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질서 - 긴축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
클라라 E. 마테이 지음, 임경은 옮김, 홍기훈 감수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게는 올해의 책이다. 성과도 없는 긴축을 반복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경제의 외피를 쓴 계급정치에서. 이 책은 [전쟁의 유령]에서 설명된 바, 1920년대 영국 주류 정치인들이 공산주의 러시아에 대한 공포의 역사적 근원을 밝혀준다. 영국도 공산주의혁명의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먼즈란 무엇인가 - 자본주의를 넘어서 삶의 주권 탈환하기
한디디 지음 / 빨간소금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불편했다. 저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기에는 마뜩치 않은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딱히 한 두 군데를 꼬집어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책 전체에 걸쳐 기본적인 전제들에 동의하기가 어려워서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거의 다 읽은 지금, 간단하게라도 왜 불편했는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서평을 작성해본다.

 

독자로서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의 입론은 마니교적 이분법에 근거하고 있는 것 같다. 커먼즈라는 선과 커먼즈의 실현을 가로막는 자본(주의)과 권력이라는 악으로 나뉘어진 역사라는 것으로. 저자에 설명에 따른다면 커먼즈는 선사시대 이래 계속해서 이어진 집합적 공유를 실천하는 역사의 저변에 흐르는 초역사적 운동인 반면, 커먼즈의 흐름을 가로막는 악들 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공통적인 삶의 양식인 커먼즈를 근본적으로 봉쇄하기 시작한 사적 소유라는 개념이 등장한 자본주의 사회”(p53)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시각은 인류 역사를 넘어 생명 전체에 적용되는데, 공생과 다세포라는 강력한 협동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살아 있는 것으로서의 세포, 그 자체가 협력을 통해 등장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바로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본주의는 억압과 해방이라는 양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로의 이행에서 억압만을 본다면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은 역사의 퇴보인가? 자본주의에서 가족은 이전 생산양식에서의 가족과는 다른 기능과 역할을 하지 않는가커먼즈의 영역으로서 가족은 자본주의의 흐름을 방해하기는커녕, 자본주의가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기능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필요불가결한 이면이 아닌가? 모든 영역이 남김없이 상품화된다면 자본주의가 삐걱대고 제대로 굴러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생명의 역사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던져볼 수 있다. 생명의 탄생이래 거의 변하지 않은 채로 공생체가 아닌 단독체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박테리아들은 협력이라는 원리에서 벗어나 있는걸까? 공생이 자연의 원리라면 진핵생물을 탄생시킨 메탄생성고세균과 알파프로테오박테리아의 결합은 진화과정에서 왜 딱 한 번만 일어났을까? 다른 고세균과 세균은 왜 공생체를 이루지 않았을까? 다세포 생물이 그토록 협력 원리에 따른다면, 말 안듣는 세포를 죽음으로 제거하는 아포토시스라는 위계적 제거 장치는 왜 생겨났을까?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그토록 단순한 원리로 설명해낼 수 있다고 믿는 소박한 믿음은 어떻게 가능할까?

 

다음으로, 이토록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고, 전통과 연계되어 있는 커먼즈를 왜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이 책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삶을 자율적으로 통치하는 주체이고, 따라서 상황을 인식만 한다면 언제든지 커먼즈가 될 수 있어야 할 터인데 무엇이 그런 선택을 가로막는 것일까? 저자는 이 문제를 사회적인 존재로서 자본주의적 개인의 형성과 관계의 재생산의 문제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공동체가 상품 사회가 불러오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희망은 어쩌면 환상에 불과합니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개인은 언제나 이미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적인 것을 표현합니다. 자본주의는 공동체를 없앤 것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를 특수한 방식으로 배열함으로써 스스로를 독립된 개인이자 상품의 소유자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생산합니다.”(P118) 이는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문제다. 알튀세르가 정의한 바 이데올로기는 개인이 자신의 현실적 실존 조건과 맺는 상상적 관계를 표현한다.” 잘 알다시피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인식의 전환만으로 벗어날 수 없는 자발적 복종의 구조이기도 한데, 저자는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주하는 것을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세번째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람은 마르크스로 보이는데, 저자가 인용하는 마르크스는 내가 아는 마르크스와는 너무 달라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저자는 마르크스를 자신의 논거로 인용한 뒤, “시장에서의 교환은 결코 평등한 혹은 공정한 거래가 아닙니다. 참가자들이 교환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시장의 공식 자체가 이미 등가교환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P129)라도 단언한다. 사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 지점에서 피식 웃었다. 등가교환이 아니라면 잉여가치는 생산과정에 만들어지고 교환과정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부등가 교환을 가능케 한 권력이 잉여가치의 원천일 것이다. 이 논리대로 잉여가치를 경제외적 강제에서 찾는다면 자본주의가 여타 생산양식과 다를 게 없어질 것이다. 그럼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무얼 한걸까? 저자는 가치라는 개념에 대해 마르크스와는 전혀 다른 이해를 한다. 윤리적인 의미의 가치와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 생산에서의 가치를 혼용하여 쓰기도 하다가 마지막에는 윤리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다. 마르크스의 핵심 개념이자 발견이 가치론과 계급투쟁 아닌가? 칼 폴라니도 그랬고, 오사와 마사치도 그랬듯, 노동가치론을 부인하는 순간 가치의 근원을 주관적 효용에서 찾는 한계효용의 입장에 서게 된다. 저자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아나키스트를 자청하는 저자는 왜 굳이 마르크스에서 자신의 근거를 찾고자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은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화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말하는 화폐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의 화폐다. 이 화폐는 가치론과 결합된 일반적 가치형태의 자리를 차지하는 상품화폐다. 다른 역사적 생산양식에서 사용되는 화폐를 가지고 자본주의의 화폐를 설명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적합한 설명이 아니다.

게다가 저자의 마르크스 인용방식은 지적 성실성을 의심케 한다. 이 책 48페이지를 보자. 저자는 핵심은 생명의 활동이 서로 다른 존재들의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들도 마찬가지죠. 마르크스는 노동을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신진대사라고 정의합니다. 노동이란 근본적으로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활동이며 이는 무수한 인간, 비인간 타자와의 연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보다 잘 드러내는 표현이 있을까요?”라고 한다. 이 때 인용한 마르크스의 글은 각주에 따르면 김수행 번역의 [자본]이었다. 한데, 85페이지의 마르크스의 간접인용에 대한 각주는 강신준 번역의 [자본]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각기 다른 번역본을 각주로 달았기에, 원문을 보고 싶었다.

노동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를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 매개하고, 규제하고 통제한다. 인간은 하나의 자연력으로서 자연의 소재를 상대한다. 인간은 자연의 소재를 자기 자신의 생활에 적합한 형태로 획득하기 위해 [자기의 신체에 속하는 자연력인] 팔과 다리, 머리와 손을 운동시킨다. 그는 이 운동을 통해 외부의 자연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변화시키며,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자기 자신의 자연[천성]을 변화시킨다. 그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며, 이 힘의 작용을 자기 자신의 통제 밑에 둔다.  – 김수행 판

노동은 우선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 사이의 한 과정,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한 과정이다. 인간은 하나의 자연력으로서 자연소재와 대립한다. 그는 자연소재를 자신의 생활에 유용한 형태로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타고난 신체의 힘인 팔, 다리, 머리, 손 등을 움직인다. 그는 이런 움직임을 통해서 자신의 본성까지도 변화시킨다. 그는 자신의 본성 속에 잠자고 있는 잠재력을 개발해내고, 그것이 자신의 통제 아래 발휘되게 한다. – 강신준 판-

 

인용문구가 과연 저자의 논거를 뒷받침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하시길 바란다. 하지만 내가 봐서는 인용된 문구만이 아니라 맥락을 본다면 저자의 논거와 대립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인용한 저 문구를 따오기 위해 굳이 김수행 판을 선택해서 (맥락은 도려내고)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약 30페이지 뒤에서 강신준 판을 인용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그랬다고 이해라도 하련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이터 그랩 - 내 정보를 훔치는 빅테크 기업들
울리세스 알리 메히아스.닉 콜드리 지음, 공경희 옮김 / 영림카디널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이터 경제에 대한 저자들의 주된 비판의 지점이 자본의 이윤이 아닌 식민지 수탈인지는 이 책에서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고, 충분히 공감가는 바도 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가 야간 다른 버전으로 반복되어 지루한 감이 있다. 한데, 각주가 누락된 것은 내가 본 책만 그런건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오주의 - 전 세계를 휩쓴 역사
줄리아 로벨 지음, 심규호 옮김 / 유월서가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트남 전쟁의 악몽을 중국탓으로 돌리는 왜곡되고 편협한 시각에 절망했다. 이 따위 책에 이런 평점이라니 어이가 없다. "‘지구전’을 설파하는 마오주의는 이렇듯 그들 스스로 사회와 충돌하고 또한 사회를 통제하고 싶어하는 괴짜들에게 특히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P39 이런 관점으로 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의 인류학 - 이행총서 3
실뱅 라자뤼스 지음, 이종영 옮김 / 새물결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존재와사건의 바디우를 보충하며 조금은 다른, 하지만 정말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