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언제나 대기 상태인 벗이다.

존경할 만한 남자들과의 교제 그리고 아름답고 정숙한 여자들과의 교제, 이 두가지 교제는 우연적이고 타인 의존적이다. 첫째 교제는 드물어서 힘들고, 둘재 교제는 나이와 더불어 시들해진다. 그런 탓에 이 두가지 교제는 살아가면서 필요한 만큼 나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했다. 셋째 교제는 책과의 교제인데,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훨씬 더 확실하고 사적인 관계를 맺게 해준다. 앞의 두가지 교제가 가진 장점을 제공해주지는 못하지만, 책과의 교제는 꾸준히 그리고 매우 쉽게 누릴 수 있다는 고유한 장점을 지닌다. 그것은 인생 행로에서 줄곧 나와 동행하고, 어디를 가든 나를 도와준다. 노년과 고독 속에 있는 나를 위로해주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한가할 때 그 무게를 덜어주고, 성가시게 하는 사람들에게서 언제든지 벗어나게 해준다. 고통이 극도에 달했거나 나를 완전히 엄습한 때가 아니라면, 책과의 교제는 고통의 공격을 무디게 만들어 준다. 괴로운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책에 도움을 청하면 된다. 책은 이내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게 하고 고통을 덜어준다. 또한 내가 보다 실재적이고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다른 즐거움이 없을 때만 찾더라도 결코 불평하지 않으며, 언제나 똑같은 얼굴로 나를 맞아준다.

나는 구두쇠가 보물을 향유하듯이 책을 향유한다. 내가 원할 때 그것을 향유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그런 소유의 권리만으로도 만족감과 포만감을 느낀다. 나는 평화로울 때든 전쟁 중일 때든 책 없이는 여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며칠이고 몇 달이고 책을 들춰보지도 않고 지내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조금 있다가 일자, 또는 내일 읽자, 또는 마음 내키면 읽자, 하며 넘긴다. 세월은 달음질쳐 흘러가지만, 나는 그렇다고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 책들이 내 곁에 있어서 내가 원할 때 나에게 즐거움을 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책들이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아루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은 내가 살아온 한평생에서 찾아낼 수 있었던 최상의 양식이다. 그러므로 나는 뛰어난 식견을 가졌지만 책을 갖고 있지 않은 사름들을 몹시 딱하게 여긴다. 책이 주는 즐거움이 나에게서 없어지는 일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으므로, 오히려 나는 그 밖의 다른 즐거움들이 하찮은 것일지라도 기꺼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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