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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라는 산
고정순 지음 / 만만한책방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기다리던 택배 상자를 열자, 다섯 손가락을 쫙 펴면 손 안에 가려지는 작은 크기의 책이 보였다.
제목에 쓰인 ‘산’이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다소 긴장했던 마음이 ‘그림책’이라는 단어 위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웃는 고양이 덕분에 스르르 풀린다.
이 책은 그림책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한 작가가 그림책이라는 숲 안에서 울고 웃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사랑하고 그리워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한 글이다.
<백만 번 산 고양이>와 <지각대장 존>을 만나 그림책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림책 작가로 살기 위해 견뎌야 했던 수많은 순간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그림책 작가가 된 지금, 무엇보다 순간과 순간 사이에 그녀가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신기한 건 분명 대부분 사람들이 쉽게 겪지 않았을, 그녀만의 내밀한 순간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인데,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내 이야기인 양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훔치게 하고 웃게 한다는 거다. 도대체 이처럼 강력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작가의 고백대로라면 그녀는 타고난 글쟁이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라는 데 말이다.
답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지만, 동시에 자신이 친구와 이웃,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 그녀의 마음과 그들을 향한 애틋함이, 그녀의 글 속에 능청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녹아 있기 때문이란 걸 말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그림책과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이토록 솔직하고 쉴 틈 없이 이야기하는 걸 보니, 작가는 아마도 수다쟁이인 듯하다.
작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뱅이로 산다.”는 지혜로운 할머니의 진심어린 경고를 가볍게 무시하고, 가슴과 마음 한 편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을 수다스럽게 쏟아 내며 기어이 독자들을 울리고 웃기고 만다.
다듬지 않은 보석 같은 그녀가 글로, 그림으로 쉬지 않고 떠드는 수다를 오래도록 듣고 싶다.
그림책을 향한 그녀의 변태스러운(? ^^; 이건 책에 쓴 작가의 표현인데, 이 책에서 작가는 가끔 이렇게 놀라운 어휘 선택으로 강렬한 웃음을 선사한다.ㅋ) 사랑이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책장을 덮고 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표지를 본 첫 느낌이 꽤 정확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과 사진처럼 묵직한 이야기들, 그 사이를 귀요미 고양이가 야옹~ 하면서 파고 들며 미소 짓게 하는 책이 바로 <그림책이라는 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