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늘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일어나 늘상 하는 행동을 반복하는데 왠지 뭔가 미묘하게 달라진 느낌이 든다. 모든것은 그대로 인데 왠지 거울속에 나, 나의 가족, 있던 낯익은 물건들이 낯설게 느껴진적이 없었던가? 주말엔 결코 눌러놓지 않는 자명종이 울리고, 미묘하게 달라진 행동을 아내의 낯익은 모습이 낯설고, 늘상 쓰던 스킨이 달라져 있음을 느낀 주인공 K의 아침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체인질링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겠다고 신고한 엄마에게 낯선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며 경찰의 손을 붙잡고 찾아온다. 실종된후 다섯달 뒤의 일이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란걸 알지만 많은 사람들이 맞다고 우겨댄다.

 

  비행기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불행한 기억으로 괴로워 하던 한 여성은 정신과 상담치료를 시작한다. 행복했던 아들과의 추억을 이야기 하지만 담당의사 먼스는 정색한 얼굴로 여인에게 말한다. "텔리 내말 잘 들어요. 비행기 사고는 없었어요. 그리고 당신에겐 아이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상상 속에 존재할 뿐이예요"

  경악한 텔리는 아들 샘의 흔적을 확인하려 하지만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지워진 비디오 테잎, 감쪽같이 지워진 가족 사진,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일기장 뿐! 게다가 그녀의 친구, 이웃은 물론 남편마저 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과연 텔리의 정신적인 문제일까? 아니면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속이는 것일까?

  영화 포가튼의 내용이다. 소설속의 K는 혹시 정신착란 증세가 있는 것이 아닐런지, 소설의 중반이 넘어가도록 그렇게 생각했다.

 



 


 

  K는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H의 아내와 자신의 아내를 구분하지 못한다. 카페에서 만난 건너편에 있던 여자와 방송국 아나운서, 술집에서 만난 호스테스를 구분하지 못한다. 아내의 죽은줄 알았던 장인과 누이의 재혼한 남편을 동일인물로 생각한다. 과연 이것은 진실일까 K의 착각일까? 화자도 K도 그 의문을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난 분명히 K가 정신병을 앓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누나는 낯설지 않았다. 허나 자신이 누나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받는 K.

하지만 그는 그런 편지를 쓴적이 없다. 그는 결코 그런 말투로 그런 문장을 쓰지 않는다.

급기야 K는 또다른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원래의 자신이 아니다. 원래의 자신, 또다른 자신을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다른 자신에게 전화를 건다.

 

  소설이 끝날때까지 명확하지 않다. 금요일부터 일요일, 또 월요일까지의 혼란한 시간.

잘못된 것은 누구인가? 주위의 세상이 잘못된 것일까 K가 잘못된 것일까?

 

 

  가끔 거울을 보면 내 자신이 낯설때가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도 낯설다.

애착을 갖고 자주 불러오는 기억속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시간. 그 시간이 어디론가 증발된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거의 십년이 되가는 기억이 불과 며칠 되지 않은것 같은 느낌. 그 느낌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거울이다. 지금의 나를 확인 시켜주는, 세월이 흘렀음을 나에게 인식시켜주는 거울속의 나.

 

또 어쩔땐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가 실제로 있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과거의 자신이 실제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기억과 몇장의 사진뿐이다. 그 기억과 사진이 가끔 낯설때가 있다.

과거가 좋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때는 좋은줄을 몰랐다. 미래는 좋을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래는 알수없다. 

 

소설을 읽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내 자신은 과거와 미래에 얽매여 살고 있진 않는가? 그래서 혼란한 채로, 낯설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암투병중에 빠진 손톱의 고통을 잊기 위해 골무를 끼워가며 소설을 완성한 작가의 투혼. 죽는날까지 소설을 쓰다 원고지 위에 누워 잠들것이라고 하는, 죽을때까지 소설가로 살아갈 작가의 모습이 아름답다.

나도 아름다운 그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삶을, 댓가를 치루며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나 스스로에게 낯설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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