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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튼
케이트 모튼 지음, 문희경 옮김 / 지니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THE HOUSE AT RIVERTON
'사람의 운명은 날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일까?'
정해져 있는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다. 미래를 알수 없고 순간은 한번뿐이기에 무슨일이 생기더라도 '정해져 있었던 일어날수 밖에 없는일이었다'라고 말해도 별로 할말이 없고,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해도 맞는말 같다.
성장하면서 환경에 길들여지고 그것을 순응하는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다면, 그림자 같은 삶에서도 만족하며 살아가고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대로 기쁨과 슬픔을 만끽할 것이다. 봉건시대에는 날때부터 그런 신분으로 태어날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있다. 아니 그시대에는 소수의 귀족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태어난 운명에 의해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그레이스 리브스'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시대가 급변해 가는 중심에 서있다.
소설의 화자 '그레이스 리브스'는 하녀로써 자신의 어머니도 하녀로 일했었던 '하트포트가의 리버튼 저택'에서 일한다. 충실한 하녀로써 세계1차대전 전후로 살아왔던 기쁨과 아픔의 순간이, 99세로 죽음을 앞둔 시기에서, 리버튼 저택에 관한 이야기가 한 여성감독에 의해 영화화 하게 된것을 계기로 선명하게 되살아 난다. 14세의 어린나이에 리버튼에 들어가 비극의 사건이 발생한후 10여년 동안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책의 주요 내용이다.
애버리시경의 리버튼저택은 영국의 전통적인 명문가이다. 많은 하인을 거느린 저택에서 하녀로 생활하는 그레이스. 힘든 노동속에서 성경책외엔 책을 읽는것도 허락되지 않지만, 몰래 '셜록홈즈'를 읽으며 삶의 보람을 느낀다. 몇개월이나 모은 돈으로 코난 도일의 신간 <공포의 계곡>을 심부름 가는 길에 몰래 사서 숨겨오던 그녀는, 애버리시경의 둘째아들 '프레더릭'의 딸 '해너'와 마주친다. 여자들에게, 특히 귀족의 여인들에게 일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던 시절 '해너'는 꿈을 키우며 속기를 배우고 있었다. 그레이스도 속기를 배우는줄로 착각한 해너는 둘만의 비밀이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당부한다. 해너가 오해하는줄 알고 있었으나 해너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던 그레이스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이 작은 오해가 후에 큰 비극을 낳게될줄 알았더라면.
소설은 귀족들의 뒷바라지에 일생을 바치는 하인들과 또한 신분에 얽매여 살아가는 귀족들의 생활상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리버튼 저택에 있는다는 것은, 비록 하인일지라도 울타리가 되어준다. 그시대는 밥먹고 살기에도 힘든 민중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전쟁과 새로운 시대의 연쇄적인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것은 피할수 없다.
이책의 중,후반부쯤에 애거서 크리스티가 등장한다. 시어도어 럭스턴(테디)와 다소 충동적인 결혼을 하게된 '해너'와 그녀를 따라간 그레이스는(이때쯤 '셜록홈즈'를 버리고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의 애독자가 된다) 사교계의 파티나 만찬에 참석하게 된다. 한 만찬에서 남편인 아치볼드 크리스티와 함께 참석한 애거서 크리스티는 화제가된 사건의 기사를 이야기 하는 도중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살인은 대부분 서로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지요."
전쟁에서 죽은 해너의 오빠 데이비드의 친구 로비헌터, 그리고 헤너의 아름다운 동생 애멀린. 그리고 방관자처럼 보이던 그레이스. 그들사이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예고와도 같은 말이다.
작가는 신분간의 갈등, 극복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들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수동적이고 영향력이 없어 보이는 하녀의 악의없는 작은 행동이 나비효과를 가져 오면서 무엇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시대에, 작고 보잘것 없는, 투명한 들러리에 장식품 같았던 인간이라도 귀족에게라도 큰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것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는것이 이책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중 하나는 아니였을까? 내멋대로의, 자의적인,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생각일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별로 상관없다. 사실 내게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독자중 하나인 내가 어떻게 느꼈는가 하는 것이지 작가의 의도가 아니니까. 창작은 작가의 몫이요 감상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기에.
마지막 그레이스에게 보낸 헤너의 편지는 여운을 남기며 대미를 장식한다. 서로 얽혀 있는 관계속에 의도되지 않은 우연적 비극. 작가의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긴장되는 스릴러는 아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갑작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구성이 좋았다. 670여 페이지의 다소 긴 분량이고 재미있어서 눈을 떼지 못하는것은 아니지만 계속 읽어나가게끔 만들고, 고전적이지만 어렵지 않은점 또한 괜찮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