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년필은 서랍 안에 녹슨 채로 그대로 들어 있고, 새 울음 소리는 책갈피 속에 더러더러 끼어 있고, 닫힌 책과 열린 책 사이로 말하는 입과 듣고 있는 귀 사이로 시간은 허망하게 빠져나가고, 담배와 커피와 외로움과 가난과 그리고 목숨을 하루 종일 죽이면서 나는 그대로 살아 있기로 한다. 빙글빙글 넉살 좋게 웃으며 이대로,자꾸만 틀린 스텝을 밟으며 이대로.

-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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