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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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광풍은 평범한 한 여인조차 휩쓸어 버렸다. 평범하게 살던 아리따운 처녀 점례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희생되어야 했다. 그래도 살기 위해 몸부림쳐보지만 더욱 기구한 폭풍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지만 그러나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운명.

 

  몇마지기 안되는 논일을 하던 미륵댁 내외품삯도 좋고 일도 편한 과수원 일을 맡게 되어 기뻐한다. 그러나 그것이 광풍의 시작일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예순넘은 과수원집 주인 기회를 틈타 미륵댁을 겁탈하려다 미륵댁의 남편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일본인인 과수원집 주인을 때린것은 중죄. 모진 고문을 당하는 미륵댁 내외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딸 점례는 주인 야마다의 첩이 된다. 하루 하루 야마다를 죽이고 함께 죽고싶지만 부모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점례는 그의 아이까지 낳게된다. 해방직후 야마다는 도망치고 이모와 어머니에게 등떠밀려 과거를 숨기고 결혼하는 점례. 자상한 남편사이에서 딸을 출산 하지만 6.25라는 이름의 광풍에 또다시 휩쓸리는데.

 




 


  이런것을 나비효과라고 할것이다.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된 근대화와 강점기, 2차대전의 종말은 조선의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평범한 처녀에게도 그 영향을 미친것이다. 원폭에 의한 일본의 항복으로 전리품으로 떨어진 한반도는 강대국 미국이 적대국 소련을 견제하기 알맞은 기지의 역할을 한다. 소련역시 마찬가지 두 강대국은 애꿎은 한반도에서 냉전시대 최초이자 마지막 전쟁을 벌이고 그것이 한국전쟁이다.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는 끝났지만 여전히 한반도는 분단되어 싸운다. 

 

  강점기때 공산주의는 하나의 희망이었다. 1919년파리강화회의때 윌슨 미 대통령은 식민지나 점령지역에게 자유롭고 공평하고 동등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민족자결주의(National Self-determination)를 발표하여 한반도 뿐만아니라 전세계 식민지 국가들에게 희망이 된다. 이 여파에 힘입어 3.1운동도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승전국의 식민지는 제외한다는 결정이 나게되고 독립의 희망은 무산된다.(이광수외의 많은 지식인들이 친일로 전향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때 소련의 레닌은 아시아를 비롯 비서구의 모든 민족해방운동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하게 되고, 미국에 희망을 걸었던 지식인들은 이때부터 공산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에겐 자주적으로 선택할 시간도 능력도 없었다. 625는 미.소 양 강대국을 주측으로한 냉전시대의 광풍에 휩쓸린 결과다끝없이 민족의 분단 문제를 천착해온 작가 조정래는 힘없이 짓밟힐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여성, 점례를 통해 우리민족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점례의 두 아들, 일본인의 씨 태순과 미국인의 씨 동익은 아직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본과 미국의 흔적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본인 야마다와 미국인 프랜더스의 모습은 각 국가의 성격을 그대로 풍자한듯 보였다. 갖은 협박으로 점례를 꼼짝못할 상황으로 만들고 유린한뒤, 해방후 부리나케 도망가버리는 야마다. 친절한 미소로 점례를 위기에서 도와주며 호의를 보이는듯 했지만 철저하게 유린할 목적으로 접근한뒤 물량공세를 펼치는 프랜더스. 본국으로 송환되어 쓸모없어지자 말한마디없이 버리는 모습도 비슷하다. 이걸 배워서인지 아닌지 우리나라 인간들도 베트남에서 똑같은 짓을 했지만.

 

  이 소설은 신작이면서도 신작이 아니다. 조정래 선생이 예전에 중편으로 쓴 소설을 37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장편으로 각색해서 내놓은 전작소설이기 때문이다.

  조정래의 소설은 절로 몰입이 되게끔 하는 힘이 있다. 자칫 심각하고 딱딱해질 수 있는 문제들을 인물과 그들의 운명을 보여주면서 풀어나가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역사에 대해 통 관심이 없다. 나또한 우리 역사보다 삼국지를 통한 중국의 삼국시대에 훨씬 빠삭하다. 고구려 장수의 이름은 몰라도 촉나라의 오호대장의 이름은 꽤차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역사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삼국지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공부와는 담쌓았던 내가 삼국지가 아니었으면 삼국시대에 조금도 관심을 가질 계기는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조정래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십년넘게 거실 책꽂이에 꽂혀 있던 태백산맥을 꺼내보지도 않다가 뒤늦게 독서에 흥미를 가지게 된후 재미있다는 추천을 듣고 읽은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 우리 민족의 근대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재미로만 보아도 충분한 소설이니 읽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일독을 권한다. 책읽는 속도가 매우 느리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나도 금방 읽어나갈 정도의 몰입력이있다. 이책 ’황토’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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