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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 편지 왔습니다, 조선에서!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0년 8월
평점 :
내게 손으로 쓴 편지라는 건 지금은 쓰지 않지만 어쩐지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물건이다. 적어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나도 편지를 쓰고 받고 했었으니까. 사실 역사를 잘 아는 편은 아니라서 수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은 우리나라에서 편지같은 것들이 지금까지 잘 전해져 내려오진 못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었다. 그런데 웬걸. 조선시대 사람들의 편지가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게 있다니 너무 궁금해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물론 조선시대에 글을 아는게 아무래도 양반가 사람들이었다 보니 편지의 주인은 아무래도 양반가 사람들로 국한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노비나 평민들이 글을 알았다면 더 재미있는 편지들을 많이 볼 수 있었을거라 생각하니 그 시대의 문맹률이 어쩐지 아쉬워지지만 각계각층 양반가 사람들의 편지만으로 유추해볼 수 있는 그 시대의 상황이나 문제들도 많더라. 신기했던 건 시대가 달라도 사람들은 고민거리는 거진 비슷비슷했다는 것이다.
시댁 문제, 돈 문제, 자식 문제, 직장 문제, 애정 문제까지. 퇴계이황은 아들에게 과거에 못 붙으면 꼼짝없이 군대로 끌려간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으며 연암 박지원은 아들을 위해 고추장을 손수 담가 보내고 맛있는지 맛없는지 답장이 없는 아들에게 무심하다 하는 편지를 보냈다. 천재라고 불렸던 아버지들을 둔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매번 그런 편지를 받았으면 나름 스트레스가 컸겠구나 싶었다.
다양한 편지들에서 공통적인 건 역시 생활에 따른 돈 문제였는데 부부간이나 부모자식간에 주고 받는 편지에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가 많더라. 시대불문하고 사람에게 있어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또 효종과 인선왕후가 딸 숙명공주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왕과 왕비도 자식한테는 그냥 부모였구나 싶었다. 숙명공주는 순한 성정이었는지 효종의 편지를 보면 가만히 있으면 다 뺏기니까 악다구니를 써서라도 네 몫을 꼭 챙기라는 당부와 시댁의 일로 궁에 오지 못한 딸에게 사위의 이름을 심철동이라는 아명으로 부르며 그 인간을 들들 볶아서 싸우기라도 하라는 당부가 적혀있다. 게다가 숙명공주는 고양이를 좋아한 집사였는지 인선왕후가 보낸 편지를 보면 네 동생은 벌써 임신해서 수다를 떠는데 너는 아직도 고양이만 끼고 사냐는 잔소리가 담겨 있기도 하다. 어째 300년전 왕실가족의 대화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편지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사를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편지 중간중간에 첨부된 저자의 설명도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 입문서를 찾는다면 이 책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