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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평점 :

사실 조선시대 하면 떠오르는 게 부정부패와 나라를 갉아먹는 신분제 등등 힘든 민생의 모습들이 떠올라서 그런지 조선시대에 그럴듯한 복지가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읽고보니 내가 정말 좁은 시각으로 조선시대를 보고 있었구나 싶었다.
조선사회를 지탱했던 핵심 개념은 민본주의였다. 민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민주주의의 권력은 시민의 합의로부터 나오지만 민본주의에서는 천심과 민심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의 복지 정책은 사실 복지보다는 시혜에 가까웠다. 신분제가 존재했고 왕과 양반이 지배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그 시대의 한계였겠지만. 어찌됐든 지배층은 굶어죽는 백성이 없게 하기 위해 그 당시 기준으로 혁신적인 정책들을 내놨지만 부정부패로 인해 실효성은 많이 떨어졌던 것 같다.
천재지변이나 기근같은 재난상황에도 곡식을 풀었고, 환곡을 통해 춘궁기의 백성들이 굶어죽는 걸 막아보려 했고, 절이나 관청에서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무료 급식까지 하면서 다양한 복지를 시도했다. 이 뿐만 아니라 버려진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아동복지부터 노인복지, 여성복지, 장애인복지, 노비복지까지 존재했다.
신분제가 존재했던 상황인지라 10세가 넘어서도 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 양육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노비로 삼는 것을 허락한다는 게 참 씁쓸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인데 숨겨놓고 노비로 키웠다거나, 남의 집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거나 해서 아이가 성장한 후 친권 또는 노비소유권을 두고 소송도 적잖게 벌어졌다고 한다. 아동복지정책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보완되었고, 특히 정조는 아동복지 정책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놀라웠던 건 서울과 달리 지방에서는 유기아가 발생하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고 하는데 이는 유랑민 문제와 맞닿아 있다. 흉년이 들면 식량이 떨어진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서울에 몰려들었다가 부모가 죽거나 잃어버리거나 여러 사정으로 유기아가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가 잘 유지된 지방에서는 유기아 자체가 드물었을 뿐더러, 유기아가 발생해도 마을이나 사찰에서 기르는 게 오래된 국룰이었다.
백일의 낭군님이라는 드라마는 안봐서 몰랐는데 여기서 나오는 국가 주도 혼인 사업도 조선시대의 복지였던 거다. 결혼 지원 복지라니. 조선시대가 가족이 복지의 주요 공급자가 되는, 복지의 1차적 책임은 가족 중심의 경제 공동체에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었고, 또 홀로 사는 여성의 사회, 경제적 자립은 조선의 체제를 강력하게 뒤흔들 수 있는 리스크였다. 조선 공동체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가족이었으니까. 해서 여성의 복지라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노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니라 보호 대상으로 편입하는 것이었다.
사실 조선시대의 복지를 살펴보는 책이라는 점에서 좀 딱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예시를 들어주며 복지정책들을 설명해서 그런지 재미있게 읽었다. 비록 조선의 복지정책은 여러 문제가 있었고, 시대·환경·경제 등의 차이로 그 시대의 복지정책을 지금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적어도 제도가 불공정하게 운용됐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제도의 불공정성이 개선되지 않았을 때 어떤 문제가 초래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의 복지를 단순하게 실패로만 보기보단 그들의 사례를 통해 어떻게 그 실패의 요인을 제거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 서평은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