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앵무새

 

군대에 들어간 날 첫 날 밤은 지금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어나면서 이런 기도를 했다 하나님 꿈이기를 그러나, 눈을 뜨는 순간 난 이등병이 되었다. 그리고 전역을 하는 마지막 밤 잠자리에 누워 아쉽다. 그래도 정이 많이 들었는데.” 군대가 나에게 적응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군대에 완벽하게 적응을 한 이유일 것이다.

저자는 성경읽기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성경이 우리에게 길들여져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성경에 길들여져야 하는가? 저자는 길들여지지 않는 파란 앵무새와 같은 성경구절을 접하게 되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성경의 파란 앵무새에 적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성경의 파란 앵무새를 내가 원하는 새로 길들이여 한다면 파란 앵무새는 날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파랑 앵무새에 적응하듯이 우리는 성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3가지 방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첫째, 성경은 이야기다.

성경은 각각의 시대에 맞는 문화와 상황 속에서 그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된다. 요셉이 경험했던 말씀과 상황은 모세에게 동일하게 이어지지 않고, 시대와 사람에 따라 좀 더 다양한 사건이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동일하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시대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성경의 이야기의 바톤을 받아 우리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성경을 읽기를 꾸준히 해야하지만, 그 속에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빠진채 헤엄치고 있다면 성경이 우리에게 준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없다.

 

둘째, 성경에 귀 기울임이다.

훌륭한 읽기는 사랑의 행위이며, 따라서 귀 기울이는 행위다. 그러나 휼륭한 귀 기울임, 곧 주목 하는 귀 기울임, 사랑하는 귀 기울임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p145)는 저자의 말은 아내의 말을 종종 귓등으로 듣고 잊어버리는 나에게 있어 죽비로 어깨쭉지를 내리치듯 정신이 번쩍난다. 귓등으로 들으면 틀림없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나지 않고, 일을 잘못처리하여 아내와의 관계에 빨간불이 들어올때가 가끔있다.

이처럼, 저자는 성경읽기는 단순히 듣고 아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 중심의 귀 기울이기이라고 부른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면 그 분의 말씀을 귓등으로 건성건성 듣고 어물쩍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과의 관계가 깊어진다는 것은 그것은 우리의 시대에, 그분의 말씀을, 잘 듣고 해석해서 우리의 방식으로 살아낸다는 것이다.

 

셋째, 성경은 분별하는 것이다.

아브라함, 모세,다윗,예수님, 바울은 우리의 믿음의 모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입은 옷과 음식을 똑같이 입고 먹지 않는다. 심지어 예수님은 믿음의 대상이지만, 그 분이 선택하신 도보로 여행을 하지 않고, 승용차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닌다. 이것은 예수께서 복음을 표현했던 방식이나 살아가던 방식은 우리의 표현 방식이나 생활 방식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대로 살아낸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함께 분별함으로써 성경을 우리 시대에, 우리의 방식대로 살아낸다는 뜻이다”(p204)는 것은 내 목소리를 가지고 성경의 말씀을 내 삶의 자리에서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가며

성경의 파란 앵무새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참새들도 문득 문득 파란 앵무새의 존재로 인해 두려움과 소동이 일어나곤 한다. 아무리 적응해도 파란 앵무새는 참새들이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우리의 생각과 문화에 적응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성경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성경을 나에게 적응시켜려는 노력은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대마다 사람들이 동일한 잘못을 하곤한다.

이제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거울삼아 성경을 나에게 적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경에 적응해야 하는 깨달음이 이 책을 통해서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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