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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리커버 에디션) -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미국 소도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횡단기는 1989년 출간된 책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간된 책이었다. 몇 년 전 누군가의 추천책 중에 빌 브라이슨의 책이 있는 걸 보고 이 작가에 대해 알게되었다. 리뷰를 찾아보니 재밌다는 평이 많아서 언젠가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은 해두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여행책은 거의 읽어보질 않아서 이 책을 제외하면 2권 정도 읽은 게 다다. 여행을 못 가는 대신 대리만족을 하려고 읽었었는데 그 지역의 풍경에 대한 감상이나 음식, 문화, 교통 편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 언젠가 여행을 가게 된다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달까. 하지만 빌 브라이슨의 책은 일단 출간된 지 오래되기도 했고, 빌이 여행을 하면서 겪은 경험들을 꼭 일기+소설처럼 써서 이전에 읽은 여행책보다 재미있었지만 여행정보를 얻기엔 부적합해 보였다.
빌은 아이오와 주 디모인 출신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동네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 햄버거를 먹거나 기름을 넣으려고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왔다가 퍼질러 앉는 곳. 그의 글은 시작부터 꽤나 신랄했는데 그게 불쾌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무척 유쾌해서 책을 읽으면서 나를 빵빵 터지게 했다. 약간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어째서 빌 브라이슨의 여행책이 출간된 지 오래됐는데도 아직도 추천책으로 인기를 끄는지 알 것 같았다. 내 스트레스 해소 방법중에 하나가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재미있는 책을 읽는건데 울적하고 힘들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위트있는 책 한권을 또 찾아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무례한 사람이나 상황들을 그는 유쾌하게 풀어냈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분노해 무례한 말을 쏟아내고 늘 고주망태의 상태로 전신주를 들이받은 옆집의 파이퍼 옹. 휴가 때면 가족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면서 경제적인 부분에 집착해 제일 싸구려 숙소와 싸구려 식당에 데려갔던 아버지. 소풍 장소를 고를 때 공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찢어지게 가난한 빈민가의 한가운데여서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 아이들이 몰려와 식탁 옆에서 지켜봤던 것. 그 상황들이 어쩌면 짜증나거나 싫었을 텐데 그는 아버지가 휴가 때면 경제성에 집착하는 편집증 환자로 돌변한다고 표현했다. 게다가 나쁜 소풍 장소를 고르는데 탁월한 본능을 타고났다고.ㅋㅋㅋ
그는 미국의 동부에서 시작해 서부까지 여행을 했는데 그의 여행기는 정말 재미있긴 했지만 중간중간 미국의 문화를 모르는 나로써는 알아듣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검색해보면 되겠지만 일일히 읽으면서 검색하기 귀찮아서 그냥 넘겼다.
지붕위에 올라가 먼곳을 바라봐도 넓게 펼쳐진 옥수수 밭만 보이는 건 어떤 느낌일까. 가도가도 똑같은 풍경만 보이는 긴 도로를 끝없이 달리는 기분은? 고속도로 표지판에 '환영합니다. 우리는 아무나 쏴 죽입니다.' 라고 써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미시시피. 지루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전장처럼 황량하고 위험해 보이는 필라델피아. 뉴욕에 가본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뉴욕이란 곳이 죽이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할 정도로 위험한 도시였나? 미국 최고의 유제품 생산 주인 위스콘신.
지금은 20년이 지났으니 책에 나온 지역들이 얼마나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동안 봤던 미드와 영화를 생각하며 저자가 말하는 미국 지역들의 풍경을 열심히 상상해봤다. 사람도 없고 주변에 가게도 없는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만 보이는 도로를 혼자 차를 몰고 간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두려움이 먼저 들었다. 허허벌판의 도로 한가운데서 갑자기 차라도 고장 나면? 설상가상으로 휴대폰까지 먹통이면? 음... 재난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넓게 펼쳐진 밀밭의 아름다움보단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바다에서 둥둥 떠다닐 때도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만 놀던 사람인지라 자연은 아름답지만 옆에 사람이 없으면 두려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종종 살인률이 높은 위험한 지역들도 지나는 데 미국처럼 땅이 넓은 곳에서 친구도 없이 혼자 여행하려면 정말이지 더더욱 용기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저자의 책을 보면서 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겠다 싶은 지역이 생겼다. 그랜드캐니언.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에 가서 숨이 턱 막힌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 느껴보고 싶어졌다. 잠을 자거나 티비를 볼때 빼고는 입을 쉬지 않았다던 7살의 빌을 침묵하게 만들었던 곳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멋진 곳일지 너무너무 기대가 된달까.
정말이지 번역본이 이렇게 재미있으면 원본은 얼마나 잘 썼다는 걸까. 진지해질만하면 뒤통수를 팍 때리는 글 솜씨라니. 재치 있다는 건 이런 글을 두고 말하는 거겠지. 빌 브라이슨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작가'라는 별명을 얻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필력은 그림 하나 없이 빽빽하게 글씨로만 채워진 400페이지 남짓의 책이 전혀 두껍게 느껴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유쾌한 여행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물론 20년 전 출간이라는 건 감안하시고...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