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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구판절판

동물들의 보살핌으로 커버린 소년이 언어는 물론 행동까지 동물처럼 되었다는 정글 소년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실화인지 소설인지도 잘 모르겠다. 결말도 얼핏 들은것이라 정확하진 않다. 정글 소년은 사람들에게 구출되지만, 인간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곧 죽고 만다는 이야기로 기억된다.
19살의 꽃다운 나이에 납치되어 감금된 소녀. 그 소녀는 납치범의 아이를 낳는다.(편의상 계속 소녀라고 표기함) 작가는오스트리아에서 친딸을 7년이나 감금하고 성폭행해 7명이나 되는 아이까지 낳게한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납치된 소녀나 납치범의 시선이 아닌, 5살생일을 맞은 아이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아이에게는 작은 방이 세상의 전부이다. 아이에게 방밖의 세상은 TV에서나 나오는, 현실이라고는 생각 되지 않는 가상의 세계일 뿐이다. 아이의 시선으로는 엄마하고만 있으면 행복하고, 그들에게 먹을것과 약간의 필요한 물품만을 가져다 주는 납치범 올드 닉은 무서운 사람이지만 때로는 장난감과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반가운 존재이다. 순진한 아이에겐 올드 닉의 존재는 엄마가 반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전기를 끊어 버리는 사람이기 보다, TV를 보게 해주고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전기를 다시 들어오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인 것이다. 엄마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이 올드 닉이라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알 수 없는 일, 관심 밖의 일일 뿐이다.
엄마는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저 아이만 내버려 두면 나도 얼마든지 조용할 수 있어요. 내가 부탁한 건 그게 다였잖아요."
올드 닉은 코웃음을 쳤다.
"문만 열고 들어오면 이것저것 부탁하는 주제에."
"전부 잭을 위한 거예요."
"네가 저놈을 어디서 얻었는지 잊지 말라고." -127p 中-
감금되어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소녀에게 잭은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이자 절망속의 유일한 희망이다. 소녀는 올드 닉으로 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가 올때마다 아이를 벽장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한다. 어느날 호기심을 참지 못해 어둠속에서 빠져나온 잭은 올드닉과 마주치고, 올드 닉은 아이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러자 소녀는 혹시나 아이가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이다.
올드 닉은 뻔뻔 스럽게도 최소한의 물품만을 사다주면서 돈이 많이 든다고 투덜거리거나, 아이를 얻게 된 것이 자기 덕택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둘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소녀에게 고마운줄 알라는 식의 이야기를 잘도 해대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오로지 자신의 성적욕구를 충족하는데 있을 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탈출에 성공하지만, 닉은 그 방을 그리워 한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새로운 환경에 대한 힘겨움이 엄마와 단둘이 조용히 살던 방을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에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정신나간 사람도 참 많다. 우리나라만 해도 모두가 알고 있는, 입에 담기도 힘에 겨운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이 많이 있는데,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사형에 처해도 속이 시원치 않을 것이나 범죄자의 인권도 인권이라고 인권이 보장되고 있다.
난 사형제의 폐지를 적극 반대한다. 인권은 인간에게 적용 되는 것이지 인간에서 짐승이된 괴물에게 적용 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결코 쉽게 바꿀 수 없는 존재다. 나쁜 버릇을 하나 바꾸려고 해도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 한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미약한 가능성을 위해 범죄자들에게 기회를 줘서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게 되는 결과를 이미 많이 봐 오지 않았는가? 특히 성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동 성범죄자에게 많아야 꼴랑 십몇년의 형을 살게 하는데 피해아이는 평생을 괴로워 하며 지내게 된다. 가벼운 처벌을 내린 사람들은 그 피해자가 자신의 가족이였어도 과연 그런 가벼운 처벌을 내렸을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단 한번의 성범죄라해도 최소한 거세형을 내릴 것이다.
언젠가 우리집 뒷산에 등산을 갔다.
산에는 초등학교 아이이 소풍을 와 있었다.
정상에서 한숨 돌리고 내려오는데 몇몇 여자아이들이 대열에서 이탈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길을 잃었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아이들은 대답했다.
난 길을 안내해 주기위해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가겠다고 대답했다. 난 알았다며 먼저 빨리 내려가 버렸다...
아이들이 길을 찾지 못할까봐 걱정도 되었지만, 그냥 빨리 내려온 이유는 아이들의 눈에서 두려움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어딜가든 아이들을 만나면 피하거나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상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불안에 떨게 하기 싫어서이다. 아이들이 어른을 믿지 못하는 현실이 어른으로서 매우 부끄럽게 느껴진다.
요즘 아이들이 버릇이 없다는 소리 하지마라. 다 어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