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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비밀의 부채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미묘한 관계이다. 이웃에 근접해 있고, 생김새가 비슷하며 비슷한 한자문화권을 가진 가까운 나라지만, 또 오래전부터 서로 싸워왔던 사이이기도 하다. 외국의 소설을 볼때, 일본과 중국의 소설이 러시아나 유럽등의 소설에 비해 이해나 공감이 잘되는 것을 느낄수 있는데, 문화가 다르면서도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닮은 점중의 하나가 여성을 함부로 대해왔다는 것이다. 그런 차별은 알게 모르게 아직도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 할머니시대만 해도 차별은 무척 심했는데, 할머니께선 밥을 먹을때 귀한 막내아들이었던 우리 아버지는 쌀밥을 주고, 고모들은 보리밥만 줬다고 한다. 같은 여성이면서도 딸들을 심하게 차별하고 그렇게 해야 된다고 믿었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도 피해자인것은 마찬가지다.
이책은 이미 국내출간이된적이 있는 소설로서, 전지현 주연의 영화로도 곧 개봉이 되며, 영화 개봉에 맞춰서(아마도) 재출간 된 소설이다. 전지현은 설화역을 맡았는데, 다른 국가에서 자란 전지현과 나리역의 이빙빙이 나리와 설화의 속깊은 우정을 잘 표현할지 의문이다.
작가 리사시의 얼굴은 평범한 미국여성의 얼굴처럼 보인다. 미국인이 어떻게 중국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나 의문이 들었으나, 검색을 해보니 중국계 미국인이라고 한다.

소설의 배경은 19세기의 중국. 가부장적 의식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한중일인데, 이때는 그런 의식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때이다.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괄시를 받아애 했던 중국 여성 나리와 설화, 둘의 인생과 우정.
이시대의 중국은 여성에게 전족이라는 이상한 풍습을 강요했다. 여자는 발이 작아야 된다고 생각한 중국인들은 소녀가 10살이 되면 더 자라기 전에 나무신발을 신겨 발이 커지지 않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7Cm크기의 나무신발에 발을 맞추기 위해 발가락을 뿌러트린뒤 억지로 작은 발을 만드는 괴상망측한 풍습. 그 고통을 참지 못해 죽는 소녀도 있었다고 하니, 끔찍한 풍습이 아닐 수 없다.
아프리카의 할례의식도 비인간적인 풍습으로 아직까지 자행되고 있다. 소녀들이 이런 풍습을 원하지 않는것은 당연하나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당해야 하는 것이다. 소말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모델 와리스 디리도 할례와 조혼을 피하기 위해 집을 무작정 뛰쳐나왔다고 한다. (고생끝에 모델이 된 와리스 디리는 모델로 성공한 뒤 인권운동가가 되었다.)
요즘 같으면 개그소재로나 등장할 이야기다. 보수적인 남아당 대표 박영진도 기겁을 할 이야기가 아닌가. 이렇게 억압받던 소녀들은 남자,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평생 복종할 운명이다.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했을 그녀들은 여성들만의 비밀언어로 전해 내려오는 누슈를 통해 서로에게 의지하며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요즘은 여자들에게 함부러 했다가는 큰일이 난다. 여성들은 물론 남자들에게도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데이트를 할때는 남자들이 여자들의 눈치를 보며 받드는 시대가 되었다. 남아선호사상은 이제 옛말이고 오히려 딸을 더 선호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옛날에 비해 많이 달라진 것은 실이지만 아직도 시대 착오적인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심지어 젊은 녀석들도 이런 놈들이 있다)
성적인 특징의 차이를 제외한 인격적인 문제는 지금보다 더 평등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논쟁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은 남자나 여자나 함께 살아가야 하고 평등한 것인데 남자니 여자니 우위를 정하는게 무슨 소용인가? 둘중 하나가 없으면 홀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유치하고 무의미한 논쟁일 뿐이다.
나리와 설화가 지금시대의 여성들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여자들의 권위신장에 후련해 할까? 아니면 자신들은 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해 당황하거나 억울한 분노를 터트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