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의 그리스의 필로소피라는 말을 일본의 니시야마가 철학이라는 말로 번역해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철학. 어떤 대상에 대해 그 본질을 깊게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정의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은 무척 어렵고 까다롭기 때문에 청소년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손사래를 칠 지경이다.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오르면서 진정한 정의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현대에도 많다는 것을 증명했다. 입시 위주의 학교수업이 더욱 심해지고 도덕과목도 폐지되는 마당이다. 미래를 이끌어나갈 청소년들이 정의에 대해서 알려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더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책의 등장이 더 반가울지도 모르겠다. 도덕을 배우고 자란 우리세대에게도 정의란 아직 어려운 것이다. 경제는 비교적 발전했지만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고 우리네들이 제대로 이끌어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어른이지만 여전히 철학은 어렵고 정의도 모른다. 다만 살아가면서 배운, 남말을 믿지도 말고 속지도 말자라는 것만 안다. 세상은 온통 나에게 물건을 팔아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만 득실거리는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학연 지연 혈연이 더욱 돈독해 지는것 같다. 의리와 정의는 엄연히 다르며. 강한자와 약자의 관계, 공동체의 행복등을 주변에서 쉽게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을 예로 들어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 하고 있다. 옳을 의(義). 양(羊)을 치던 목동이 풀이 많은 초원에서 양젖을 먹으며 살다가 양이 나때문에 먹고 사는구나라고 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양의 젖때문에 자신이 먹고 사는것이었다. 그래서 나(我)가 양을 받든다는 뜻에서 옳을 의가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있다. 실제로 사회는 큰기업때문에 우리가 먹고 산다고 생각하고 있다. 삼성이 망하면 우리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반대로 삼성이 여러 하청업체및 직원들의 노동에 의해서 먹고 산다고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의 노동의 댓가로 인해 기업이 더욱 성장하고 커지는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착취한다. 거대기업인 스타벅스는 커피를 한잔에 5000원씩에 팔지만, 커피원료는 에디오피아에서 헐값에 사와 엄청난 폭리를 취한다. 커피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그런 착취구조속에 뼈빠지게 일하지만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이고, 스타벅스는 원가 123원~300원 정도 밖에 안하는 커피를 5000원에 팔아먹어 폭리를 취하는 것이다. 로얄티와 임대료 세금등이 원가의 수십배를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 사회이다. 그런것은 필요없다고 생각하고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에디오피아의 노동착취쯤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고 기분좋을때 기부한답시고 돈이나 몇푼 던져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기부하는 꼴을 못봤지만) 그러나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정의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더욱 혼란하지 않을까? 그나마 정의를 추구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기에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는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