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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 손가락 ㅣ 열린어린이 창작동화 8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열린어린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손가락 빨갛게 달아 오르고 있거든, 조심해” 이 책을 읽고 우리 집 애들이 떠드는 소리다. 마치 이 책 주인공처럼 손가락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위협(?)하는 모습은 귀엽기도 하지만 우습기도 하다. 책 전체가 애니메이션처럼 살아 있어 이 책을 읽은 여운이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남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내'가 화가 날 때는 손가락에서 요술 광선이 나온다. 그 광선은 오리를 사냥하는 그레그씨 가족을 오리로 변하게도 하고 아이들을 함부로 야단치는 선생님을 고양이 얼굴로 만들어 버린다. 어른들은 이 책의 내용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꼼꼼히 읽어 본다면 우리 어른들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들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 책이 그렇지만 이야기의 비현실성이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책을 보면서 아이들의 비현실적인 현실 감각을 비웃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단순한 생각이다. 이 책의 주인공을 흉내내는 이제 초등 2학년인 우리 딸아이에게 "이 책의 내용은 거짓말이야. 사람은 이런 요술을 부릴 수 없어“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듣고 딸아이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그건 나도 알아. 아마 이 책을 읽은 모든 아이들은 다 알 걸, 우린 재미있어서 이렇게 노는 거야“ 라고 답했다. 이 대답을 듣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듯 비현실적인게 아니라 오히려 어른들 보다 현실 적일 수 도 있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설적으로 비현실적인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현실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욕망을 구체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현실적인 욕망은 그들의 이런 비현실적인 놀이를 통해 더 강화된다. 그레그 씨가족이 불쌍한 오리를 총으로 사냥할 때 아이들은 그 불합리함을 극복하는 이 책의 내용(비현실적인 내용)에 공감하면서 오리가 보호받아야 한다는 현실을 절실히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주인공의 손가락이 작동하는 원리는 분노할 때이다. 분노는 일반적인 어른들에게는 금기시되는 감정이다. 어른들에게 분노는 폭력이나 불행과 가까운 것 같다. 한데 이 책의 주인공은 분노를 정반대로 사용한다. 오히려 주인공의 분노의 손가락은 폭언이나 폭력을 끊고, 사냥 등의 죽음을 막으니 말이다. 분노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어른들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상담 심리학에선 분노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안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분노를 무조적 억압해야하는 본성으로 다루지 않는다. 분노는 인간의 중요한 본성이고 이 본성과 인간은 더불어 살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모든 본성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통제하고 조절하는지가 중요한 심리학의 주제로 취급받고 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겐 너무나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흥미위주의 책만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 요소 이외에도 아이들과 같이 대화할 많은 중요한 주제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