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청 신약 - 들음에서 앎으로, 앎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성경 공부
박영호 지음 / 두란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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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나는 성경공부를 많이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경공부를 진행하기 위해서 많은 책들과 자료들을 참고해서 진행하는데, 성도들은 주로 많은 자료와 깊은 내용은 한눈에 들어오고 무언가 이 개관들이 나에게 의미가 있어야 잘 받아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개관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책이다.

흔히 성경공부를 하면 네 가지 정도의 개관을 하게 되는데 보통 개관을 할때

1) 전체내용 요약

2) 역사적 배경 개관

3) 지리적 개관

4) 장별 구체적 설명 순으로 진행한다.

쾌청신약은 1)-2) 번 사이에 알려주어도 참 좋을 교재이다. 그만큼 기초가 탄탄하다는 뜻이다.

쾌청신약의 구조는 이렇다.

크게 각 파트의 주제, 구조, 특징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배우고 따라가야할 부분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의 특징은 그 중에서도 주제나 구조에서도 결론만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배경부터 설명하여 친절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어렵게 습득했던 지식들을 이 책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내용과 특징

저자는 먼저 복음이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 한다. 복음을 다루기 전에 성경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루고 이 모든 것들을 성경안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복음서를 알기전에 필수적으로 다루어 져야 하는 구조 즉, 공관복음과 마가복음의 구조와 특징을 이야기하며 먼저 공관복음에 대해서 다룬다. 

그리고 정말 좋은 특징은 다 도식화를 해놓았다는 것이다.
 도식화를 해놓으니 책을 읽는 내내 한눈에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누가복음 도식>
갈릴리 <-> 여정 <-> 예루살렘 
이러한 내용들을 신약 전체에 걸쳐 이야기를 하기 내용이 안들어올 수가 없다.
그리고 다음은 바로 각 권별 특징 설명이다. 이 특징은 학문적인 설명을 넘어서 저자의 묵상과 인사이트까지 들어가있다.

< 사도행전에서는 사역자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이 선교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시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베드로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로마 군대 백부장의집 에 가서 전도했고, 그후에야하나님의 인도하심을깨달았다(행 10:34-35). 12장에서는 베드로가 옥에 갇혀서 처 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구출되는 사건이 일어났다.>_85

마지막으로는 항상 저자는 권을 끝내면서 결론을 낸다.
<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처럼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셨다는것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끼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부재의 경험이 오히려 강력한 임재의 경험이 되는(presence in absence) 역설이다. 어머니가집에 있을때는그존재에 대해 별 의식이 없다가도, 막상 어디 떠나고 없으면 어머니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게 되는것과 비슷한 이치라 할 수 있을까? 마가복음은 가장 짧고 단순해 보이지만곱씹어 볼수록심오한제자도를가르치는, 신앙의 깊이를요구하는책이다.  정리하자면, ‘‘예수님은 어디 계신가?”라는 질문에 누가복음은  하늘에, 마태복음은 우리 공동체 안에 생생하게 현존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댜 반면, 마가복음은 우리 삶에 예수님 이 계시지 않은것 같은 순간을주목한다. 그고통을씨름하고받아들이며, 그가운데 하나님올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에 따라 하나님을 깊이 경험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_ 69

이렇게 저자는 책의 한파트씩 결론을 이야기함으로써 책의 구조와 그리고 결론들까지 이야기함으로써 권별 내용과 구조도 알고 결론도 생각하게 함으로써 일석이조의 구성을 가져가게 한다.

성경을 가르치거나, 성경을 큰 뼈대를 잡고픈 이들에게는 참 귀한 책이다. 이 책을 잘 활용하여서 신약을 잘 알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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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 - 기도로 밤을 뚫다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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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 #이규현 #수영로교회 #기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더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해야할까?


부산수영로교회의 이규현 목사는 한가지의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철야 기도"이다.


저자의 워딩으로는 "위기를 반전으로 바꿀 기도만이 답"이라고 말하고 있다.



Part 1 "금철 뜨거운 밤이 온다."


파트 1에서는 왜 저자가 철야 기도회를 강조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이 없어서 이렇게 침체되어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필자도 이 글을 읽으면서 어렸을때 부모님을 따라서 간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났다.


하지만 요즘 금요철야를 이전처럼 하는 모임이 사라졌다.


저자는 철야가 한국교회의 야성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세련됨은 추구했지만 프로그램은 추구했지만 정작 야성은 잃어버렸고 현실에 안주하며 안정을 추구하는 신앙이 되어버렸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Part 2 "금철, 모이는 것이 즐겁다."


파트 2에서는 철야기도회를 통한 은혜와 축복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수영로교회는 밤 9시에서 새벽1시까지 기도가 이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새벽 4시까지 인도한다. 그리고 이 모든것을 담임목사님이 인도를 하신다고한다.


이렇게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무슨 기록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시대 정신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물질주의, 편의주의, 세속주의에 투항하지 않겠다는 신념인 것이다. (69)



Part 3과 금철, 미룰이유가 없다.


파트3에서는 어느 교회에서든지 활용할 수 있도록 철야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 영적인 결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나무에 결이 있듯이 공동체에도 저마다 결이 있다. 이 결은 곧 영적 분위기를 말한다. 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그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일꾼들, 공동체의 리더들이다. "(126)


그리고 금요철야기도회는 담임목사가 인도해야한다. 금요철야기도희가 없어지는 교회들을 보면 부교역자들이


당번처럼 돌아가면서 인도를 하다가 나중에 서서히 힘을 잃어버리고결국은문을닫는다. 라고 말한다.



이처럼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서 회복되어야 하는것은 다양한 시도가 아니라 결국 본질이라는 것을 저자는말하고 있다. 기도를 통해서 회복했던것처럼 우리또한 이 본질을 깨닫고 기도로 나아가야함을 이야기한다.


다음세대를 위해서도 기도의 보호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설교의 방향에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금요철야기도희에 나오는 성도들을 분석해야 한다. 금요일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오는 성도들의 마음을 이해해야한다.,,,,어쩌면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모른다. 설교자는그들의 아픔과 절망에 감정이입할 수 있어야 한다….설교는 너무 현학적이서는 안 된다. …. 영적 돌파구를 찾게 해 주어야 한다….금요철야기도회는 믿음이 다시 활성화되는 시간이다…..특히 믿음을 증진시키는 설교여야 한다. 지쳐 있던 영혼이 힘을 얻고 벌떡 일어나게 하는 설교여야 한다…..메시지의중 심에는소망이 흘러야한다. 복음은 소망중에 소망이 된다…..또 다른 설교 의 강조점은 사명 회복이다…..그러려면 영적 무기력증을깨우고 영적 나태에 대한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이 책은 이리저리 다양한 방법론만 찾아서 헤메는 자들에게 읽으면 좋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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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메타버스 교회학교 - 이 시대의 땅끝, 메타버스에 복음을 전하다
신형섭.신현호 지음 / 두란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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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다가 오게 되면서 가장 많이 변한것은 예배를 드리는 방식이다.

모든 교회가 온라인으로 예배가 변경되었고 더이상 오프라인 예배는 불가능 하게 되었다.

신형섭 교수님의 책에서 말하듯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에는 위로로 응답하시기도 하셨지만

고통가운데에 메타버스와 온라인이라는 메가폰을 쏘신것만 같았다.

<안전지대를 떠나기>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로 부터 안전지대를 떠나기를 요청받았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뜻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이끄시는곳으로 나아갔다. 그곳은 안전해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기에 안전했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는 4차산업시대를 살고 있다. 그 시대 속에서 4차산업시대는 결고 교회에게는 안전해보이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동안 건물중심에 오프라인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오프라인으로 모여야만 교회가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어디에나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생각하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상상력의 부실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고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

현재 자라나는 아이들은 메타버스 세대이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난다면 이 메타버스 세대를 이끌어 갈것이다.

물론 본질이라는 것이 있지만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본질과는 별개의 문제로 취급하고 대해야 할것이다. 불과 휴대폰과 인터넷이 들어오기 이전에 예배가 중심임을 기억하고도 우 리 현대 사회는 휴대폰과 연결망들을 사용하지 않고 종속되지 않는것 같지만 바보TV와 컴퓨터 그리고 넷플릭스등 많은 영상매체에 사로잡혀서 주일날만 아니면 된다는 우리의 생각과 구 시대의 패러다임속에 우리를 노예화 시켜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사적영역속에 사로잡혀 버린 공적영역의 부실이며 자유와 행동이 결여된 욕구와 생산만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감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메타버스만 불경하게 여기고 메타버스만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은 세대차이의 문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온갖 인터넷 매체에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기 못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메타버스를 아무리 잘 활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역으로 우리는 메타버스의 노예가 되어야 할것이다.

기독교에서 계속강조하는 것은 메타 네러티브이다.

그렇다 성숙한 기독교에서 발견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야기와 의례 그리고 공동의 비전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과연 우리의 이야기와 의례 그리고 비전이 있는가? 우리는 그저 형식 만이 남은 공허와 맹목만이 남은 내용만 가득한것 같다.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확장하고 이용하고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본질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다. 그리고 활용하면서도 본질을 심어줄 수 있는가 이다.

사실 우리는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통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함을 우리는 사실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메타버스는 더 새로운것을 더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기초부실의 허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기술로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이 있고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매체가 더 늘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는가?

<참여자가 주체가 되는 수련회>

현재 나는 청년부를 하고 있으면서 딜레마가 하나 있다.

현재 지금 수련회를 기획하고 있는데 굉장히 구 시대적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진행할 수 밖에 없는 현실과 딜레마에 나는 지금 직면하여 있다.

기존의 수련회는 교역자와 강사가 주도적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진행했다. 그리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저 초대받고 와서 즐길 뿐이었다.

사실 이 수련회를 소비하는 사람들조차 그저 순종하여 의례 해왔던 것에서 채움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는 달라져야한다.

흔히 사도행전 이야기를 많이하면서 사도행전의 마가의 다락방 성령의 역사가 많이 모였기 때문에 연합했기 때문에 그리고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지만 사도행전에서 이야기하는 성령의 역사가 그것만 이야기하기위해 작성되지 않았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실 사도행전은 그것이 포인트가 아니라 오히려 틀을 깨는 말씀하나로 뜨겁지 않아도 성령의 역사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피난을 떠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주체적으로 참여할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틀과 사고를 깨며 나아갔을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서로 협업하면서 이끌어나갔을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고백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문제는 교역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답습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더 새로운 은혜로운 기도회와 말씀 중요하지만. 그건 이미 20년동안 답습해왔다. 그런데 현재 상황을 보았으면한다.

수련회는 좋은 사람을 불러서 그 사람에게 은혜받는것이 수련회가 아니다. 이제는 수련회는 준비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발견되어야 그리고 그 공동체가 그 것안에서 하나로 만들어가는 자체가 수련회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희생하고 갈아넣고 다른 사람들이 은혜받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복음을 매력적으로 전할준비>

"2020년 3일간의 온라인 여름 캠프를 통해 693명의 아이들이 회심을 고백한 엘리베이션교회의 경우, 그 중심에 말할 것도 없이 청소년들이 고민하고 있는 가치와 삶, 문화와 미래에 대한 선명한 복음적 메시지가 있다. 또한 이와 연결된 강력한 성경.교육과 기독교 · 적 분별에 관한설교, 토론, 나눔, 실천 등이 있다" 85

노스트인 교회는 핵심 가치 36개를 선별하여 예배와 양육을 통해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집중해서 배우고 실천한다. 3년을 주기로 모든 세대가 함께 신앙으로 삶을 해석하고, 삶으로 신앙을 드러내는 삶을 지향하며 목양하고 있다 86

복음주의의 보수였던 미국도 변하고 있다. 이 글을 쓰다보니 현재 나는 답답한것 같다^^

우리는 과연 성이되는 은혜가 될것인가. 세상을 향한 플랫폼이 되는 교회가 될것인가는 우리가 하나로 어떻게 통합할것인가에 달려있다.

연합은 그저 모두가 단합이 되는것이 연합이 아니다. 각자 하나님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지어져 경험할 수 있게한다면 그것자체로 이미 연합이다. 그런점에서 연합은 하나의 방식으로 통일하는게 연합이 아니다.

<선교 프로그램이 있는교회와 선교적 삶이 있는 교회>

이 부분에는 현재 고민이 있다. 선교의 현장에 참여하게 했을때에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것이며 어떻게 이 사람들이 이 선교에 대해서 진심으로 마음을 품게할 것인가? 사실 나조차도 이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교회 전쳬 공동쳬 내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선교 사역의 열매와 간중들 올 메타버스 플랫폼을 통하여 동시다 발적으로 전 회중과 공유한다면 어떨까?"89

- 이말을 묵상하며 어떻게 회중과 공유할까? 라는 고민을 해본다. 그럼에도 이것이 공동의 신앙 고백의 공유가 되는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위드 코로나가 위드 지저스로, 위험한 시간이 아닌 위대한 시간으로 재거듭 났으면 좋겠다.


1 . 예수그리스도:예 수그리스도를 메타버스교회교육의 중심으로삼으라

2. 균형:올라인을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균형을 잡으라

3. 관계:의 미 있는 공동체와 만남을 경험하도록 도우라

4. 실재감:하나님의 현존이 구현되는 교육적 실재감을 추구하라

5. 교육적상상력: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의미를 상상하라

6. 말씀:하 나님 나라의 이야기와우리의 이야기를 스토리 링킹하라

7. 예언자적 참여:성경적 가치관과 분별력을 기르는 디지털 신앙교육 리터러시를갖추라

8. 선교적 교육:새로운 땅끝으로 나아가는 제자로 삼으라

-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은 방법론적으로 사용하길 원하는 사람보다 본질을 찾고 활용하는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메타버스교회학교 #온라인교회학교 #책리뷰 #서평 #신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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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신학 (월간) : 1년 정기구독
두란노서원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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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 있을때는 동역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이 교회 저 교회의 소식들을 듣고 요즘에 이슈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 공유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또한 학교에서 받는 교육과 함께 사역을 만들어가며 사회에 대하여 토론하고 신학적인 논의 가운데에 계속해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다. 그래서 그런 시선에서 목회현장에 있는 목회자들을 바라보았을때 참 답답하고 왜 그리 꽉 막혔는지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 아니라 그냥 현실에 주저앉는 영성으로 보일때가 많다.


열심히 있는 목회자들은 소통하려고하고 현실에 주저앉지 않으려고하고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며 뒤떨어지지 않으려고하지만 목회를 하다가 이리저리 바빠서 치이다 보면 그러지 못할 때가 많고 도태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교회일을 위한 일을 만들게 되고 실용적인 것만 찾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교회에만 있는 목사나, 학교에만 있는 교수 둘다 가지기 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목회의 자리는 고독한 자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립되어 목회를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럴때에 목회와 신학의 이야기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목회를 어떻게 하는지 롤 모델을 삼아서 진행하고 참고할 수 있다.



특별히 이번 2월호에는 MZ를 품는 목회라는 시리즈로 나오게 되었다. 흔히 1980년부터 2000년대생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필자도 다음세대를 계속해서 섬기고 있는 입장에서서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많았고 많은 부분들을 생각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이전의 교회에서 계속 구독하고 있었기에 2년정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참 도움을 많이 얻었다. 그래서 좀 규모가 되는 교회라면 교회차원에서 구매해서 함께 보고 공유하게 하는것도 좋은시간 같고 다른교회에 지원하는것도 좋은 방법 같다.



목회와 신학의 구성은


1) 목회


2) 신학


3) 이슈와 진단


4) 북리뷰


로 되어 있다. 그래서 목회적인 실질적인 인사이트와 쏙쏙 알려주는 신학 그리고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바탕으로 한국교회를 넘어 세계 다른 교회의 이슈들까지 정리를 해주면서 다루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뿐인가 드라마나, 대선같은 이슈같은 문제들도 쏙쏙 다루고 있다. 한달 내내 계속해서 곱씹으면서 읽으면 사유와 패러다임이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될 것 같다. 그리고 북리뷰가 있는데 실질적이고 당장 쉽고 필요한 책만 읽는 지금 한달에 한권 어떤책을 읽어야 할지도 정해주고 있다. 정말 좋은 구성이라고 할수있다.



그리고 여기서 빠질 수 없는 부록이 있는데 바로 그 말씀이다. <그 말씀> 부록책은 달마다 성경 한권의 몇가지 포인트를 잡아서 원문과 깊이 분석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읽으면서 성경책에 꾸준히 기록해놓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특별히 목회자라면 추천한다. 목회자의 영성과 지성관리와 도태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좋은 매거진이다.



#신명기 #신학 #목회 #신학과목회 #두란노



- 이 글은 두란노에서 책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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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것이 아니다 - 이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속한다는 것의 의미
앨런 노블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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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세속 #나의것 #서평 #나는나의것이아니다 #앨런노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하고싶은 것을 살아간다고, 그리고 내 삶의 자유는 내가 만들고 내가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할때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우리는 많이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앨런 노블의 글을 읽으면서 결코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그리고 내가 삶의 주인이라는 것이 좋은것 만은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 앨런 노블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인생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말하면서 글을 서술하고 있다. 앨런 노블은 그의 글의 시작을 주인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과 끝도 누가 주인인가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결론은 하나님에게 속하는 즉, 내 삶의 주인은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갈때 우리는 참자유를 얻는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목적 있는 삶을 사는것, 내 정체성을 정의 하는 것, 의미 있는 사건들을 해석하는 것, 내 가치를 선택하는 것, 내가 어디에 속할지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 (15)

"우리는 각자 독립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면서도 그 정체성을 우리는 인정받는 데서는 남들에게 의존한다." (51)

우리는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미덕이다. 그러한 것에는 외적인정이 있고 자율에 있고 인정에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각자 만들어가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게 아니라 결국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살아가려고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자면 내 삶의 주인은 나이지만 결국에는 우리는 남들에게 이끌려 살아간다는 것으로 이해 될 수 있고,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다. 각자의 주인인 이 세계가 서로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살아가는 아이러니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내 삶의 주체는 내가 아니다. 연약한 모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주체인척하면서 남들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려고 할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주체를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관념과 소속의 짐에서 해방시킬이가 존재한다....인간은 단순하지 않고, 사회도 단순하지 않다. 다만 내가 나의 것이고 나에게 속했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자시 소속의 책임을 느낀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속한 도다른 존재가 있다. 그분 앞에서 살면 자기 소속의 견딜 수 없는 짐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다른 존재 말이다.(69)

한계 없는 자유는 우리를 오히려 옭아매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속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이 개인의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면서 사회에게 끌려가는 책임을 "자기 소속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게 속하는 이 공동체를 넘어 또 우리가 속함을 깨닫지 못함을 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분은 바로 하나님 이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을 저자는 다양한 사회적 관점을 인용하고 있다. (저자가 보수적으로 보면서도 다양한 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주로 세속신학과 세속철학에 관련한 철학자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저자들의 통찰에 비추어 볼때 저자는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시도보다 세상의 한계와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많이 관찰하려고 했던것 같다. 그러한 점에는 칭찬하고 싶다. 그리고 자끄 엘륄의 글을 많이 인용하는데 그의 글을 보기를 추천한다. 그의 글은 사회를 분석하는 기독교 관점에서 탁월하다.

그러한 점에서 그의 시선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사실 글을 읽으면서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속함이 존재론적으로는 변화함을 알겠는데, 그 존재론적 변화가 우리의 삶에서 어떠한 지표로 살아가야 함을 잘 몰랐는데, 그의 글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사유의 깊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가난한가. 가난하지 않은가를 알 수 있는 지표이다.

우리의 존재의 양식은 공허한가? 형식이 제공되었는가? 그리스도에게 속해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하나의 모델을 좇아가는 삶이 아니라, 새 양식을 그리고 새 모형을, 새아담이신 한분 되신 진리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우리의 존재가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삶은 어디에 속하였는가?

"자기 소속의 약속이 거짓이라는 것과 하나님께 의존 하는 것이 좋은 것임을 밝히는 것이 도시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297)

당신이 삶이 속한 그 속함이 당신을 결정하고 그것이 당신의 정체성이 되고 그 정체성이 당신의 삶을 이끌 것이다.

이 세상의 한계를 알고싶은 사람

우리의 존재에 대해 궁금한 사람

존재론적 양식에 우리의 인생과 삶에 고찰을하고싶은사람

그리스도를 믿는 삶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지금도 삶의 자리에서 고민하며 이리저리 헤메이고 있는 모든 영혼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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