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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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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나라당의 싹쓸이, 진보세력의 포괄적 지원으로 집권한 현정부의 우향우.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진보적이라고 규정하고 싶은 이들에겐 답답한 요즘이다.

우향우 바람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것이 문제다. 글로벌화가 달갑지 않은 바람까지

스탠더드로 둔갑시키는 모양이다. 경쟁과 효율의 신자유주의란 황금 도끼자루를 쥔 우익들에게서 바톤을

뺏어오기 위해 고민을 해온 진보집단에게 세계적인 언어학자가 혜안을 제시한다.

그 방법인 즉슨, 인식틀(프레임)의 전환이다. 

조지 레이코프(저자)에 따르면, 진보진영이 싸움의 주도권을 쥘수 없었던 이유는 프레임을 내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논의의 장이되는 인식틀을 선점하지 못한것이 패착인 것이다.

예컨데, 외환위기 이후 '유연성'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많은 경우 노동앞에 붙어 있던 걸로 안다.

이것은 은유로써 작동한다.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되는 현실을 은폐하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다.

부드러운 역설이랄까.  문제는 '유연성'이란 개념이 보편화 되면서 양쪽 모두 이 개념을 공유한

혈전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파놓은 구덩이에 한쪽다리를 걸친채 말이다.

저자는 대중들의 투표동기를 개인적 이해관계(경제적 계급)가 아닌 도덕적 가치관이나 정체성에서 찾는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을 이해할수 있는 단초가 된다.

서민이 한나라당에 투표하고, 상위계층이 민노당을 지지한 경우를 풀어주는 열쇠가 될수 있다.

(정확하진 않으나 지난 선거때 땅값 제일 비싼 분당의 어느곳에서 민노당이 약진한 것을 보고 놀랐었다.)

그렇기에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공식은 적어도 정치시장에선 항상 옳을수 없다. 

만인 앞에서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대중들의 우매함을 깨우치고자

진실의 찾아서란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한 긴여정을 떠나기 전에

그네들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는 테두리를 고쳐야 된다는 것이다.  

'좌파의 가능성은 진정성이다' 라고 말했던 어떤이의 외침이 떠오른다.

 하여, 문제는 진정성이 바탕된 프레임으로 소통의 장을 왼쪽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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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공범자들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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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겨례고 단군의 자손이고,, 주저리 주저리,, 5000천만년의 유구한 역사,,

의례 이뒤엔 통일의 불가피함이 결론으로 자리한다.

너무도 익숙한 도식이다. 하지만 이 도식에 한번도 왜라는 물음을 가져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일년에 한두번은 꼭 있었던 통일과 관련된 글짓기날,,

그 어린나이에 통일의 경제적측면과 비용은 거시기하더라도 왜 통일이 당위적이 되어야만하는지는 한번이라도 생각해봄직했다. 그 당연한 물음을 떠올리지 못한것은 어린꼬마의 인식틀을 규정했던 민족이란 단어의 마력때문이리라. 

웬지 영속적이고 무한한 흐름을 연상시키는 민족,, 한국인에게 민족이란 말이 갖는 함의는 특수함을 넘어 애절함이나 간절함까지 느껴진다. 마치 ‘정‘ 이나 ’한‘과 같이 말이다.

외세에게 990번이 넘는 침략을 받았으나 한번도 다른나라를 침범한적없는 민족이란 사실을 주입받은 한국인들이 민족주의의 배타성이나 배제의 논리를 들여다보는것은 쉽지않은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해도 저항민족주의에 매몰된다는것은 또다른 억압,차별기제를 내포하는것이고, 식민주의의 기억에 대한 세습적 희생자의식은 우리를 가해자의 입장으로 포지셔닝 할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된다고 말한다.

 현재 중동지역에서의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의 강경 기조는 우리의 반면교사가 될수있다고 한다. 어린 이스라엘 군인들이 똑같은 사람인 팔레스타인의 주검앞에 당당할수 있는것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세습적 희생자’라는 각인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들을 희생자의 위치에 묶어둠으로써 그네들이 현재자행하는 부조리에 눈을 감게하고, 면죄부를 부여하는 이율배반적인 틀거리가 우리에게도 체화될수있음을 깨닳아야한다고 필자는 말한다.

필자에겐 60-70년대 경제독재개발 시대를 살았던 민주화세력들이 기댔던 민중 민족주의도 절대선이 될수 없다는 점에서 ‘민족주의’ 자체가 양날의 검이다.

 포스트 9.11후 미국의 헤게모니 작동방식에서의 반이슬람주의와 빈라덴의 반미주의노선이 서로의 정치적입지를 강고히하는 은폐된 동맹이라 규정한후 실질적인 피해자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민중이란 지적은 통렬하다.

한국의 내셔널리즘과 일본의 내셔널리즘또한 적대적 공생관계로 바라볼수 있으며, 이런 기만적인 동맹을 깨뜨릴수있는 첩경으로 새로운 역사관을 갖자고 말한다.

 절대선이나 최선으로 여겨지던 국사란 틀을 깨뜨리잔것이다.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와 이해를 반영한것이 '국사'란 패러다임이고, 이전의 역사과정들을 만들어진지 200여년됨직한 ‘근대‘란 개념안에 포섭시킨다는것이 골프구멍에 에드벌룬을 넣는것과 같다고 말한다.


필자가 주장하는것들이 새롭고 신선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등의 외교분쟁에있어 감정을 앞세웠던 내게 그보다 근본적인 판을 걷어내야 된다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열린 민족주의, 닫힌 민족주의 든 시민 민족주의든 그 그릇안에 믹스되는 재료에 따라 그릇의 성질도 바뀔수있다는점, 어떤 선의 사상이나 개념이든 권력담론에 포섭될수 있고 타자들을 공격할수 있는 창이 될수 있다는것.

 끝까지 뚜렷한 대안을 발견하지 못한것은 아쉽지만 기존의 통념과 당연한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물음을 가져보는것이 성찰하는삶의 출발점임을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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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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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대중매체의 과잉으로 영상물이 범람하는 시대다.

이 시대 예술의 총아는 누가뭐래도 영화가 될것이다.

아는 만큼보이는것이 종합예술이라고 했던가,, 이름있는 몇몇 평론가의 평을 영화를 볼때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던 내가 철학이란 다른눈으로 영화란 텍스트에 접근할수 있도록 배려해줬다는 점에서

전환적인 시각의 필요성을 제시해준 책이었다.

흔히 영화문법이라고 하는 기존의 편협한 시각들,, 기술적인 테크닉이나 기교를 보고 저영화는 B급영화니 ,,무엇의 아류작들이니하는 속단을 필자는 자제해 줄것을 자신만의 영화와의 놀이로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다가가는 방법, 해석의 방법에 따라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성찰할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영화가 될수 있다는 가능성,,  필자의 진부하지만 이 간명한 메시지에 동의하지 않을수 없다.

이책은 철학적 사고를 위한 책이기보단 '영화'란 매체를 매개로 여러 철학사상을 열거하고 그것들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얼굴들을 드러내고 있다. 현실과의 간극,괴리의 지평 저쪽에서 난삽한 내용을 이해못해 뇌세포를 쥐어짜는 독자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기존 철학서적의 지은지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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