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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엄연히 서열이이 존재한다.
그것은, 어른들의 세계보다 더 명확하고 확실하게 갈린다. 좀더 원시적인 방법으로.
그 정점에 서있었던 빌리 포.
풋볼 선수에 키도 크고 미남이기 까지 하다. 자연히 여자들에게 인기 만점이고 아이들이 우러러 보는 존재다.
반면에 천재로 불리울 만큼 똑똑한 아이작 잉글리시는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을 가진, 겁이 많은 아이다. 모범생이자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할 타입, 그 전형이랄까.
어울릴것 같지 않은 이 둘은 둘도 없는 친구다. 포는 다른 아이들이 아이작을 찝쩍거리지 못하도록 막아주고 아이작은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보통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작고 왜소하면서 공부만 하는 애들은 포같은 녀석에게 괴롭힘의 대상이거나 아니면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내 학창시절에도 이런 법칙은 거의 틀리는 법이 없었다. 아이작도 포가 왜 자신의 친구가 되어줬는지 의문이다. 둘의 우정은 고교를 졸업하고도 계속 이어진다.
마을을 떠나려던 아이작과 배웅해 주려던 포. 갑자기 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해 들어간 폐공장에서, 예상치 못한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질나쁜 세명의 부랑자들과 마주치자 아이작은 자리를 피하지만, 포는 그들과 시비가 붙는다. 칼로 위협당한 포를 구한것은 돌아온 아이작이 던진 강철 베어링. 2미터가 넘는 거한을 죽이게 된 아이작.
마을의 경찰 서장이자 포의 어머니 그레이스를 사랑하는 해리스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포의 풋볼점퍼를 몰래 숨긴다. 사건현장을 다시 찾은 둘을 발견한 해리스는 포의 짓이라고 생각한다. 165의 샌님 아이작이 2미터 가까이 되는 부랑자를 죽였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의심을 받는 것은 자연 포이다. 포는 살인범으로 몰려 구속되지만, 굳게 입을 다문다.
한때는 아메리칸드림을 대표하는 부유한 도시였던 부엘은 미국 철강산업의 몰락과 함께 잊혀진 공업도시가 되었다. 젊은이들은 졸업을 하면 마을을 떠나고, 한때 받던 임금의 절반도 받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은 근근히 삶을 연명해 간다. 그런 환경속에서도 각각 다른쪽으로 기대를 받던 아이작과 포는 기대와는 달리 마을에 눌러앉아있다.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부담스러워 대학의 스카웃 제의를 거부한 채, 직장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포. 어머니와 트레일러에 살면서 방황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언제든 원할때 대학으로 갈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는다. 다혈질에 난봉꾼인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를 닮아가고 있고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아버지의 사고에 이은 어머니의 자살로 큰 충격에 휩싸인 아이작, 예일대에 합격한 누나는 마을을 떠나서 부유한집 자제와 결혼을 한 상태다. 우수한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돌보던 아이작은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포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온것이다. 그리고, 사건에 휘말려 버렸다.

둘은 묘한 관계이다. 얼음이 꽁꽁언 강에 빠져 죽을뻔한 아이작을 포는 목숨을 걸고 구해준 적이 있다.
그렇다면 포는 왜 샌님 아이작을 목숨을 걸고 구했을까? 구속당한 상황에서도 왜 입을 굳게 다무는가? 그정도로 둘의 우정은 탄탄한것인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로? 왜 포는 아이작을 위해 희생할 정도로 그와의 우정을 지키는 것일까? 똑똑하지만 작고 볼품없는, 따돌림이나 당할 찐따를 포는 왜 그토록 좋아하는 것일까?
교내 스포츠 스타로 각광받는 그이지만, 공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콤플렉스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근방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작은, 그것을 충분할 정도로 가지고 있다.
또한 둘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를 자부한다. 그 자부심이 서로를 가름할만한 상대로 여져졌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포는 아이작의 누나인 리를 사랑했다. 리의 동생인 아이작을 돌보며 리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이 크게 더해져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촉망을 받았다는 점, 졸업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며 방황하는 점, 어느정도 이런것들이 스스로의 콤플렉스로 인한 자발성을 띄고 있다는 점. 각자의 열악한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젊은이들이 제각각의 길을 찾아 떠나는 마을을 각자의 이유로 지키고 있다는 점이 둘을 끈끈하게 연결시켜주는 것일테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던가?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포와 아이작은 우리나라 젊음들이 주인공들의 연배에서 흔히 보이는 신파적이고 감상적인 우정과는 다른, 그야말로 아메리칸 스타일로 쿨한 우정을 보이며 이 말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것 같다.
하지만 단지 이 소설이 두 소년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젊음의 방황을 읽는다. 그 방황은 젊음 특유의 방황이다.
젊음은 왜 방황하는가?
젊기에 가능성이 많지만 같은 이유로 불안하니까.
몰락해 가는 시대를 바꾸는 것은 젊음이 할일이다. 기존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를 그대로 가지고 가기엔 세상은 너무나 달라져 간다. 불합리하고 특정인들의 이권에만 치우쳐있다. 하지만 남아있는 마을사람들로 대변되는 기존의 사람들은 예전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기존의 것들을 지키기를 고집하며, 그것을 젊음에게 까지 강요한다. 젊음은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 사이에 방황하고 그러기에 불안하다. 하지만 결국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길은 위험하다. 그 위험은 불확실성이다. 그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젊음을 주춤거리게 하고 방황하게 하고, 때로는 외면하게 한다. 이때 기존의 사람들은 말한다.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다. 이대로 가야만 한다' 고.
하지만 바꿔야 한다. 기존의 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것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지켜나가려고 할것이고 그대로 나두면 우리의 것은 없다. 바꾸는 것은 젊음이 할일이고 젊음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