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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절판

예수의 생에는 교회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탄생일이 세계인의 축제가 된것이며, 세계가 쓰고 있는 연도 서기도 예수의 탄생일 부터 계산하고 있으니, 가장 영향력을 미친 인물임이 틀림없다. 다빈치 코드가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도 재미있는것은 둘째요, 예수의 생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상상의 접근이 한몫 했을것이다. 이책은 다빈치 코드를 앞질렀다고 했지만, 저자의 국가에서만 일것이다. 다빈치 코드보다 재밌진 않았으니.
4대째 기독교 집안의 아들로서 한때 기독교에 몸담았으나 예수의 생애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 교회의 행태에 염증을 느껴 종교를 버렸지만,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은 여전하다.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이분법 논리는 전혀 신봉하지 않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천국에 가고싶어 혈안이된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기위한 거래로 변질되어 버린듯하다. 쓰나미가 예수를 믿지 않아서 저주를 받은것이라는둥, 기독교 믿는 나라치고 가난한 나라 봤냐는둥, 불교로 개종해야 잘산다는 등 지금도 떳떳하게 현직에 계신, 그것도 유명하기로 소문난 목사들의 발언은 자본주의에 물들어 변질되어 버린 종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님 말씀도 지키지 않는 목사들이 무슨 예수님의 말씀 전한단 말인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삭개오가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눅 19:9)‘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8-9).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것도 모르는지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건지... 그런 거짓말씀을 전하는 교회는 손님을 끌기 위한 장사행위에 불과하다. 실제로 교인들에게 물어본바 많은 교인들이 천국에 보내주지 않으면 교회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걸로 봐도 그런 생각들이 만연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봤자 천국행 티켓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이 있는 가식적인 믿음일뿐 진정 천국이 있다면 절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진실된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받겠지.
이책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는 허구의 철학자 폼포니오가 그리스에 있는 친구 파피우스에게 편지를 보내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지혜를 주는 샘을 찾기 위해 돈한푼 없이 떠돌아 다니는 이상한 철학자가, 소년예수에게 살인 누명을쓴 아버지 요셉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그 사건을 좌충우돌 어설프게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다. 밝혀지지 않은 예수의 어린시절을 작가의 상상으로 풀어낸다.
소설속에는 성경속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요셉과 마리아를 비롯, 요한, 유다벤허, 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녀 랄리타까지.
이 소설의 장르를 무어라 말해야 할까? 추리, 종교, 철학, 유머, 풍자, 신화적 요소 등이 뒤섞여 있는 소설이다. 엉뚱한 행동의 철학자는 처음에 돈때문에 예수의 의뢰를 받아들이지만, 후에는 보수를 거절한다. 사건수사에 별 관심이 없던 폼포니오가 제대로 수사를 하게 된것은 사건의 주요 관계사이자 랄리타의 어머니인 아름다고 마음씨 착한 창녀 사라때문이라는 것이 우습다. 소설에서 가장 비극을 겪게되는 사라의 모습에 분노를 한 철학자는 사건의 단서들을 파악하고 마치 김전일처럼 모든 사람들을 소집하고 모든 수수께끼는 풀렸다는듯 이야기 하지만, 사람들은 코방귀를 뀌어가며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의 추리는 몇가지를 빼고 정확했음에도.(더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까봐 이만)
기독교인들이 본다면 조금 불쾌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충실한 소설은 아닌듯 하니까. 그렇다고 무슨 모독이 들어간 것또한 아니지만. 폼포니오는 그리스 사람이고 그에게 예수가 조금은 영향을 받는다. 어린 예수의 모습은 평범한 아이들과 똑같지만, 뭔가 영특함과 비범함이 엿보이고, 소설의 말미에는 어떤 놀라운 일을 해낸다. 문화의 차이가 있어서 인지 배꼽잡고 웃을만큼 웃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유쾌하고 흥미로운 소설이다.