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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갈등 - 분노와 증오의 블랙홀에서 살아남는 법
아만다 리플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9월
평점 :

아만다 리플리는 뉴욕, 워싱턴, 파리 등에서 '타임'지 기자로 활동하면서 최고의 언론인들에게 수여되는 '내셔널 매거진 어워드'를 두 차례나 수상했다. 그는 <극한 갈등>에서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반복하는가?' 라는 질문을 끊질기게 제기한다.
'고도갈등'은 건전한 갈등과는 다르다. 건전한 갈등은 자신을 보호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현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다 함께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고도갈등은 상대와 나를 뚜렷이 나누어 상대를 악, 나를 선의 위치에 둔다. 온라인이든 실제로든 그들을 만나게 되면 일단 두려움과 분노가 밀려온다. 아이러니한 건 세계 어느 곳을 살펴봐도 고도갈등에 빠진 사람들은 상대방이 먼저 공격해왔기 때문에 대응한 것 뿐이라고 불평한다는 사실이다.
일부러 주변인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걸 즐기고, 타인과 끊임없는 긴장관계 속에서 사는 걸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왜 계속해서 이런 갈등을 일으키고, 건전한 갈등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극한갈등에서는 다양한 예시를 통해 갈등이 조용히 증폭되어 가는 과정과 갈등이 폭발하는 과정 그리고 상대방을 괴물로 만들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증거를 살펴볼 수 있었다.
개인, 마을, 나아가 국가가 나서서 많은 사람들이 고도갈등에서 벗어날 길을 마련한다면 어떨까? 지난 수십년간 수많은 나라가 이 길을 찾으려고 애썼고 이 실험의 명칭은 무장해제, 재통합 등으로 불린다. 무기를 폐기한 뒤 그 사람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갖출 수 있도록 돈과 정치권력, 교육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얼마 전까지 테러리스트, 반역자라고 부르며 납치, 폭파, 강간, 마약 밀매, 소년병 모집 등의 책임을 물었던 적이었던 이들에게 말이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에서 보면 저 명칭을 단 이들은 가해자로 분류될테니까. 게다가 모든 실험이 성공적이지도 않았다. 시에라리온에서 시행한 재통합 과정에서는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한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사회에 복귀한 정도가 똑같았다. 하지만 콜롬비아처럼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준 나라도 있었다. 콜롬비아는 77년이 넘게 국가와 게릴라군 사이에 벌어진 내전으로 수십만명이 사망했다. 수십년간 부패와 마약 밀매로 혼란을 겪으면서 외려 그 덕분에 사람들을 고도갈등에서 건져내는 경험을 축적해왔다.
2016년 정부가 오래된 게릴라 집단인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불안한 평화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이미 평화조약이 체결되기 전부터 게릴라에 몸담았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갈등을 벗어났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이전으로 돌아간 이들은 없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평화 협정은 정치가와 범죄자들 사이에서 언제 깨질지 모를 위기에 놓여있지만, 오늘날 콜롬비아는 재통합 프로그램을 통해 게릴라 출신 한명당 전 세계의 유사 프로그램의 평균과 비교해도 네배가 넘는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어떠한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면 이런 지원이 이루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고도갈등은 실제보다 과장된다. 극단적이거나, 폭력적인 언어로 갈등을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유례없는 압승. 때려부수다. 무소불위의 억압. 처럼 모든 것이 더 크게 부풀려져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또 갈등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극단적인 양자 구도만 형성된다. 실질적인 견해 차이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리고 갈등 그 자체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고도갈등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가 이다.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길 원하는지 벗어나길 원하는지. 어쩌면 고도갈등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 방법으로 인해 나와 사랑하는 이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목록을 작성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건전한 갈등은 꼭 필요하다. 갈등 없이 살겠다는 것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이 갈등이 심해져서 고도갈등으로 발전한다면 모든 걸 태워버리고 말 것이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책의 부록에서는 내가 고도갈등에 빠져있는지 체크해볼 수 있는 11개의 질문이 있어서 테스트 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도갈등을 예방하는 법 5가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읽다보면 어떤 사례는 그 갈등의 예시로 적절한지 알쏭달쏭 할 때도 있었지만, 갈등 그 자체를 위한 갈등, 선과 악의 구도에서 벗어나 건전한 갈등을 이루며 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이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