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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평점 :

몽족은 라오스 출신의 고산민족으로 베트남 전쟁 이후 1970년대 부터 미국에서 살고있는 난민이다. '리아의 나라'는 뇌전증을 앓는 몽족 아이의 이민자 가족과 미국 의료 체계의 넘을 수 없는 골을 예리한 시선으로 담아낸 책으로 1997년 출간 되었다. 무려 저자가 9년간 취재하며 썼다는 이 책은 출간된지 20년 후 미국의 많은 의과대학에서 교재로도 쓰이고 있다.
나오 카오 리와 푸아 양 부부는 그들의 14번째 아이인 리아를 캘리포니아의 공립 병원에서 낳는다. 리아가 3개월이 되던 때, 언니인 여가 아파트 현관문을 쾅 닫은 일이 있었는데 잠시 뒤 리아는 눈이 위로 말려 올라가며 기절한다.
리 부부는 이것을 문소리에 놀란 혼이 리아의 몸을 떠난 거라고 여겼다. 그로 인한 증상을 '코 다 페이'라고 했는데 우리에게는 뇌전증이라고 알려진 병이다. 몽족은 이 병에 양면적 태도를 갖고 있는데 한 편에서는 이 병을 아주 심각하게 보지만 한편에서는 몽족의 샤먼인 치넹이 될 수 있는 존재로 선택받았다는 증거로 보았다. 리 부부 또한 리아가 낫길 바라는 한편 리아의 병을 축복으로 여기기도 했다.
리아는 계속해서 발작 증세를 보였고 리아의 부모는 약을 먹이길 꺼렸다. 닐과 페기는 모두가 인정하는 그 지역 최고의 소아과 의사였음에도 리아의 엄마는 약 복용량을 바꿔달라고 하는 등 자신들이 보기에 옳은 것을 거침없이 주장했다. 결국 리아는 3개월간 약을 끊었고, 리아는 그녀가 겪은 중 최악의 뇌전증 지속상태를 겪게 된다. 그때 리아를 담당했던 댄은 다행히 호흡관을 잘 밀어넣어 리아를 살렸는데 리아의 부모는 오히려 리아의 상태를 보고 얹짢은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리 부부는 어떤 약이 효과가 좋다고 느껴지면 임의로 두배로 먹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리 부부가 리아를 사랑하지 않은 건 결코 아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는 뇌전증이라는 병을 아주 심각하게 보고 치료해야 할 것으로 보지만, 리 부부는 뇌전증이라는 병 자체보다도 치료 과정을 심각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인류학자 조지 m. 스콧 주니어는 라오스에서는 다음과 같다고 썼다.
아이들은 대개 사랑을 아주 많이 받는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기형인 아이들은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것은 기형이 유산이나 사산처럼 부모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서 비롯된 것으로, 따라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인내하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믿음이 꽤 크기 때문이다.
리아는 결국 식물인간이 되었지만 리 부부는 그 누구보다도 사랑과 정성으로 리아를 보살핀다. 보통 식물인간이 되면 몸을 씻어도 냄새가 나기 쉽고 삐쩍 마르기 쉬운데, 리아는 항상 좋은 냄새가 나고, 피부에서 윤기가 날 정도였다고. 리 부부에게 리아의 뇌전증도 리아의 장애도 그들이 리아를 더욱더 사랑해야 할 이유였지 리아를 시설에 보내거나 버릴 이유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리아의 병을 심각하게 여기고 어떻게든 치료하려 노력한 의료진들과 리아의 병을 당연히 감당해야 할 것들로 받아들인 리아의 부모. 리아가 의료진의 치료대로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면 상태가 많이 호전 되었을지 아니면 지금과 같았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두 리아가 건강하길 원했고 리아를 위했다. 무엇보다 의료진의 처방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던 리아의 부모는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리아를 사랑했다. 완벽하게 통역이 되었다고 한들 이런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불통의 벽을 깨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화병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화병에 걸렸다고 하면 어떤 병인지 자연스레 이해하지만 과연 외국의 의사들에게 화병에 대해 얘기하면 이해할까? 리 부부가 미국 의료진의 치료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는 걸 뭐라 할 수도 없는 게 미국 의사가 화병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처방을 내린다면 우리는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어서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답답하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의사가 답답할거다. 생활방식,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문화의 차이를 어떻게 좁혀나가야 할지 제 3자의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