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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한 구절 - 말씀이 삶이 되다
김기현 외 지음 / 잉클링즈 / 2021년 10월
평점 :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24절기 중 곡우는 땅과 하늘의 기운이 만물을 소생시키는 시기다. 그 만큼 농촌의 밭은 여린 싹들이 한 참 피어오르는 장관이 펼쳐진다. 그런 시기를 지나 작물들이 눈대중으로도 이름을 알 만큼 자랄즘, 밭 곳곳에 특이한 것을 보게 된다. 바로, 내가 심지 않은 작물들이 여기저기에서 자라 나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라! 이 놈들 봐라. 호박이며, 들깨 ,쑥갓, 엉겅퀴....”
그렇게 주인도 모르는 사이 심기고, 자라, 열매까지 먹을 때면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내가 심은 것도 아닌데, 하늘이 심고 하늘이 키워 열매를 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매 년 봄이면 겪는 “예기치 못한 기쁨”이다.
“내 인생의 한 구절”의 17명의 저자들의 내밀한 삶과 역동적이고 가슴시린 인생여정을 읽으면서, 마치 텃밭 구석구석에 주인도 모르게 뿌리를 내리고 잎이 자라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강인하게 살아낸 “예기치 못한 작물”이 떠오른다. 하늘에 나는 새도, 들에 핀 꽃 한송이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늘 아버지라는데, 한 사람의 온전한 목회자를 만들기 위해 “우연과 필연”의 오묘한 사이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고 푸르른 잎사귀를 만드셨구나!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뙤양볕과 혹독한 가뭄을 이겨내고 살아남는 야채들을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할 때가 종종 있다. 병충해와 싸우며 상처의 흔적이 잎 곳곳에 남아있지만, 그 향과 맛은 “일품이다” 책의 부제가 “말씀이 삶이 되다”라는 것처럼, 말씀의 힘은 교회에서 편한 자리에서 들을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의 계획에 말을 걸고, 내 계획을 변경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때 오롯이 드러남을 본다.
읽으면서 그 상황에 몰입하면 나도 목사인지라 마음과 몸이 힘들게 느껴진다. 아니, 그런 상황들을 뚫고 버티고 살아내신 이분들의 향이 너무 짙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도 향을 묻혀 보낸다”는 말처럼 “말씀을 향한 치열함이 자신을 찍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의 향을 머금고 살아내는 모습에 존경과 미안함이 밀려온다.
기와로 자신의 몸을 벅벅 긁으면서도 믿음의 길에 섰던 욥처럼, 어쩌면, 현대판 욥의 화신처럼 “고통과 하나님”을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보는 듯 하다.
밭 한가운데 영롱한 보라색 꽃을 피우고, 날카로운 가시로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식물이 있다. . 야생동물이 쉽사리 먹을 수 없을 만큼 세고 강하지만, 엄청난 약성을 지닌 식물이 바로 “엉겅퀴”다. 꽃말이 “No Touch, 즉, 나 건드리지 마”다. 가시가 있는 식물은 독이 없고 몸에 좋은 약효를 지니고 있다. 엉겅퀴의 강인함과 약성처럼, 저자 모두가 강인함과 말씀의 깊이가 삶과 몸에 배여 있다.
점점 엉겅퀴가 산과 들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서운한지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치고 아픈 이들에게 ” 그 어떤 설교보다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