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봉건사회는 지났지만 여전히 현대인은 계급에 얽매여 살아간다. 주종관계는 출신과 신분은 수준이란 이름으로 뒤바뀌어 세분화 되었다. 그 계급의 계단은 다단계 회사처럼 수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층층을 구분하여 묵시적으로 서로 맞는 사람과만 교류하게 되는 것은 계급사회에 익숙한 선조들의 유전자 때문일까 아니면 태초부터의 본능일까.

 

  강남,북으로 구분되는 서울은 물론이거니와 지방의 소도시 초등학교에서도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 부모님의 직업은 무엇인지에 맞춰 친구를 사귄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은 것인지 자신들 나름대로의 규칙에 의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때부터 그런 분류에 익숙해 진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그런 의식이 몸에 베일 것이다. 타인을 대할때 항상 다단계의 어느층에 있는지 구분하게 되고 위에서 아래를 착취하는 구조는 계속되지 않을까. 양반과 상놈의 기준은 태생에서 그 모습만 바뀌었을뿐, 윗층은 다시금 아래 단계를 만들어 내고 그에 순응하고 살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1997년 일본에는 '동경전력 여사원 매춘부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피해자는 대기업의 간부로 근무하는 39세의 여성이 밤에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돈이 없다고 해도 있는대로 달라고 요구하며 매춘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전 일본을 충격에 빠트렸다. 이 소설은 실제로 일어난 이 사건을 모티브로 쓰인 소설이라고 한다.

 



 

  명문 Q학원은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모두 명문으로 인정받는 학교이다. 그곳에 다니는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거나 세력가의 자제이거나 부유한 집안에 사는 아이들이다. 초등학교부터 Q학원에서 진학해온 학생과 중학교나 고등학교부터 Q학원에 다니게된 아이들이 있는데, 학교 내에서 그들의 신분이 갈린다. Q초등학교 출신 아이들이 주류이고, 나머지 중,고등학교때 부터 다닌 아이들은 비주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해진 운명처럼 이들의 지위를 결정한다. 학교의 이런 계층은 일본 전체의 계층을 대변한다. 출신이 미천하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되는 것이다. 주류의 아이들은 나머지 아이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고 깔보게 되는 것이다. 비주류의 아이들은 주류에 속하기 위해 발버둥 쳐보지만 소용이 없다.

 

  스위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 '나'와 그의 동생 '유리코'

'나'는 평범한 외모를 지녔지만 유리코는 놀랄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항상 예쁜 동생과 비교당하며 살아야 했던 '나'는 동생에 대한 질투와 증오, 그리고 동경을 지니고 있다. '나'가 생존하는 방식은 악의이다.

뭐든지 노력하면 된다고 배워왔고 그 가치관을 믿고 있는 가즈에는 공부를 하면서 비주류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주류아이들은 물론 비주류 아이들의 비웃음만 살뿐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가즈에는 자신의 방식을 계속 고집한다.

유리코는 모두가 부러워 할만한 외모를 지닌덕에 주류아이들의 부러움까지 사게 된다. 주류 아이들이 신분을 타고 났듯이 유리코는 미모를 타고 났기 때문에 비주류에서 자동으로 면제 되는 것이다. 그런 동생에게 더욱 악의를 불태우는 '나'.

 

  유리코는 그녀를 갈망하는 남자들의 갈증을 채워준다. 그 댓가로 돈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 아내가 죽자마자 다른 여자를 데리고온 아버지와 자신을 외면하는 언니로 인해 홀로 남겨진 유리코의 생존 방식이다. 가즈에의 매춘은 하나의 탈출구였다. 외모도 출신도 변변치 않은 자신이 소비되면서 자신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증명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가즈에는 살해당한뒤 언론에 의해 다시 한번 소비된다.

 

 소설속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하다. 괴물같은 사회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어가는 주인공들. 유리코와 가즈에를 살해하는 중국인 남성도 그렇다.

'나'를 중심으로 각자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소설의 전개 방식이다. 그들의 증언은 각기 차이를 보인다. 영화 '라쇼몽'에서 죽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도적의 증언이 차이를 보이듯이. 무엇이 진실인지 두 작품 모두 밝히지 않는다.

실제로 세상은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보여지는 것이다. 같은 사건을 겪었어도 다르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는척 하지만 타인을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다만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할 뿐인 것이다. 

 

  누군가를 볼때 사람들은 쉽게 판단을 내린다. 그사람의 학력, 직업, 외모, 생활수준등을 보고 판단을 내린뒤 분류해놓고 상대의 수준을 정한다. 그리고 그것에 따를 것을 강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비웃거나 멸시를 한다. 선택은 두가지이다. 그 기준에 순응하던지 따돌림을 당하던지. 요즘 아이들은 어찌나 영특한지 어른들의 그런 기준을 초등학교때부터 적용시켜 버린다. 조기교육 조기교육 하더니 어른들의 이런 규칙을 조기에 배워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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