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를 누를 때
야마다 유우스케 지음, 박현미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3월
절판


야마다 유스케란 일본의 작가는 참 독특한 인물이다. 고졸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어느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처음엔 자비로 출판하려고 했단다. 그런데 그의 책들이 베스트 셀러에 오르며 유명작가가 되었다. 영화나 연극 드라마로도 제작된다는 그의 작품은 이런 열광에도 불구하고 욕도 많이 먹고 있다. 문장도 모르는 작가라던지, 앞뒤가 맞지 않는 어색한 스토리라던지.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검색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처럼 책읽기도 싫어한다니... 평론가들은 많은 공부를 하지만 창작은 못한다는 말도 있고, 조정래 선생님도 동국대 국문과 4년동안 배운것이 소설이라는것은 배울 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라고 하니, 꼭 작가가 많이 알아야 하는것은 아닌가 보다. 어느 문창과 교수는 창작을 하고 싶으면 대학까지만 가고 대학원은 가지마라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그래서 야마다 유스케가 구속받거나 규정되지 않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또 유명해 진것일지도 모른다.



약간 다르지만, 한국에도 귀여니라는 작가가 있다. 물론 귀여니를 난 작가로 취급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서나 배울 시의 기본중에 기본조차 조차 모르고쓴 낯뜨거운 코메디인 시집 아프리카를 비롯, 그 소설들도 군시절 집어 들었다가 코웃음을 치고 던져버렸다. 게다가 일본작가의 표절의혹까지 받고 있다니. 코묻은 어린 초등학생 독자에게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를 써놓고 작가라고 칭하다니... 나쁜동화라고나 할까? 인터넷 작가의 원조격인 '엽기적인 그녀'의 김호식씨는 서문에 자신은 작가도 아니고 소설이라고 내놓기도 부끄럽다는 말을 했는데 오히려 겸손한 그의 소설이 아니라는 소설은 참신하고 재미있기라도 하지.







야마다 유스케의 상상력은 돋보인다. 문장은 어떨지 몰라도. 일본이니까 가능한, 나라면 상상된다해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긴 하지만. 그런 엉뚱한 상상력을 하자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고 본다. 극단적으로 상상하자면 어떤 끔찍하고 잔혹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더러워서 안하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2030년의 미래 '자살억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자살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작위로 10세의 아이들을 건물안에 가둬놓고 실험을 한다. 아이들이 언제든 고통없이 자살할수 있도록 감금되기 5년전에 심장수술을 하고, 부모는 5년전에 알면서도 아이에게 숨긴다. 도망치려 해도 감시가 심하기 때문에 소용이 없단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긴 하다. 무슨 전쟁때도 아니고 그 부모들이 가만히 있다는 것도 우습고. 일본다운 발상이란 생각도 들고. 어쨌던 그것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허구인것이 당연한 것에 사실을 따지자면 우스운 법이니.



아이들은 거의다 얼마못가 다 스위치를 누르게 되고, 이 실험 때문에 자살률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험때문에 자살률이 어떻게 줄어들었는지는 전혀 설명이 안된다는 허술함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스위치를 눌러 자살하는 심리를 조사한다고 해서 과연 자살률이 어떻게 줄어든다는 것인가? 자살하려는 사람을 어떻게 알며 그것을 줄였단 말인가? 자살 예상자들이 무슨 등록이라도 한단 말인가? 현실성을 따지는것과 이런 문제들은 다른 점이다. 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해도 사건의 발생은 독자에게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상상력은 참신하지만 그런것은 부족해 보인다. 차라리 다른 이유를 붙였으면 어땠을까?



배틀로얄이란 영화가 기억이 났다. 어린 애들을 희생시키는 어이없는 행위라는 점에서 스위치를 누를때와 비슷하다. 영화만 봤지만 원작소설이 있다고 해서 혹시 같은 작가가 아닌가 찾아봤지만 아니였다. 어린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말할것도 없고, 가상세계에서도 끔찍한 일이다. 상상도 하기 싫은 상상을 하는 것이 일본사람들 같다. 어린아이들의 희생과 자살문제를 역설적으로 비판하고자 이런 소재를 썼겠지만.



다시 소설이야기로 돌아가자. 놀랍게도 4명의 아이들은 7년동안이나 이런 갑갑한 생활을 견뎌낸다. 그곳에 감시원으로 주인고 요헤이가 근무하게 되고, 다른 감시원들과는 달리 이아이들에게 동정을 느끼고 잘대해준다. 4명의 아이들은 각자 이유가 있어 7년여를 버틴것이다. 네아이중 이케다 료가 먼저 스위치를 누르게 되고, 그사건으로 인해 요헤이는 나머지 세아이들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한다. 그들의 탈주는 전국에 방영이 되고, 아이들의 부모역시 사실을 알게 된다.



YSC(청소년 자살 억제 프로젝트)관계자들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요헤이와 아이들을 체포하지 않고 지켜보지만, 웃긴것은 경찰이다. 전국에 방송되고 얼굴까지 공개되었는데 추적하는 경찰은 이들을 잡지 못한다. 그것도 2030년의 미래에서. 다른 목적이 있었다면 대대적으로 보도도 안했어야지. 그리고 사람들은 또 이 특이한 아이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고도 모른다. 역시 매우 허술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목적이 있어서 그들의 행로를 지켜보기만 하는 거라면 얼굴 공개까지는 안했어야 하고, 또 사람들도 이들을 봐도 아무도 모른다니. 그 미래사회에는 나처럼 TV를 전혀 보지 않는 사람만 있는가 보다.(나라면 인터넷에서 봤겠지만)

좀더 치밀하게 씌였으면 재미는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중반부에 넘어서서는 뻔히 예상되는 도주과정과 아이들의 헤어지는 과정을 지루하게 묘사해놓은것도 지적할 만하다. 사실 이런책이 출판되었다는것도 우습고, 번역되었다는 것은 더 우습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많은 좋은 작품들이 널려있는데, 이런 작품을 꼭 번역해야만 했는가? 일본작품이 유행하고 돈이 되니까? 참을수 없는 가벼움이다. 이런건 기발한 상상이라고 할 가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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