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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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책읽는 밤'이란 TV프로를 보게 되었다. 늦은 저녁 무언가를 먹을 때만 주로 켜는 TV를 틀고 야식을 먹으며 한 주부로 추정되는 여성이 나오는 것을 별 생각 없이 보게 되었다. 주부생활을 하다가 무슨 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소설가로 변신한 둥그런 눈매와 얼굴이 선하고 차분한 인상을 주는 여성은, 자신이 내놓은 신간에 대해서 출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는 소설보다도 패널로 출연한 프리랜서 기자 이어영의 또렷한 목소리와 예쁜 얼굴을 쳐다보는데 정신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난 후 누군가를 문병 갔을때, '너는 모른다'라는 소설이 놓여져 있었다.

 

"어~ 이거 정이현 소설이잖아?"

  읽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아는 척을 했다. 환자는 문병온 친구가 재미있다며 두고 간 책인데, 생견 책을 읽지 않아서 잘 읽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도 몇 달이 더 지난후,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방문한 도서관에서 더 빌릴 것 없나 한바퀴 둘러보던 중에 발견한 '달콤한 나의 도시' 이 제목 역시 기억하는 것은 이어영기자가 언급할 때 예쁜 미소를 지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나름 오래된 인연끝에 만나게 된 정이현의 소설은 얼마전에 읽은 고예나의 '클릭미'처럼 도시속에서 살아가는 미혼 여성들의 이야기다. 클릭미의 '연희'가 20대라면 달콤한 나의 도시의 '은수'는 30대다.

 




 

 

 

  삼십대, 내 또래 미혼 여성의 이야기를 읽는 다는 것은 지겹도록 들은 30대 미혼남의 이야기보다 신선하고 재미있다. 복잡하고 골아픈 여성들의 생각을 훔쳐보는 듯한 재미도 있고.

  몇년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지금의 감성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젊음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삼십대라는 남녀 모두 결혼과 직장의 문제로 갈등하는 공통점이 있다. 부풀은 꿈을 안고 사회에 나와 좌절도 해보고 도전도 해보았지만 사회라는 높은 장벽에 개인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서른 다섯의 사춘기'같은, 서른 운운하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것은 우리세대의 인구가 많아 수요가 많기 때문이 첫째요, 서른이 되어서도 방황이 계속, 아니 더욱 심화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30대 미혼여성 은수와 유희는 재인의 결혼소식에 충격을 받는다. 모두 떠나보내도 셋만은 항상 같은 자리에 친구로 남아 서로를 안주삼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그들에게 재인은 배신자가 되버린다. 마침 전 남자친구의 결혼식날 위로를 받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그런 소식을 들은 은수는 홧김에 연락처만 알던 남자에게 연락을 한다. 그남자의 모임에 꿔다놓은 보릿자루 처럼 앉아 있으며 자신이 질투유발에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더 비참한 기분에 빠지지만, 마찬가지 신세인 연하남 태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말로만 들었던 '원나잇 스텐드'를 경험하게 되는데.

  하지만 하룻밤에 끝날 인연은 아니었는지 둘은 계속 만나게 된다. 비록 동지들은 많지만 어쩔 수 없이 '노' 라는 타이틀이 붙여지게 되는 처녀 은수는 직장상사가 소개시켜준 평범남 '영수'와 착하고 끌리지만 어리고 비전이 없는 '태오'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리고 동거하던 태오와 사이가 멀어지게 되자 곧바로 영수와 만나게 된다. 아버지 세대나 조신한 사람이 보면  ㅉ과 ㄲ자를 연달아 발음하며 혀를 찰지도 모른다. 허나 나는 왜 이해가 되는거지? 비슷한 연배라서 그런것인지 직,간접 체험이 얽힌것인지 우리세대의 또래라면 나처럼 이해가 될것이다.

 

 

  10대때 방황을 했지만 30대에서도 할지는 몰랐다. 주인공도 아마 그랬으리라. 30이라는 나이가 되기전 그것은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나 미지의 세계처럼 멀게 느껴졌다. 30이라는 나이가 되면 '아'자가 붙게되는 완벽한 어른의 위치가 되어있을줄 알았다. 허나 막상 되어보니 그렇지 않다. 좋은것인지 나쁜것인지, 소설속 인물들과 나는 이 부분에서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고 싶었던 10대에서 벗어나 20대를 넘어서니 이제 어른이 되었다며 행세 했었다. 술집에서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면 '저 나이 많아요' 라고 말한적도 있다. 입버릇처럼 '이나이에~', '나도 이제 꺾였지~' 등의 말을 농담조가 아닌 진심을 담아 말하곤 했었다. 얼마전에 20대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나오려 했다.

  언젠가부터 담배를 사도 술을 마셔도 절대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을 때, 한강 고수부지서 맥주를 살때 매점할머니가(아마도 시력이 좋지 않았을)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을때 속으로 얼마나 기뻐했던가?

 

  단군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세대이면서도 학자금대출을 갚아내기에 급급한 20대와 서른이 넘어서도 방황을 그칠지 모르는, 아니 더 깊은 회오리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젊음이라는 타이틀이 아직 어색하지 않은 30대는 모두 힘겹다. 이 소설이 지극히 공감이 되지 않는, 찌질한 사람들의 우스갯거리였으면 좋았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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