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다가 오게 되면서 가장 많이 변한것은 예배를 드리는 방식이다.
모든 교회가 온라인으로 예배가 변경되었고 더이상 오프라인 예배는 불가능 하게 되었다.
신형섭 교수님의 책에서 말하듯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에는 위로로 응답하시기도 하셨지만
고통가운데에 메타버스와 온라인이라는 메가폰을 쏘신것만 같았다.
<안전지대를 떠나기>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로 부터 안전지대를 떠나기를 요청받았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뜻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이끄시는곳으로 나아갔다. 그곳은 안전해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기에 안전했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는 4차산업시대를 살고 있다. 그 시대 속에서 4차산업시대는 결고 교회에게는 안전해보이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동안 건물중심에 오프라인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오프라인으로 모여야만 교회가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어디에나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생각하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상상력의 부실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고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
현재 자라나는 아이들은 메타버스 세대이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난다면 이 메타버스 세대를 이끌어 갈것이다.
물론 본질이라는 것이 있지만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본질과는 별개의 문제로 취급하고 대해야 할것이다. 불과 휴대폰과 인터넷이 들어오기 이전에 예배가 중심임을 기억하고도 우 리 현대 사회는 휴대폰과 연결망들을 사용하지 않고 종속되지 않는것 같지만 바보TV와 컴퓨터 그리고 넷플릭스등 많은 영상매체에 사로잡혀서 주일날만 아니면 된다는 우리의 생각과 구 시대의 패러다임속에 우리를 노예화 시켜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사적영역속에 사로잡혀 버린 공적영역의 부실이며 자유와 행동이 결여된 욕구와 생산만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감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메타버스만 불경하게 여기고 메타버스만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은 세대차이의 문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온갖 인터넷 매체에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기 못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메타버스를 아무리 잘 활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역으로 우리는 메타버스의 노예가 되어야 할것이다.
기독교에서 계속강조하는 것은 메타 네러티브이다.
그렇다 성숙한 기독교에서 발견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야기와 의례 그리고 공동의 비전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과연 우리의 이야기와 의례 그리고 비전이 있는가? 우리는 그저 형식 만이 남은 공허와 맹목만이 남은 내용만 가득한것 같다.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확장하고 이용하고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본질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다. 그리고 활용하면서도 본질을 심어줄 수 있는가 이다.
사실 우리는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통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함을 우리는 사실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메타버스는 더 새로운것을 더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기초부실의 허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기술로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이 있고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매체가 더 늘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는가?
<참여자가 주체가 되는 수련회>
현재 나는 청년부를 하고 있으면서 딜레마가 하나 있다.
현재 지금 수련회를 기획하고 있는데 굉장히 구 시대적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진행할 수 밖에 없는 현실과 딜레마에 나는 지금 직면하여 있다.
기존의 수련회는 교역자와 강사가 주도적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진행했다. 그리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저 초대받고 와서 즐길 뿐이었다.
사실 이 수련회를 소비하는 사람들조차 그저 순종하여 의례 해왔던 것에서 채움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는 달라져야한다.
흔히 사도행전 이야기를 많이하면서 사도행전의 마가의 다락방 성령의 역사가 많이 모였기 때문에 연합했기 때문에 그리고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지만 사도행전에서 이야기하는 성령의 역사가 그것만 이야기하기위해 작성되지 않았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실 사도행전은 그것이 포인트가 아니라 오히려 틀을 깨는 말씀하나로 뜨겁지 않아도 성령의 역사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피난을 떠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주체적으로 참여할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틀과 사고를 깨며 나아갔을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서로 협업하면서 이끌어나갔을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고백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문제는 교역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답습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더 새로운 은혜로운 기도회와 말씀 중요하지만. 그건 이미 20년동안 답습해왔다. 그런데 현재 상황을 보았으면한다.
수련회는 좋은 사람을 불러서 그 사람에게 은혜받는것이 수련회가 아니다. 이제는 수련회는 준비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발견되어야 그리고 그 공동체가 그 것안에서 하나로 만들어가는 자체가 수련회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희생하고 갈아넣고 다른 사람들이 은혜받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복음을 매력적으로 전할준비>
"2020년 3일간의 온라인 여름 캠프를 통해 693명의 아이들이 회심을 고백한 엘리베이션교회의 경우, 그 중심에 말할 것도 없이 청소년들이 고민하고 있는 가치와 삶, 문화와 미래에 대한 선명한 복음적 메시지가 있다. 또한 이와 연결된 강력한 성경.교육과 기독교 · 적 분별에 관한설교, 토론, 나눔, 실천 등이 있다" 85
노스트인 교회는 핵심 가치 36개를 선별하여 예배와 양육을 통해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집중해서 배우고 실천한다. 3년을 주기로 모든 세대가 함께 신앙으로 삶을 해석하고, 삶으로 신앙을 드러내는 삶을 지향하며 목양하고 있다 86
복음주의의 보수였던 미국도 변하고 있다. 이 글을 쓰다보니 현재 나는 답답한것 같다^^
우리는 과연 성이되는 은혜가 될것인가. 세상을 향한 플랫폼이 되는 교회가 될것인가는 우리가 하나로 어떻게 통합할것인가에 달려있다.
연합은 그저 모두가 단합이 되는것이 연합이 아니다. 각자 하나님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지어져 경험할 수 있게한다면 그것자체로 이미 연합이다. 그런점에서 연합은 하나의 방식으로 통일하는게 연합이 아니다.
<선교 프로그램이 있는교회와 선교적 삶이 있는 교회>
이 부분에는 현재 고민이 있다. 선교의 현장에 참여하게 했을때에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것이며 어떻게 이 사람들이 이 선교에 대해서 진심으로 마음을 품게할 것인가? 사실 나조차도 이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교회 전쳬 공동쳬 내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선교 사역의 열매와 간중들 올 메타버스 플랫폼을 통하여 동시다 발적으로 전 회중과 공유한다면 어떨까?"89
- 이말을 묵상하며 어떻게 회중과 공유할까? 라는 고민을 해본다. 그럼에도 이것이 공동의 신앙 고백의 공유가 되는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위드 코로나가 위드 지저스로, 위험한 시간이 아닌 위대한 시간으로 재거듭 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