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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 - 비폭력 성자와 체제 옹호자의 두 얼굴
E. M. S. 남부디리파드 지음, 정호영 옮김 / 한스컨텐츠(Hantz) / 2011년 8월
평점 :
간디 평전 –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
내게는 대안학교를 다니다 대학에 가겠다고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가 있다. 프로필
사진에 있는 두 자매들 보다는 큰 스무살의 남자아이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아빠보다 엄마와 훨씬
친밀한데다가 아빠는 주말 저녁에만 얼굴 볼 수 있기에 그리 대화가 많지 않다. 한데, 이 아이가 역사를 전공하겠다고 하면서부터 아빠랑 부쩍 대화시간이 많아졌다. 나로서는
무척 기쁜 일이었지만 가끔 내가 당연히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묻는 질문에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지난주가
그랬다. 갑자기 간디 이야기를 하면서 간디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야기를 하는데, 어어…하면서 얼버무리고 넘어갔지만 이번주에 또 이야기를 꺼낼것 같아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해서, 하는 수 없이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주말에 내려올 때 책장의 간디 평전을 살짝 가방에 넣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남부디리파드의
이 책이다.
비록 출판년도는 오래전이지만 저자나 역자의 프로필이 충분히 신뢰가 가고, 아이와의
대화 주제였던 간디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볼 수 있는 드문 책인데다가 분량도 짧은 터라 술술 읽힌다는 장점도 있었다. 책의 안쪽 표지에 쓰여진 저자의 약력에서도 잘 소개되어 있지만 남부디리파드는 인도의 브라만 계급 출신으로 간디주의자로
출발해서 공산당원이 되어 정치활동을 한 사람이다. 인도에 공산당이?하고
의아해 할지도 모르지만 1957년 인도의 케랄라 주 선거에서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공산당이 집권한
바가 있고,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대중정당으로 존재한다. 아쉬운
점은 평전치고는 짧은 분량인데다가, 간디의 생애 전체를 조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끝까지 다 읽었지만
아이의 질문이었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관련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짐작컨데 1914년 무렵 간디가 남아프리카의 인도인 계약 노예 노동자의 지위개선 운동을 할 당시 흑인들과 관련한 어떤 이슈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간디의 본명이다)는 구라자트 주 공국 관료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 유학을 통해 변호사가 되어 인도에 돌아와 국민회의를 조직하고
민중의 저항정신을 일깨워 비폭력 투쟁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영국 제국주의에 맞서 끝내 독립을 이루었지만, 힌두와
이슬람이라는(그리고 시크라는) 종파 싸움을 막고 하나의 인도를
건설고자 했으나, 1947년 힌두 극단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했다. 아마도
이것이 간디에 대한 가장 익숙한 소개가 아닐까 싶다. 이 간략한 소개만 보아도 간디는 분명 정치인이다. 그가 말한 것들과 행동들은 이처럼 정치라는 범주에서 보아야 할 터인데, 우리에게
소개된 간디는 무결점의 성자로서 마치 인도정신의 화신으로서(류시화 같은 이들이 바라보는 인도) 종교적 인물처럼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 제일 먼저 역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다.
비폭력 평화주의자의 이미지와는 달리 간디는 1차 세계대전때 영국의 징병관으로서 적극적으로
인도 민중의 전쟁참여를 독려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을 후에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때 영국의 참전요구에 반해 비폭력 저항을 하였다. 이처럼 모순되어 보이는 행동은 영국으로부터 자치와 독립이라는 그때그때의 정치적 고려라는 점에서 본다면 일관성을
갖는다는 것이고, 폭력에 대한 태도는 항상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성자 간디에 대한 이미지는 서서히 바뀌게 된다. 먼저
간디는 정세판단에 뛰어난 세속화된 정치인이다. 또한 당대 민족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되, 단기적인 관점이 아닌 전략적이고 중장기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행동한 정치가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정치적 야심도 없었고 그 대의에 자신을 내던질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인물로, 주로
힌두 정신주의적인 입각점에서지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그들을 사로잡아 행동에 나서게 할 수 있었던 뛰어난 정치가였다. 하지만 간디는 대중의 행동을 특정범위에 제한하여 변화의 전망을 부르주아적 이해관계의 한계에 국한시켰을 뿐만
아니라, 반계몽주의적이고 – 간디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 “의학은 흑마술의 진수를 모은 것이다. … 성병 치료나 결핵 치료를
할 병원이 없다면 결핵도 줄어들고 매춘도 줄어들 것이다. 인도의 구원은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배운
것을 잊어버리는 것에 있다. 철도, 전신, 병원, 법률가, 의사
같은 것들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 - 독립직전에 이르기까지 힌두주의자로서 한계를 지닌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요약으로 소개를 마무리하고,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하며 아마도 부록까지 읽고 나시면 역자가 인도에 대해 쓴 다른 책도 읽고 싶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우리는 수많은 민중을 제국주의 착취와 억압에 대항하여
행동하도록 각성시켰던 한 인간을, 투쟁과정에서 보여준 영웅적 행동과 자기희생적 정신으로 역사에 깊이
각인된 그런 수백명 남녀들의 맨 앞에 서있는 한 인간을, 인도 전역에서 수천명의 충성과 신뢰를 담보하였던
인간을, 하지만 추종자들에게 착취를 끝내는 것은 전투적인 투쟁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전쟁과 억압에 봉사하였던 인간을, 비폭력의 이름으로 딩그라 같은 혁명가들의 애국적 행동을 비난하였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을 제국주의의 총알받이로 보내는 것에는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한 인간을, 무엇보다도
제국주의 착취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인류의 문명에서 근대적이고 과학적이고 진보적인 모든 것을 비난하는 한 인간을 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