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야기의 힘 -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
이창용 외 지음 / 황금물고기 / 2011년 9월
평점 :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라도 누가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좋아하고 관심있는 과목의 수업시간에는 이야기가 쏙쏙 머리에 들어오면서 시간이 빨리 흐름을 느끼는데, 반대의 경우는 시계가 멈춰버린듯 하품을 동반한 피곤함이 몰려온다. 관심있는 과목이라도 누가 강의를 하냐에 따라 다르다. 전자의 경우가 훨씬 재미도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으며 시간도 빨리 간다는 것은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중학교때 국어선생님은 야한 농담과 자신의 경험을 섞어가면서 재미있게 수업을 했는데, 학생들의 성적도 잘나오는 편이었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지루했던 이야기는 군대에서 받곤 하는 정신교육이다. 이것이 곤욕인 이유는 재미없고 딱딱한 내용은 물론 있을법하지 않으며 세뇌에 가까운 형식적인 이야기를 지루하게 쏟아내는것 이외에도, 결코 졸아선 안된다는데 있다. 짬밥이 안될수록 앞자리에 앉게 되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하곤 하는 대대장의 정신교육은 정말로 온 정신을 가다듬어 적군이 아닌 졸음과 싸워야 갈굼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배울필요도 없이 시간의 상대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었던 정신교육은 유격훈련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반면에 예비군 훈련에서는 이시간에 대해서 훨씬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마음껏 대놓고 잘수 있다는 점만 바뀌었을 뿐인데.
T.K 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며 뼛속까지 자리잡은 지역감정을 처음 느낀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김대중 후보와 김영삼 노태우 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선거운동을 벌이던 시기였는데, 나를 제외하곤 담임을 비롯 모든 아이들은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멋모르는 어린 아이들에게조차 영향을 끼친 지역감정의 시발점은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박정희가 자신의 출신지역인 경상도를 확실한 표밭으로 만들기 위해서 신라시대의 이야기까지 거론하며 지역감정스토리를 창조해낸 것이다. 삼선개헌 이전까진 전라도에서도 박정희가 가장많은 득표를 했었으며, 반대로 71년 대선당시 박정희의 삼선을 위한 본격적인 지역감정 조장전, 경상도에서 김대중 후보가 높은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다. 좁은 나라에서 왜 지역감정이 이토록 뿌리깊을까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이책을 읽고 나니 '이야기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물론 부정적으로.

세기의 악당 아돌프 히틀러도 이야기의 힘을 부정적으로 잘 활용한 인물이다. 아리아 민족의 우월성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 독일국민들에게 각인 시키며 높은 지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끈 그의 지지율이 90%를 넘어 100%에 가까울 때가 있었다니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다수의 선택은 시민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조카를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시키는가 하면, 누구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를 하기도 하고, 집없는 사람들에게 공급할 임대주택건설을 반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원인에는 이야기의 힘이 있지 않을까?
이야기의 힘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톰아저씨의 오두막집으로 번역되어 있는 스토우 부인의 '엉클톰스케빈'은 링컨으로 하여금 노예해방운동을 결심하게 했다. 이책에선 나오지 않는 이야기지만, 미국 도살장의 비위생적인 환경과 노동자들의 현실을 폭로한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은 루즈벨트 대통령으로 하여금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식품의약품 위생법및 육류검역법 제정을 밀고 나가게 만들었던 사례도 있다.
게다가 지금 불고 있는 '도가니' 열풍도 이야기의 힘을 증명하는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3부작 다큐멘터리로 먼저 제작된바 있는 이 책은, 재미있는 이야기의 조건, 이야기로 세상을 움직인 이야기, 이야기(스토리텔링)가 비지니스에 접목되어 성공한 사례등을 재미있게 설명한다. 그저 단순히 졸음이 오게 하느냐 오지 않게 하느냐의 차이라거나 재미를 주는 원동력이라고만 생각했던 이야기가 세상에서 이토록 큰 힘을 발휘해오고 있었다니 놀랍다. 생각해보면 그런 사례는 인식하지 못했을 뿐, 우리의 주변에서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같이 놀러갔다온 친구가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웃고 즐거워 하는 반면에, 내가 이야기 하면 썰렁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경험이 없는가? 같은 이야기라도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 그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 이 책에서 나오는 스토리텔링 기법들을 잘만 활용한다면 실생활에도 유용하게 쓰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