통치의 위험과 그것을 어떻게 피하고자 했는지를 이야기하는 지점에서는 지금 우리의 문제들과도 겹쳐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추첨과 선거라는 대립구도의 검토는 현대 정치에서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제라는 대립구도보다 더 발본적인 문제제기로 받아들여진다. 결론적으로 다소 엉뚱하고 생뚱맞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이 사실은 충분한 역사적-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는 클래식한 주장이었던 것이며, 마넹의 책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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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페미니즘 선언
낸시 프레이저.친지아 아루짜.티티 바타차리야 지음, 박지니 옮김 / 움직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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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요 몇 년간 가장 인기있는(잘 팔리는?) 인문사회분야 주제 중 하나가 페미니즘 일 듯싶다. 하지만 쏟아지는 책들 중 상당수는 여성용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책들이거나,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가 된 여성적 차이에 대한 책들이다. 또한 우리 현실을 돌아봐도 각종 미디어나 기사를 통해 페미니즘이란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부족하다거나, 성공한 여성의 숫자가 적다는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권리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 페미니즘이란 의제를 사회적 이슈화하고 아젠다를 만들어 가는 이들은 절대적 다수가 중상류층 이상의 소위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이들이다. 그러다보니 페미니즘은 사회적 약자들이 연대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문제와는 거리가 먼 식자층 여성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99% 페미니즘 선언]이 말하는 바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정체성 정치의 하나로, 또는 기껏해야 그 정체성의 교차성의 문제로 페미니즘을 다루는 기존의 입장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어떤 종류의 페미니즘이든 그것은 선이고 옹호되어야 하는 것일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은 지지되어야 하는 것일까? 저자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대다수 여성을 포함한 우리의 현실의 불평등을 낳고 강화하는 주된 적은 바로 신자유주의이고 그것의 근원은 자본주의다. 그리고 그 신자본주의에 기생하여 수탈에 동조하고 기득권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이기에 저자들은 이에 단호히 반대한다. 현실 기득권의 한 축으로 자리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의 대표사례가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나 페이스북의 여성COO인 셰릴 샌드버그 같은 여성들이다. 여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주류페미니즘의 흐름들과는 달리 저자들이 주장하는 99%를 위한 페미니즘은 보편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 보편성은 여성이 아닌 인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식의 공허하고 추상적인 보편성이 아니라, 인종적, 성적, 계급적 불평등에 맞서 현장에서 투쟁하는 보편성이요, 이 보편성을 통한 연대를 추구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지점을 탐색한다는 목표에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적확하고 계발적인 주장들 속에서도 두 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첫째는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과 같은 사회적재생산에 대한 노동의 이해에서, 마르크스가 이를 무시하거나 폄훼하였다고 혹은 아무리 잘 봐줘도 시대적 한계였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사실 이런 오해는 자율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는 오해이기도 한데, 마르크스의 가치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재생산노동이 가치를 낳지 않는다는 말은 일상용법에서 그 노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고 그것이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포획되지 않았다는 말이며, 때문에 이 영역을 재상품화 하는(예컨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노동화)게 맞을지 비상품화 영역으로서 저항의 영역으로 다루어야 할지는 전략적 숙고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계급투쟁에 대한 이해다. 책의 앞부분에서 논의되는 바와 후기에서의 이해가 약간 다른 뉘앙스를 주기는 하지만 계급투쟁이 마치 생산현장에서 노-자의 권리투쟁으로 국한되어 이해되고, 따라서 계급투쟁, 성적다양성투쟁, 인종투쟁, 여성해방투쟁이 모두 권리투쟁의 하나로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된다. 하지만 마르크스에게 계급적대란 단순히 서로 다른 계급들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계급 사회 구성의 바로 그 원리인 것처럼, 적대 그 자체는 단지 갈등하는 분파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계급적대에 기반한 계급투쟁은 이러한 갈등의, 그리고 그 안에 연루된 요소들의 바로 그 구조화 원리이다.

 이 사소한(?) 오해를 제외한다면 이 책이 갖는 미덕은 너무도 분명하다. 페미니즘이 특히나 미국식 페미니즘이 우리사회에 수입되면서 이러저러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처럼 평등을 위한 공동의 투쟁을 모색하는 99%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짧고 큰글씨인 데다가 11가지의 테제와 후기로 구성된 이 책은, 배경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하의 불평등의 가속화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모색이 미국 사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진행형인 상황이기에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어질 편지는 아닐 것이다.

     가독성이 좋은 번역임에도 이상한 번역 하나 aura”아우라오라라고 음독한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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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변지영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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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뇌과학을 주제로 한 많은 글들이 심리학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사실 예전 뇌과학이 소개되던 초기는 물론이고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뇌과학은 자연과학의 영역으로 대부분 신경과학자들의 글이 소개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데 어느시점부터는 인지과학자들의 글이, 그리고 이제는 서점의 심리학 서가에 가면 대부분이 뇌과학 관련 책들이다. 그런데 쏟아지는 뇌과학에 대한 책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글쓴이들은 다들 전문가라는데, 어느것이 최신 버전이고 어느것이 주류의 입장인지 또 그 차이에 따라 어떤 다른 결론에 달하는지, 어떨때는 그냥 사이비 과학 같다. 

 사실 내가 이 책을 구매한 것은 제목에 낚인 탓도 좀 있다. "뜻밖의"란 말에 혹 한것이다. 책 전체가 "뜻밖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4장의 <뇌는 당신의 행동을 예측한다>는 흥미 있는 이야기였다. 갈증해소를 위한 음료 섭취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데, 갈증해소를 위해 섭취한 물이 실제로 혈류에 도달되는 시간이 20분이나 걸리는데, 우리는 물을 마시는 즉시 갈증이 해소된다는 예에서 예측기관으로서 뇌에 대한 설명을 풀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뇌는 감각수용기로부터 전달된 감각지각을 통합하여 외부 사물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과거의 경험에 대한 기억에 비추어 대상에 대한 예측을 통해 의미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당신의 일상적 경험이란 외부세계와 당신의 신체가 주는 제약을 받지만,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뇌가 구성하는 '주의 깊게 제어된 환각'이다"(P110) 라는 것이고 또한 이런 과정은 거의 인식되지 않은 채 일어난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과거의 경험의 기억이 예측을 가능케 하는 핵심이라는데 그럼 그 최초의 기억은 어디서 오는가? 어찌보면 최초의 경험이 하나의 기억이 되는 메카니즘에 대한 분석은 경험이 기억이 그 앞의 경험의 기억으로 끝없이 미루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최조의 경험에 대한 기억의 메커니즘을 외부 감각지각에 대한 통합 논리로 설명한다면, 이는 그 경험 이후에 발생하는 다른 경험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되버려 왜 그런 다른 메커니즘이 발생하는가 하는 의문을 낳게 된다. 내가 보기엔 여기서 정신분석과 묘한 교차점이 드러난다. 이후 경험들을 예측 가능하게 하는 기원으로써 '기억'이란 정신분석의 원초적 억압과 유사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 기억이 환상의 프레임이 된다는 주장도, 또 외부세계의 감각지각을 경험하는데에서 이 기억이 의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묘한 기시감을 갖게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유의지와 책임에 대한 문제도, 무의식의 주체로서 내가 행한 선택에(당연히 전혀 의식될 수 없고 그것이 나의 성격을 틀 지었던 선택) 책임이 있다는 것과 유사하면서도 조금 결을 달리하지만 "우리가 잘못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꿀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유사점은 딱 여기까지이다. P120 이후의 이 문제들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들은 자아심리학의 해법들과 거기서 거기다. 대부분 자유주의적 해법들로 그저 그런 이야기로 내겐 들렸다. 게다가 얼마간은 모나드를 연상케 하는 주장들로 유아론적 입장들도 과학의 이름으로 주장하는데는 뭐라 할말이 없다.

 하지만 짧고 간결하면서도 현재 뇌과학이 도달해 있는 지점들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책값은 하고 남는다는 생각에 별점은 4개다. 그리고 한가지 궁금한 점은 3월달에 나온 <뇌는 작아지고 싶어한다>는 책도 있는데, 여기서는 단호하게 뇌는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뭐가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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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논문집 1 사회학 논문집 1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지음, 문병호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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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던져버렸다. 아도르노의 이처럼 좋은 글을 이렇게 도저히 읽을 수 없게 상형문자를 만들어 버리다니. 곳곳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비문이 난무하며, 분명 대학원생들에게 시키고 합쳐 놓은 듯한. 요즘에도 이런 번역을 하고 책을 내다니. 출판사도 반성해라! 그나마 아도르노때문에 별두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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