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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신학하기
구미정 지음 / 서로북스 / 2021년 3월
평점 :
매년 봄 아버지는 텃밭에 농사를 짓는 나에게 농사의 기본에 대해 설교를 하신다. 지력을 높이기 위해 거름비료를 뿌리고, 땅을 갈아 예쁘게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 다음에 비닐멀칭을 하시고 잡초매트를 깔고 등등.. 설교는 항상 듣고 있으면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그러나, 설교대로 살아가는 이가 어디 있나. 텃밭은 설교대로 깨끗하지도 예쁘지도 않다. 잡초는 무성하고, 오이,가지, 고추는 알아서 각자 도생해야 한다. 잡초와 싸워서 이기는 놈만 나의 선택을 받는다.
그러나, 설교는 항상 옳다. 잔소리로 들리기에 문제지만, 역시나 7월의 텃밭은 거의 밭이 아니라 풀밭이다. 동네 중간에 있기에 동네분들이 수시로 지나다니시며 욕꽤나 하실듯.. 아버지도 뭐라 하시지는 않는데 종종 제초제를 뿌려 동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노력하신다. 아들놈이 명색이 목사라. 뭐라 하시지는 않기에 몰래 하신다.
풀의 기세에 올해는 두 손을 들었다. 기세가 한 번 오르면 왠만해선 이기기 쉽지가 않다. 새벽시간 눈을 피해 텃밭에 가서 일을 한다. 어라! 수박이 있네. 내가 수박을 심었나? 기억이 없지만 하여튼 수박이 넝쿨 채 몇 개가 나름 폼나게 자랐다. 풀 속 호박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자라는 뽐새가 늠름하다.. 오이는 거짓말 보태 자라는 게 보일정도로 하루 지나면 손가락이 팔뚝만해진다.
아버지의 텃밭은 오와 열이 가지런하다. 어디 하나 풀 한포기 용서받지 못한다. 그러나, 내 텃밭은 지리산가리산처럼 지 멋대로, 지 맛대로 자란다. 풀도 자라고, 먹거리도 자라고, 지렁이도 자라고, 나도 자란다.
농사만큼 힘든게 없다. 돈주고 사먹는게 가장 쉽다. 아무렴 만고의 진리다. 이 것 만큼 설득력있는 설교는 없다. 농부성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한다. 그러나, 가끔 삐딱한 성도가 있으니 설교자는 불편한게지.
텃밭은 놀이터다. 들어가는 순간 뭐가 있을지, 뭐가 나올지 궁금하다. 심은것은 없고, 안심은 게 있네! 심을때 주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심었서 그런것도 있지만, 몰래 나오는 애들도 있다.
마트는 돈주고 사와야 되지만, 텃밭은 뭐가 있을지 모르니 풀속 헤치며 찾아 가지면 그만 이다.
텃밭은 흥미진지하다. 뭐가 나올지 얼마나 나올지 모르지만 하여튼 뭐 자꾸 나온다. 혼자 먹으면 다 못먹기에 텃밭은 나를 인심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텃밭에서 나의 눈이 자라고 귀가 자라고 마음도 자란다. 놀이터에 아이들은 지칠줄 모른다. 놀이터 아이들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눈망울은 초롱초롱하다. 저렇게 노는 아이들은 행복한 거지.
구미정 교수는 "그림으로 신학하기"에서 그림과 한바탕 놀고 있다. 그림만 200점정도가 실려 있으니 어마무시하다. 그림으로 놀다보니 그 속에 하나님이 보이고 사람이 보인다. 그리고 세상이 보인다.
렘브란트도 " 갈릴리 바다 폭풍가운데 있는 예수와 제자들"에서도 은근슬쩍 자신도 그려넣어놓았다. 글자가 주는 힘도 있지만, 그림이 주는 시각적 강렬함은 더 어마무시하다.
설교는 지루하고 잔소리가 많은데, 그림은 생소하고 침묵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각 사람의 삶의 자리에 상상력의 원천으로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영감을 준다.
나는 그림으로 한 바탕 놀고 있는 구미정 교수의 상상력이 궁금하다. 다양한 이력, 다양한 관심, 신나는 놀이하는 인간. 하나님나라가 교회설교처럼 따분하고 지루하다면 목사인 나도 별로다. 하나님나라는 춤추고 사랑하고 웃고 자지러지는 축제를 여는 곳이 아닌가?
무더위와 코로나로 몸과 마음이 지친 요즘 그림으로 놀이로 한바탕 놀아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