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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보이는 자리: 지친 영혼이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인생 좌표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원마루 옮김 / 비아토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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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어디에?

 

그래도 나이가 조금이라도 더 많다고 한 청년이 상담을 요청해왔다. 그 청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았다. 이대로 사는 것이 맞는가? 지금의 삶에는 만족이 없고, 그렇다고 모험을 하자니, 불확실성의 어둠은 너무나 짙어서 선뜻 내키지 않아 한다. 어쩌면 좋겠냐는 청년의 말에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지지부진한 상담이 끝나고 찝찝한 마음만 남았다.

 

몇 년 후 그 청년을 다시 만났다. 그 청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상하게 다시 상담의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몇 년 나에게 털어놓았던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는 현재의 삶에 만족이 없고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겁이 난다는 이야기를 리플레 이했다. 한편으로는 고구마였지만,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현대 사회에서 청년들은 정상적으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평범하게 대학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는 이런 루틴한 삶이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는 평범한 것이 아니다. 대학 생활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성적에 맞춰 택한 전공공부는 포기한지 오래다. 학자금 대출로 잔뜩 빚을 진채 졸업한다. 금방 취업할 줄 알았지만, 알바를 전전한다. 친구들 모임에는 안간지 오래고 공무원 인강을 지루한 맘으로 의무감으로 듣는다.

 

sns에서 넘쳐나는 성공담중 하나가 될 줄 알았던 나의 삶은 지금을 지탱하기에도 위태위태하다. 나도 의미 있고, 멋진 삶을 살고 싶었지만, 남들 다 사는 정상적인 삶이 이제는 꿈이 된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이라니..희망은 있기나 한 것일까?

 

많은 자기개발서와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과는 결을 달리한 채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는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창립한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손자로서, 그의 삶 역시 만만찮다. 1999년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만다. 50대 말에 비극적 사고를 당한 그가 절망한다고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평화와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평생 전했다. 그에게 있어서 희망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인생이 지옥과 같은 것임을 알고 있다. 대책 없는 낙관적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기도한다고 전신마비가 풀리고, 삶이 나아지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저 너머의 세계로 가면 된다고 이 세계에서 조금만 버티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발견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음을 일깨워 준다.

 

그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독, 절망, 과거에 매임, 성공의 욕망, 중독, 고통 등의 주제로 다루고 있다. 먼 하늘위에서 내려다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큰 아픔과 절망을 겪은 사람답게 아래에서 눈을 맞추며 위로를 전한다. 그러나 단순히 달콤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칼로 찌르듯 아프게, 하지만 직면할 수 있는 묵직한 주제를 던지기도 한다.

 

이 모든 주제를 이야기하며 그가 일관되게 전하는 메시지는 '사랑'이다. 내가 처한 상황만 바라보고, 나만 바라보는 사람은 내 주변에 있는 고독한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옥 같은 삶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시는 그 분의 섭리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수록 스스로 판 덫에 걸린 꼴이 되고 만다.

 

우리의 희망은 사랑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가 모든 것을 던져서 사랑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에서 희망이 시작된다. 사랑할 때 나의 자리에 하나님을 위한 빈 공간을 마련할 수 있고, 타인을 위한 자리를 내 줄 수 있다. 나처럼 외롭고 힘든 이를 위해서 눈물흘리고 함께 있어 줄 때 전능자의 아픔과 사랑을 알 수 있다. 타인을 위한 나의 마음이 흘러갈 때 나의 자리가 보인다. 내가 진정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삶이 보인다. 그리고 진정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지옥 같은 삶속에서 더 높은 자리를 끝없이 욕망하며 살아갈 것인지, 사랑 속에서 자리를 내어주는 희망을 선택할 것인지 말이다. 그럴 시간이 없다며 보이지 않는 길을 달려갈 것인지, 잠시 멈추고 삶의 중요한 질문을 고민할 것인지 그것은 누구도 아닌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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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을 통해 독서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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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믿다, 하다
손성찬 지음 / 죠이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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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게 제대로

 

시원하다. 냉수 한 사발을 들이킨 것 같다. 이런 유의 책들은 제법 나왔지만, 너무 학문적이거나, 기존의 주장을 반복 재생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책은 동네 약수터와 같이 누구나 와서 마시면서 목을 축일 수 있다.

 

청년 시절, 첫 직장에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회식 자리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믿음 좋은 교회 오빠는 전혀 몰랐다. 부장이 주는 한 잔 술을 거절했다가 직장에서 왕따 생활을 자처해야 했다. 청년부 목사님께 고민 상담을 했다. 목사님은 쿨하게 대답해 주셨다. “새벽기도 나와!” 내가 기도하지 않아서 이런 상황에서 흔들린다는 것이 요지였다.

 

아마 대부분의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겪었을 일화이다. 이밖에도 무조건 믿어라!’, ‘신앙은 단순한 거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등등 우리네 기독교의 상황을 보여주는 구호들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우리의 삶과 신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그치게 되었을까? 왜 삶의 여정 속에 길을 찾는 것을 멈추게 되었을까?

 

그 결과 현재 한국 기독교는 역사와 개인의 삶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는 종교가 되어 버렸다. 아니, 답을 주지 못해도 좋다. 적어도 함께 앉아서 고민을 해줘도 좋으련만, 그마저도 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장년들은 그저 해왔던 대로가 답이라고 강변하며, 지쳐버린 젊은이들은 고민이라는 어려운 길을 마다하고 그저 정답만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삐딱하다. 그러나 제대로다. 저자는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하고, 처했을 상황을 뽑아냈다. 읽으면서 ? 내 이야기인데..’ 할 사람 많다. 여기에 슬쩍 딴지를 건다. 그러나 과하지는 않다. 저자는 보수적 성향위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여지를 던져 준다. 한쪽으로 치우지치 않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할 수 있다.

 

이 책은 무척 쉽다. 누구나 술술 읽을 수 있는 친근하고 재미난 문체로 서술한다. 꼭 교회 형이 동생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 같다. 그러나 가볍지만은 않다. 저자의 풍부한 독서와 성경신학적 토대위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저 이건 아니야가 아니라 합리적 근거와 해석을 통해서 고민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직접 겪은 경험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대중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저명한 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어렵게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권위 있는 목사가 내 말만 믿으라고 하지 않는다. 무조건 이것이 맞다라고 하지 않고 자신도 고민했고, 하고 있으며, 같이 생각해 보자고 권하고 있다. 그래서 더 고개가 끄덕여 진다.

 

수 없이 고민하고, 고민했을 저자가 쓴 이 책을 모두에게 적극 추천한다. 특히 청년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독을 강추한다. 우리의 신앙은 주님 오시는 그 날 까지 의심과 확신을 오갈 것이고, 넘어지고, 일어나는 것을 수 없이 반복할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 뵈올 주님 얼굴이 너무나 반가울 것이다. 오늘도 삐딱하게, 그러나 제대로 걸어가고자 하는 이들을 이 책은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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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 나타난 예수, 성령, 하나님
크리스토퍼 라이트 지음, 홍종락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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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페이지 찬송가” -구약에 나타난 예수, 성령 하나님을 읽고

 

이 책은 원래 3권이다. 3권의 책을 한데 묶어 한 권으로 엮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시리즈로 구상하여 저술했다. 만약 3권이 다 출판되지 않았다면, 허전할 뻔 했다. 예수, 성령, 하나님으로 시작하고 마무리 된 것이 옳다.

 

저자는 전문적인 신학 서적으로 이 책을 저술하지 않았지만, 평이한 문체로 진행되고 있지만, 깊은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은혜를 깊이 깊이 파헤쳐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면서, 흥분하게 되면서 읽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지식들로 인하여 삼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신을 발견 한다. 그래서 이 책은 800페이지 찬송가와 같다.

 

3권 모두의 특징으로 저자는 성경 본문에 충실하게 시작한다. 자신의 주장을 먼저 제시하고 본문을 증거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실타래 뽑아내듯이 차곡 차곡 쌓아간다. 구약의 풍부하지만, 비밀스러운 본문들을 공시적, 통시적으로 다시 해석하여 진리를 독자에게 드러낸다.

 

저자의 첫 번째 저서 구약에 나타난 예수에 이런 특성이 제일 잘 드러난다. 저자는 예수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본질과 정신을 꿰뚫어 보신 분으로 묘사한다. 예수는 이런 하나님의 진리를 심화하고, 재해석하여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의 사역과 말씀 속에 나타나는 구약의 정신을 저자는 촘촘히 발견하여 꼼꼼하게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본질을 구체적인 말씀으로 연결시켜 증명하고 있다. 예수가 구약을 통해 하나님을 재발견했듯이, 저자는 예수를 통해 구약의 하나님을 발견한다.

 

두 번째 저서 구약에 나타난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의문을 해결해 준다. 구약에서 성령이라니..이 주제로 그리 할 이야기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독자들의 생각을 저자는 보기 좋게 전복시켜 버린다. 창세기에 나타나는 창조의 영을 바울을 통하여 새창조의 영으로 연결한다. 모세를 통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능력이 무엇이며, 무엇을 구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예레미야를 통하여 정의와 공의의 삶이 예언적 삶임을 알게 해준다. 또한 우리의 삶이 선교적이어야 하며, 종말적 삶임을 구약에 나타나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한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세 번째 저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주제를 제시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사막에서 바늘을 줍듯이 구약의 방대한 본문 속에서 관련 구절을 캐어 낸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죽기 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을 아셨던 분임을 깨닫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예수님이 행하셨던 대로 행하고, 예수님이 사셨던 대로 살아야 하나님을 알게 된다.

 

결국 3부작은 서로 보완하고, 이어주면서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구약을 토대로 신약을 바라보고, 현재를 살아가라고 우리를 등 떠민다. 저자에 의해 보물처럼 밝혀진 이 지식들은 삼위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과 사랑을 깨닫게 해주어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뛰어넘는 하나님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 높여 외치게 된다.

처음과 나중되시며, 온 우주에 가득한 그 분의 신비 앞에 엎드려 노래하자!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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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시인이 온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김순현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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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과 절망사이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에서 주인공 미자 할머니는 시를 배우고자 한다. 자신의 손자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눈앞에 두고도 외면한 채 계속 세상의 아름다움만 보고자 시를 배우려고 한다. 현실을 직면하지 않고, 거짓 아름다움만 보고자 하는 미자 할머니는 시가 써지지 않는다고 한숨을 쉰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세상과 자신을 직면하고, 아픔을 받아들인 후에 한 편의 시를 완성하고, 자신이 시가 된다.

 

월터 브루그만의 마침내 시인이 온다를 읽으며 미자 할머니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저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미자 할머니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축소된 심판과 은혜를 저자는 환원주의라 칭하며, 통렬히 비난한다. 냉정한 심판과 관대한 은혜라는 파괴적인 인식 속에 복음의 진리는 심하게 축소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죄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를 상실하게 만들었고, 이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애달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간단한 은혜로 만들었다.

 

설교자는 이런 축소된 과정을 들춰내고 환원주의로 인해 뻔하게 보이고, 묻혀 있는 진리를 들춰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럴 때 진정한 죄책과 치유를 경험하며, 치유를 맛보게 됨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저자는 두리뭉실하게 표현하여 그 자신도 환원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현실 중에서도 경제적인 측면을 거론하며 우리의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2장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친교를 보여준다. 모두가 동경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신기루와 같은 진정한 친교를 회복해야 한다. 영화 에서 미자 할머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계속해서 겉돈다. 그녀는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그것은 생뚱맞고 이상한 이야기로 들린다. 영화의 말미 손자를 고발하고 난 후 형사와 배드민턴을 치는 그녀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교감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신앙적 언어에 익숙해진 우리는 기쁨과 신앙을 긍정적인 마음과 자신의 만족으로 바꿔버렸다. 하나님이 주도하여 하나님의 담화로 진정한 소통과 경청이 일어나는 친교가 일어나도록 설교자는 열어주어야 한다. 탄식시를 통해서 저자는 설교자가 침묵하는 회중을 깨워야 하고 형식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변화시켜야 함을 보여준다. 고통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신실하시고 보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하는 책무를 설교자는 지녔다.

 

3장은 왜곡된 복종을 회복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저 뻔한 덕목, 혹은 지나치게 두려운 짐이 되어 버린 복종의 참 뜻을 설교자는 일깨워 줘야 한다. 복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청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하는 것이 복종하는 삶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경청을 방해하는 요소로 가득하다.

 

영화 에서 미자 할머니는 다른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꾸 도망가거나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집에 돌아가면 만나는 손자를 통해 비루하고 끔찍한 현실을 맞이하지만, 계속 도망을 간다. 합의금을 줘야 하지만 그녀는 돈이 없다. 이런 현실을 도피하려는 마음 때문인지 그녀는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희생당한 소녀의 사진을 보고,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그녀는 비로소 울음을 터뜨린다. 죄와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픔을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경청하지 못하는 영화 속보다 더 영화 같은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저자는 경제적 불균형 속에 곤경을 당하면서 탐욕을 부리기에 하나님께 경청하지 못하는 우리임을 알게 한다.

 

설교자는 이 불균형을 깨뜨려 경청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삶임을 알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종은 새로운 상상력을 일으켜 우리의 현실 세계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 같은 해석은 설교자의 역할임을 저자는 천명한다.

 

마지막 4장에서 저자는 자유에 관해 이야기 한다. 다니엘서를 예로 들면서 설교자는 이런 세상에서 불순응의 삶이 아닌 대안적 정체성을 가지고 자유와 힘과 용기를 일깨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대안적 자유를 설교자는 시로 노래야 함을 말한다.

 

미자 할머니가 느꼈던 시의 아름다움과 현실의 절망을 이 책을 통해서 나 역시 통렬히 경험한다. 진정한 용서, 친교, 복종, 자유를 하나님은 보여 주시지만, 뻔한 종교적 언어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설교자는 이것을 다시 들춰내어 이 놀라운 보석 같은 진리를 보여줘야 한다. 이런 놀랍고도 절망스러운 책무를 설교자가 해야 한다. 그래서 설교자는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시가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설교자는 시인이 되어 노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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